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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곤 철도공사 김천시설사업소장
 김해곤 철도공사 김천시설사업소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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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늦은 저녁 대전역광장에서 그를 만났다. 어둑해진 광장에 찬바람까지 밀려왔다. 마땅한 인터뷰 장소를 찾으려고 한참 뒤따라 걷던 기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앞서 가던 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두리번거리다 뒤돌아보니 한 맹인의 팔을 부축하며 오던 길을 되짚어 가는 중이다. 꽤 먼  지하철 엘리베이터까지 바래다 준 후 정신없이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지하철 입구를 찾고 있는 것 같아서."

김해곤 철도공사 김천시설사업소장(51, 전 철도공사 연구원 기술연구처장)은 직업이 또 있다. 김천시설사업소에서 퇴근하자마자 '철도종합시험선'(이하 시험선) 공사를 막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유사업무 같지만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르다. 시험선 공사 주관 기관은 철도공사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시행기관 철도시설공단)다. 말하자면 이를 막는 일은 조직의 순리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는 공사 직원들을 만나 "4대강 사업보다도 못한 사업"이라며 시험선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가하면 사업 중단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감사원과 국민권익위,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이 일로 3개월 만에 수백만 원의 사비를 썼다.

"내 돈 쓰며 하는 일이지만 사업을 막으면 수천억 원의 국민 혈세를 절약하니까 남는 장사 아닙니까?"    

골목을 따라 걷다 그의 옛날 단골집이라는 허름한 삼겹살 집 식탁에 마주 앉았다. 깔끔하고 푸짐한 찬이 주책없는 젓가락질을 재촉했다.

철도종합시험선로 사업은?... 사업비 2400여억 원, 내년 착공

철도종합시험선로(이하 시험선로)는 총 길이 13㎞로 철도차량, 철도용품·시스템, 신기술·신공법 검증 등 모두 9개 분야 147개 시험항목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성능 검증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시험선로 건설 사업이다.

총 사업비는 2437억 원이 소요된다. 내년부터 착공을 시작해 2016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사업시행처인 철도시설공단 측은 충북 오송으로 장소를 정하고 지난 10월 실시설계 적격자로 이미 지에스(GS)건설㈜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국토교통부와 시설공단 측은 공사가 완료되면 열차가 운행되는 철도노선에서 제한적으로 했던 신제품, 새 기술 등의 현장시험이 시험선에서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체계적인 성능검증을 통한 궤도, 신호 등 철도핵심분야의 국제적인 기술경쟁력 확보를 높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이날 나눈 주요 인터뷰 요지다. 

그가 철도공사 기술연구처장에서 밀려난 이유는?

- 스스로 철도분야 전문가라고 생각하십니까?
"1982년에 철도대학 입학했어요, 집안이 가난해 학비 싼 대학을 찾아갔죠. 1986년 철도공사에 입사했어요. 1995년에 일본 철도종합기술연구소에 6개월간 국비단기해외유학 갔다 왔어요. 1999년 일본 동경대에서 2년 4개월간 장기국비유학을 하면서 동일본철도, 서일본철도, 동해도철도, 큐슈철도 등을 돌며 공부했습니다. 부산대 토목공학과 석사 하고 지금 충남대 토목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연구 끝에 세계최초로 자갈도상용 다지형침목(H형 침목)을 개발해 철도궤도용품으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초까지 철도공사 연구원 기술연구처장을 했습니다, <철도사고 왜 일어나는가> <사업창조의 노하우>를 번역 출판했고, <철도건설 100년사> 편집위원, 한국철도건설협회 궤도분과 전문위원, 철도학회 평의원 등을 역임했어요."

- 기술연구처장 하다 왜 김천시설사업소장으로 강등됐죠?
"저도 그걸 모릅니다, 100억 원짜리 국가(R&D) 사업도 따오고 연구 잘하고 있는데 작년 4월에 갑자기 천안시설사업소장으로 발령이 났어요, 7월에 다시 대구시설사업소로 직위도 없이 발령이 났어요, 징계를 받은 것도 아니고 조사받은 것도 없고 직위가 해제된 것도 아니고, 저야 알 수 없죠. 간부가 가라고 하니까. 그러다 올 2월에 지금 있는 김천시설사설소장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 그렇게 본인에게 이득도 없는데 자기 돈 써가며 왜 반대하는 거죠?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어요, 국가와 철도공사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 보답으로 국민들과 철도인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맘으로 일하고 있어요, 불필요한 시설에 수천억 원의 국민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업 반대 의견내자 회의 연락도 안 하더군요"

-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단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2009년 2월에 동대구∼부산 간 침목체결구 불량문제가 사회 이슈화됐어요. 이 제품은 외국에서도 널리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었죠. 궤도 구성품 선정과정에서 제대로 검사하지 않은 게 문제지 철도시험선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문제였죠, 근데 당시 조사위원 중 몇 사람이 철도종합시험선이 없어 사고가 일어난다며 시험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그 후 국토부 주관으로 바로 '종합시험선로 구축 검토를 위한 TF팀'이 만들어진 거죠."

- 그때 김 소장님은 어떤 의견을 냈죠?
"제가 당시 사업개발본부에 근무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철도시험선은 세계철도인들 사이에서 필요 없는 것으로 상식화돼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2010년 철도시설공단 국정감사에서 모 국회의원이 '고속철도 운영하는 나라에서 시험선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돼냐'고 질의한 겁니다, 이후 급속도도 진행됐어요,

마침 제가 기술연구처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에 5월에 '시험선로 구축용역 착수 보고회'가 있었어요. 그때 기술연구처 긴급회의를 했는데 시험선이 필요없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당시 부장과 함께 국토부 회의에 참석해 사업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말씀드렸어요. 문제는 이후부터 회의 참석하라는 연락도 없고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었어요. 우리 기술연구처를 배제하고 회의를 한 거죠. 그치만 바보가 아닌 이상 설마 말도 안 되는 이런 사업은 안 하겠지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어요."

- 이 사업이 재추진되고 있다는 걸 언제 알게 된 거죠?
"올해 5월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시험선로 사업자 모집공고가 났더라고요. 이때부터 동분서주하며 쫓아다니고 있어요."

"쓸모도 없는데 과다설계까지... 후손에게 부담 주는 나쁜 사업"

김해곤 철도공사 김천시설사업소장
 김해곤 철도공사 김천시설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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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업을 '4대강 사업보다 못한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요?
"250km/h 이상 속도시험이 불가능합니다. 시험선이 만들어지더라도 기존선에서 중복시험이 불가피합니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공사고 기술발전만 저해시키는 겁니다. 게다가 13km의 시험선을 만드는 데 굳이 공사비가 2∼4배 이상 많이 소요되는 교량 6개(1.5km)와 터널 6개(5790m)를 만드는 난공사 구간을 택했습니다. 약 1000억 원 이상이 더 들어가는 과다 설계죠.

시험선을 건설한 이후에도 연간 19억 원의 운영·유지비가 소요됩니다.  그 비용을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철도공사에서 부담해야 합니다. 철도선진국인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도 시험선이 없어요, 또 지금까지 기존선 철도에서 시험을 해왔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틸팅열차는 물론 G7고속차량, 430Km/h 급 해무고속열차도 다 기존선에서 해왔어요."

-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단 측은 시험선이 없으면 기술경쟁력에서 뒤처진다고 말하고 있어요. 대안이 뭡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시험선을 만들면 철도기술발전을 저해한다니까요. 대안이요? 그냥 지금처럼 건설돼 있는 7300km 기존선과 대불시험선을 활용하면 어떤 시험도 가능합니다. 열차운행을 중지하는 야간시간이나 또는 한산한 시간에 기존선을 활용해도 됩니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야간에는 고속철도선은 운행하지 않고 있거든요. 백번 양보해서 시험선을 만들더라도 기존 문경선 폐선을 활용하면 됩니다. 문경선은 선로도 양호한 상태입니다."

"사업 중단될 때까지 모든 것 다 바쳐 반대운동 할 것"


- 다른 직원들 의견은요?

"사정을 아는 직원들은 모두 반대하고 있어요. 지난 2009년 기획예산처가 벌인 시험선로 구축 예비타당성 조사결과에서도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니까요. 올 들어 제가 직접 반대 서명운동을 조직했는데 8일 현재 2069명이 참여했어요. 철도시설공단 직원들의 경우에도 제 의견에 공감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아요. 다만 조직 구성원이라 동참하지 못하는 것뿐이죠."

국토교통부가 2400억 원을 들여 추진 중인 '철도종합시험선로' 구간도 (경부선 서창신호장~충북선 오송정거장~고속철도 보수기지)
 국토교통부가 2400억 원을 들여 추진 중인 '철도종합시험선로' 구간도 (경부선 서창신호장~충북선 오송정거장~고속철도 보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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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교통부와 시설관리공단은 왜 이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거죠?
"글쎄요, 소수이지만 이 공사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 앞으로 계획은요?
"사업이 중단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바쳐 반대운동을 할 생각입니다. 있을 수 없는 부당한 일을 막는 게 제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그:#김해곤, #철도종합시험선, #4300억원, #예산낭비,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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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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