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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실로 대화하며 들어서고 있다.
▲ 정홍원-황교안,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안' 논의 정홍원 국무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실로 대화하며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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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헌정 사상 첫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가 제기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인에 이름을 올렸다.

청구안 국무회의 의결-대통령 재가-헌법제판소 제출은 기습작전처럼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을 대신해(?) 총대를 맸다. 정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유럽 순방으로 부재 중인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법무부가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했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현지 시간이 새벽이었음에도 국무회의 의결 직후 전자결재를 통해 서둘러 재가했다. 정부가 사전에 치밀하게 날짜를 잡고 준비해왔다는 이야기다.

'정치적 방패' 필요할 때만 책임총리... 골치 아픈 현안은 순방 중 처리?

헌정 사상 첫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라는 정치적 휘발성이 큰 사안 처리에 대통령은 뒤로 숨고 총리가 앞에 나섰다. 사실상 유명무실화 됐다는 평가를 받는 책임총리제가 대통령이 민감한 정치 현안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방패'가 필요할 때만 유독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달 28일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9분간 읽고 그대로 퇴장해 '대독(代讀)총리'라고 불렸던 정 총리는 '방패 총리'라는 별칭을 추가하게 됐다.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원내 제3당에 대한 정당해산 청구안을 논의하는데 대통령이 자리에 없다"며 "대통령마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국무위원들이 도둑고양이처럼 (청구안을) 처리했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의 책임 있는 조치가 요구되는 정치적 갈등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서고 그 사이 골치 아픈 현안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해온 패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월 미국 순방 때는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이 불거졌고, 9월 러시아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논란의 시발점이 된 <조선일보>의 혼외자 의혹 보도가 이뤄졌다. 국내에서는 청와대 배후설이 제기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국내에 없는 틈을 타 정권의 눈 밖에 난 채 전 총장 밀어내기 공작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생겼다.

또 지난 달 초 아시아태평양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박 대통령이 출국했을 때는 기초연금 공약 후퇴 후폭풍, 진영 복지부 장관의 항명성 사퇴 논란 등이 한창이었다.

국정원·군 대선 개입 추가 의혹 덮으려 공안몰이 시작했나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이 5일 정당해산 심판청구안 국무회의 통과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이 5일 정당해산 심판청구안 국무회의 통과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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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흐름이 반복되다 보니 이번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도 대통령의 부담을 줄이고 책임 소재를 흐리기 위해 정략적으로 시기를 택일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 수사와 관련해 문재인 의원의 검찰 소환 시기도 박 대통령 순방 중에 잡힌 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해산청구를 검토하기 시작한 계기가 된 내란음모 사건은 현재 재판 초기 단계라 유무죄 전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후 행정절차에 돌입해도 늦지 않는데 정부가 서두른 흔적이 역력하다.

게다가 여권의 과거 행보도 정부가 진보당 해산심판청구를 한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심을 키우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수세에 몰릴 때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사건 등 공안 이슈를 적극 활용해 왔다. 지난 6월 검찰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을 때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했다. 또 야당의 장외투쟁이 본격화하던 8월에는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 실시됐다. 게다가 9월말 기초연금 공약 후퇴와 진영 장관의 항명성 사퇴 파동이 일어나자 검찰이 느닷없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도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댓글 알바에게 특수활동비 3000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자 진보당에 데한 해산심판 청구를 제기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으로 인한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기고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또다시 공안몰이를 시작했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 황금마차 타지만... 정치적 피로감 만든 국면전환 '꼼수

영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버킹엄궁 인근 근위기병대 연병장인 호스 가드 광장에서 공식환영식을 마친 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남편 에든 버러공작과 함께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영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버킹엄궁 인근 근위기병대 연병장인 호스 가드 광장에서 공식환영식을 마친 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남편 에든 버러공작과 함께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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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쟁에 골몰하는 정치권' 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세일즈 외교에 동분서주하는 대통령'의 구도는 지지율 관리에도 효과를 발휘했다. 9월 동남아시아 순방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고치인 67%(한국갤럽 정례조사)까지 올랐다.

청와대는 이번 유럽 순방에도 많은 기대를 거는 눈치다. 원내 제3당에 대한 해산 청구안을 재가한 박 대통령은 이날 저녁(한국시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함께 백마 6마리가 끄는 황금색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찾는다. 영국이 자국을 찾아온 국빈에게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왕실 의전과 예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화려한 정상외교 행보가 이번에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사실 이전에도 해외 순방 행보를 통한 지지율 상승세는 사실 오래가지 않았다. 정치와 거리를 둔 채 민생과 외교에 전념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9월  정점을 찍은 후 지금은 50%대로 내려가 정체국면에 돌입했다.

정치 현안에 거리를 두겠다면서도 박근혜 정부에 불리한 국면이 전개될 때마다  'NLL 포기 발언 논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예비 사건'과 같은 정치 현안을 제기해 국면을 전환하려는 '꼼수'가 오히려 박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똑같은 정치적 갈등 이슈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면서 중도층을 중심으로 피로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엄호 나선 새누리당 ... 정쟁 한복판 말려든 박 대통령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는 지난 4월부터 거론돼온 문제"라며 일부러 순방 중 처리했다는 주장에 대해 음모론이라며 대통령 엄호에 나섰다. 하지만 야권은 박 대통령이 공안 이슈를 활용해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며 박 대통령을 정면 겨냥하면서, 오히려 박 대통령이 정쟁의 한복판에 선 모양새다. 

때문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문재인 의원의 검찰 소환 조사 등 야당 옥죄기를 통한 국면전환 시도는 여야 간 불신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당에서는 "이런 식의 공작 정치가 결국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박근혜 정부는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정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믿음을 잃은 정권은 나라 전체를 어지럽히고 힘들게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태그:#박근혜,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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