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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책표지 여행의 기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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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여행방법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행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그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는 철학적 담론이다. 책과 함께 "왜 여행하는지"와 그 의미와 방법에 대해 좀더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여행서다.

여행이라면 흔히 우리는 이곳에서 저곳, 익숙한데서 낯선 곳으로 장소 이동을 생각한다. 여행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실은 실제적이고 실용서는 많지만, 여행 철학에 관한 문제들,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왜 나는 여행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기온이 내려가고 비가 오고 대서양에서 온 바람이 제멋대로 불고 습도가 높아지고 나뭇잎이 떨어지던 겨울 어느 날, '매일 아침 두꺼비 한 마리를 삼켜야만 하루 종일 그보다 더 역겨운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날들 가운데서 저자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여행의 출발점은 그가 살고 있는 런던의 해머스미스 지역이며 귀환점 역시 그러하다.

"나는 1884년에 출간된 J.K.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를 발견했다"고 그는 쓴다. 소설 속의 귀족 데제생트 공작은 파리 교외의 드넓은 별장에서 혼자 사는데 어느 날 이른 아침 런던을 여행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치솟는다. 그런 욕망은 난롯가에 앉아 디킨스를 읽고 있을 때 찾아온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영국인의 삶의 모습들이 궁금해졌다.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하인들에게 짐을 꾸리라 명령하고 기차에 올라타 파리로 간다. 달콤한 백일몽에 빠져들었던 그는 영국인 단골들이 즐겨 찾는 주점에서 다시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두 번 다시는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여행지에 대한 설렘과 기대에도 정작 우리의 여행은 피로와 실망으로 끝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어느 늦은 오후에 날아온 광고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그것은 화려한 사진들이 수록된 '겨울 태양'이라는 제목의 커다란 팸플랫이었다.

"이 팸플릿을 만든 사람들은 어두운 직관을 통해서 야자나무, 맑은 하늘, 하얀 해변을 보여주는 노출 과다의 사진들, 지성을 모욕하고 자유의지를 무너뜨리는 힘을 지닌 이런 사진들에 사람들이 쉽게 현혹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라면 회의와 신중함을 자랑할만한 사람들도 이런 요소들과 마주치면 원시적인 순수와 낙관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런 팸플릿만 보고도 강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는데, 사람의 계획이(심지어 인생전체도) 아주 단순하고 어설픈 행복의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 감동적이면서도 진부한 예였다.

또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했다. 나는 바베이도스 섬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16쪽).

'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상상도 못지않다. 여행 목적지에 가기 위해 침을 챙기고 비행기나 기차, 버스, 자동차를 타고 긴 시간을 이동하고 길을 찾고... 그 여정이 만만지 않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지쳐버릴 때도 있다. 여행의 상상과 여행의 실제의 간격이 큰 것을 종종 경험한다.

책에는 저자가 여행한 장소와 관련된 작가들과 책들이 등장한다. J.K.의 <거꾸로>소설의 주인공 위스망스 데제 생트 공작을 비롯해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어 했고, 평생에 걸쳐 항구, 부두, 역, 기차, 배, 호텔방에 강하게 끌렸고 자신의 집보다 여행을 하는 중에 잠시 머무는 곳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던 보를레르, 젊은 날 파리로 가서 보를레르의 시를 발견하고 이후로 평생 이 시인의 작품을 읽고 암송했던 호퍼와 그의 그림들, 거의 일생 동안 자신의 고향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머물며 자연 속을 거닐며 시를 썼던 윌리엄 워즈워스, 수많은 화가들이 아를을 그림으로 표현했지만 핵심적인 특징을 빠뜨렸다'고 했던 빈센트 반 고흐 등등.

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에 매료되고 책에 심취하고 책 속에서 책을 만나고 책속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책속에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책을 여행하고 떠나보냈다. 책은 여행이다. 좋은 책은 정말 멋진 여행이 된다.

여행에세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책을 가지고 한 여행이라고 부제를 붙일 수 있겠다. 여행이란 흔히 생각하는 일상적인 장소에서 낯선 장소로 이동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여행의 다양한 접근과 측면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혹은 여행의 이유와 방법, 색다른 방식과 접근법을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일상 속으로의 여행이다. 늘 보고 무심히 흘려보낸 것들...익히 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보게 하는 데 있었다. 드 메스트르가 <나의 침실 여행>이란 독특한 여행을 한 것처럼. 니체의 말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여행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많음에 있지 않음을, 질에 있음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저자가 한 말처럼,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고 할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우리는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가 그랬듯이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방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우리에게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 보라고 우리의 옆구리를 찌른다.

책의 첫 장 출발 편에서 만났던 J.K.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의 주인공 데제생트 공작의 이야기처럼, 퇴폐적이고 염세적인 그가 우연히 디킨스를 읽다가 어느 날 이른 아침 런던으로 여행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치솟는데 큰 맘 먹고 여행길에 올랐다가 다시 마음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가 두 번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는. 색다른 여행에의 접근법이 독특하다.

"의자에 앉아서도 아주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직접 다닐 필요가 뭐가 있는가? 런던의 냄새, 날씨, 시민, 음식, 심지어 나이프와 포크까지 다 주위에 있으니 나는 이미 런던에 와 있는 것 아닌가?" 데제생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유순한 상상력이 알아서 가져다 바치는 광경들을 거부하고 늙은 멍텅구리들처럼 해외여행이 필요하고 재미있고 유용할 것이라고 믿다니, 내 정신이 잠시 착란을 일으켰던 것이 분명하다"(20쪽)고 생각하고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두 번 다시 집을 떠나지 않았다는 데제생트. "네델란드를 다년 온 뒤, 그리고 영국을 가려다가 만 뒤, 데제생트는 다시는 해외여행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그는 '별장에 살면서 여행의 가장 훌륭한 측면, 즉 여행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물건들로 주변을 꾸몄던 것처럼.

이 책의 마지막 결론적인 부분에서도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팡세)이라고 하였듯이,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나의 침실 여행>을 들어 결론적인 글을 이끌어 낸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308쪽)고 저자가 말했듯이, 드 메스트르는 자신의 방 여행을 기록한 <나의 침실여행>과 <나의 침실 야간 탐험>을 통해 여행의 방법 내지는 그 의미를 환기시켜 준다.

드 메스트르는 따분한 일상세계를 경이로운 세계로 환기 시켜 주었다. 80년 뒤 드 메스트르의 책을 읽고 그에게 감탄했던, 그리고 자신의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니체가 했던 말로 끝을 맺을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318쪽)

하나 더, 저자의 결론적인 글이고 맨 끝부분 문장이다.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영혼 속엥서 그들이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고 할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방 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우리에게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하라고 슬며시 우리의 옆구리를 찌른다."(318쪽)

니코스 카잔스키는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영혼의 자서전',619쪽)고 했다. 하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했다. 

먼 곳의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는가? 지금 어디로 여행할 것인가... 떠나기 전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어보시라. 혹 지금 여행 중이라면, 여행길에서라도. 여행의 이유와 여행의 방법, 여행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하리라. '생각의 산파'인 여행, 더 깊은 여행으로 초대하리라.


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2011)


태그:#여행,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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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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