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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6월이면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립니다. 민의를 대변하고 봉사자로서 소양을 갖춰 국민들에게 선택을 받는 선량(選良)들이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실제 현실정치권은 권모술수, 마타도어, 흑색선전과 네거티브에 충실한, 그야말로 '개판'인 선거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 저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정치컨설턴트로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동시에 고민도 되었지요. 그래서 그런 부정한 선거방법이 아닌, 정직하게 선거운동을 해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선거전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몇 회나 연재하게 될지 모르지만, 예비후보자는 영감을, 착한 시민(유권자)에게는 선택의 기준을 제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 기자 말

닉슨 대통령
 닉슨 대통령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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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의 경쟁자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 허버트 험프리는 존슨 행정부의 부통령 출신으로 갈가리 찢긴 민주당을 봉합하려 노력을 했습니다. 자신이 집권하면 '베트남 전쟁'을 당장 종식시키겠다며 닉슨과 토론을 요구했지만 이 노련한 닉슨은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계속 토론을 거부했지요. 왜냐? 토론 해봤자 득 되는 것이 없었거든요. 닉슨이 말을 잘 못해서라기보다는 전략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민주당에서 '소심한 리처드'라고 비아냥거리든 말든 닉슨은 그냥 무시하고 라디오 야간방송에 열 차례나 출연해서 교육과 복지, 무기와 평화 등 주요 이슈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하고 '학자 같은' 태도로 임했다고 합니다. 어떤 콘셉트로요? 바로 '단합하자'라는 콘셉트죠.

'뉴 닉슨'의 이미지가 힘을 발휘해서 미국 국민들은 닉슨을 예전의 '분열적 노림수'나 찾는 정치인이 아닌, 미국을 통합시키고 깊은 상처를 치유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우려해서 험프리의 런닝메이트인 에드먼드 머스키(Edmund Muskie)는 이렇게 일갈합니다.

"닉슨씨, 당신이 언제부터 그렇게 진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는가? 당신은 평생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저항하며 싸움을 벌였다. 당신은 민주당을 반역자의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 그는 해리 트루먼과 싸웠다. 그는 루즈벨트와도 싸웠다. 케네디와 스티븐슨과도 싸웠고 린드 존슨과도 싸웠다. … 이 공화당원은 자신이 노동자의 친구라고 떠벌리고 있다. 이만하면 뉴스감이다. 그러나 내가 보장하건대, 그가 노동자의 친구라면 스크루지는 바로 산타클로스다."

머스키로서는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이겠습니까? 빤히 보이는 응큼한 닉슨의 전략에 미국 국민들이 깜박 속아 넘어가는 상황에 대해서 속이 상하지 않을 민주당 정치인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민주당은 여기에 속수무책 당하면서 스스로 분열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무능했던 것이죠. 어쩐지 이 상황…. 2012년 대한민국의 야당이 생각나지 않으시나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주당은 커다란 악재를 만났습니다. 표를 분산시킬 강력한 무소속 후보가 나타났던 것이죠. 조지 윌리스 앨라바마 주지사입니다. 그는 1963년 9월 10일, '인종분리는 위헌'이라는 '브라운 판결'에 따라 백인학교에 입학하게 된 흑인 학생 20명을 경찰력을 동원해서 막으려 했습니다. 아주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져버린 조지 윌리스는 '미국독립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어(<파워게임의 법칙>의 저자 모리스는 책에서 '무소속'후보라고 주장했지만 착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민주당 험프리의 표를 갉아먹었습니다. 그의 주적은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 정부였거든요. 또 유권자들은 지리멸렬하고 따분하고 일관성 없는 민주당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많은 수가 윌리스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험프리는 윌리스를 주저 앉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결국 표만 빼앗겼습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왔습니다. 닉슨 43.3%, 험프리 42.6%, 윌리스 13.5%의 근소한 차이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모호한 화법과 '단합'을 내세운 치밀한 전략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한 것입니다. 솔직히 닉슨은 베트남 폭격과 확전을 통해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속셈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그저 '단결하자! 단합하자!'만 외쳤습니다. 그가 그렇게 외치면 외칠수록 민주당은 분열했고 지리멸렬해 간 것이죠. 여기서 어김없이 딕 모리스는 그의 사감(私感)을 드러냅니다.

"그(닉슨)가 대통령으로서 무서운 집착과 편집광적 태도를 드러냈고 또 피아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대응을 보이다가 결국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게 된 정황을 생각한다면 단합을 내세운 1968년의 닉슨 선거운동은 상당히 엉큼하고 음흉해 보인다. … 닉슨이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낸 형태는 정치의 어두운 면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즉 분열시켜 정복하는 게임에서 조작과 기만행위가 가끔씩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데자뷰 혹은 진화, '유체이탈 화법'

카를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에 나오는 용어로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래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에서 유래된 말인데, 쉽게 말해 왕의 가면을 쓰면 왕의 역할을, 동물의 가면을 쓰면 동물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이 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살다보면 집단이 자기에게 기대하는 여러 역할을 배우가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듯이 산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일들은 남의 이야기 하듯 하지 않고 분명히 자신의 일로 밝히겠지만 정작 문제는 부정적인 일에 대해서는 꼭 남의 일처럼 이야기 한다는 것이죠. 사람 누구나 그럴 수 있고 이런 것이 꼭 병적인 일이거나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융은 덧붙입니다.

그러나 진짜 심각한 것은 '책임'의 문제가 뒤따르는 정치인 또는 공인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남의 일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 또는 정치적 결정을 스스로 해놓고도 그건 자기가 한 행동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심지어 남 탓까지 합니다) 자기가 결정한 게 아니라고 정말 스스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인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권력의지가 강한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그 옆은 전두환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그 옆은 전두환 전 대통령.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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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삼 대통령으로, 그는 여전히 IMF가 당시 야당의 탓(김대중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네요. 이런 상황이니까 일반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외계어를 구사하는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되었든 이런 상황들을 <나꼼수>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기발한 조어(造語)를 통해 비꼬게 되었고 이제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조차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닉슨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화법 그리고 유체이탈 화법의 공통점은 원래의 사건이나 주제의 본질을 가리는데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지금의 '유체이탈 화법'은 1960년대 닉슨의 모호한 화법의 진화판입니다. 그 시절이나 지금 201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나 '본질'은 간데없고 '지엽말단'만 나부끼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리 유체이탈 화법이 창궐하나

지난 2008년 6월 19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6월 19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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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시위를 보고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듣고 '뼈저린 반성'을 한 후에 두 번씩이나 사과를 한 대통령은, 2년 뒤에 "촛불시위 2년이 지났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라며 자신이 왜 '뼈저린 반성'을 했는지, 왜 사과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딱 유체이탈 상황이지요. 이런 유체이탈 발언도 최근에 있었습니다.

"전문성을 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맡았으면 어떻겠냐 해서 절차를 밟았는데도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그런 인물이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불행하고 불미스러운 일도 있고 해서 앞으로 인사위원회도 더 다면적으로 하고, 철저하게 검증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서 철저히 하도록 하겠다."

지난 5월 12일 허태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 사과의 뜻을 표명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난 5월 12일 허태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 사과의 뜻을 표명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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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런 인물'이 누구인지, 누가 발언했는지는 독자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참고로 그는 그랩(grab)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답니다.

어디 정치권만 그런가요? 재계의 황제 이건희 회장은 선대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간절한(?) 염원을 이야기 하셨죠.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삼성반도체 직원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모토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이야기와 광고 카피는 딱 유체이탈 화법이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자료사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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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만 문제가 아닙니다. 표절로 유명한 오정현이라는 목사는 "설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되고 한국교회의 잘못된 관행의 고리가 끊기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길 들으신다면 참 뻘쭘(?) 하실 것 같네요.

저와 같이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지만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명예도 있는 이런 분들이 이야길 하면 금방 퍼질 것을 알면서도 왜 이런 이야길 할까요? 왜 이리도 한국 사회는 유체이탈 화법이 창궐할까요?

제가 감히 추측컨대,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국민(소비자 또는 성도)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고 나면 사실상 그 누구도 그들의 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뒤집어진 것이 바로 87년 6월 항쟁이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패배로 귀결되었지요.

제가 비록 재계와 종교계의 방법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10년 이상 정치컨설팅을 하면서 정치인들이 어떻게 갈라치기를 해서 권력을 획득하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겁니다. 닉슨은 모호하게, 2012년과 2013년의 정치인들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들을 갈라칩니다. 속지 맙시다. 단언컨대, 유체이탈 화법은 '거짓말'의 다른 말입니다.

짱구 아빠에게 배우자

거의 성인물이나 다름이 없는, 그래서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만화영화 <짱구는 못 말려>에는 다양한 여러 사람이 나오지만 주인공 짱구 외에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짱구아빠'입니다. 키는 180cm나 되는 훤칠한 키인데 만화에 나오는 모습은 가끔 '변태'의 모습을 보입니다만, 그는 일본의 명문대학교인 와세다 대학교 출신이라고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스카이대 출신이라는 거죠. 만화에 나오는 짱구아빠의 명언으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일주일만 행복하려면 차를 사라. 한 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 행복 하고 싶다면 정직하게 살아라."

글을 쓰다가 국무회의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의결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정치인들의 전략적 행위가 '중도층 다가서기'와 '갈라치기'라는 큰 전략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최근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흐름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저는 '데자뷰'라고 표현하면서, 최근의 일련의 '정치적 발언'들이 옛 정치인들의 발언과 닮았다는 표현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든 상상력 그 이상을 보여주는 정치권은 '발언'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조차 '데자뷰'로 보여주고 있네요. 정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뱀발 - 아쉽지만 이렇게 해서 쉽지 않게 '중도층 다가서기' 전략과 '갈라치기' 전략에 대한 설명을 끝냈습니다. 글을 정리하다가 '해리 트루먼'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는데, 이는 추후에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는 예고해 드린 대로 '이슈'와 '이슈파이팅'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치인이 내세운 이슈는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치밀하게 기획된 이슈도 있고 어쩌다 얻어 걸린 이슈도 있습니다.

흔히들 이슈파이팅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슈파이팅의 속성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광역 도지사 선거나 대통령 선거같이 큰 선거에서는 이슈파이팅을 할 수 있지만 기초의원 선거를 비롯한 작은 선거는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슈의 속성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깁니다. 다음 주에는 예비 후보자가, 아니 정치인이면 꼭 알아야 하는 이슈와 이슈파이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태그:#닉슨, #딕모리스, #유체이탈화법, #짱구아빠, #갈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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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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