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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화랑로 도로변을 서정적인 가로수길로 바꿔주는 플라타너스 나무와 풍성한 낙엽.
 회색빛 화랑로 도로변을 서정적인 가로수길로 바꿔주는 플라타너스 나무와 풍성한 낙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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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전국이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소식으로 들썩인다. 하필 이런 절정의 가을날,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다가 부상을 당할 건 뭐람. 먼 산은커녕 동네 가까이에 있는 북한산도 오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때깔 고운 단풍으로 화려한 지인들의 블로그를 구경하며 안구 정화만 하고 있는데 문득 서울 도심 속에 숨어 있는 멋진 가을 길이 떠올랐다.

울긋불긋 단풍과 은행잎이 거리 곳곳을 수놓고, 제멋에 겨워 떨어진 커다란 낙엽들이 바람 따라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늦가을의 감성과 정취를 한껏 발산하고 있는 곳, 서울 노원구의 화랑로다. 길 중간중간에 운치 있는 가을 풍경을 품은 명소들도 있어 더욱 좋다. 낙엽을 맞으러 굳이 멀리 찾을 필요가 없는 멋진 가로수 길이다.

회색빛 도심에 정취를 베푸는 자연의 조화

수나무인지 은행나무 열매 특유의 냄새가 안나서 편안하게 노랑빛깔을 감상했다.
 수나무인지 은행나무 열매 특유의 냄새가 안나서 편안하게 노랑빛깔을 감상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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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서로 화려함을 뽐내며 눈을 즐겁게 해준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서로 화려함을 뽐내며 눈을 즐겁게 해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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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6호선 전철 화랑대역(5번 출구)으로 나오니 가을 나무들의 잔치로 울긋불긋한 공원이 여행자를 반긴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서로 화려함을 뽐내며 공원을 화사하게 꾸미고 있다. 살아있는 색감이 전해 주는 생동감은 역시 TV나 모니터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주변 벤치에 앉아 있는 남녀노소 시민들마저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듯하다.

은행나무들이 다행히 수나무인지 특유의 고약한 은행 열매 냄새가 나지 않아 편안하게 공원 벤치에 앉아 깊어 가는 가을 정취를 실컷 감상했다.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나무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자신의 씨앗인 열매를 짐승들에게서 보호하고자 하는 자연의 조화다. 그렇다면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수를 암나무가 아닌 수나무만 골라 심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어렵단다.

아직까지 은행나무의 암수를 구별하는 방법이 없다고. 암수를 구별하려면 은행나무가 꽃 피는 모양을 보아야 하는데, 이 나무가 20년쯤 되어야 겨우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린 은행나무를 심을 때 암수구별은 불가능하다. 지구에서 3억 년을 살아온 오래된 나무답게 인간의 잔머리를 뛰어넘는다. 

서울에서 낙엽과 단풍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여럿 되지만, 화랑대역 입구에서 태릉을 지나 삼육대학교로 이어지는 화랑로는 그중에서도 백미로 손꼽히는 곳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데 그 길이만도 약 9킬로미터, 사진 속에 추억 속에 풍경을 담으며 산책하듯 걸으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서울에서도 가장 긴 가로수길이다.

큰 낙엽들이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위를 융단처럼 덮어 버렸다.
 큰 낙엽들이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위를 융단처럼 덮어 버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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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로와 자전거 도로가 널찍해서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화랑로.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가 널찍해서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화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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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로는 평소엔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도시의 평범한 차도 변이지만, 한여름엔 무성하게 자란 잎이 녹색 세상을 만들고, 11월의 늦가을로 접어들면 온통 낙엽으로 뒤덮이는 특별한 가로수길이 된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느티나무 외에 아름드리 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1200여 그루나 된다니 그럴만하겠다. 서울시가 선정한 단풍과 낙엽의 거리로, 쌓인 낙엽을 일부러 빨리 치워 버리지 않아 이맘때면 더욱 풍성한 낙엽의 길이 된다.

단풍과 낙엽의 거리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느티나무, 버즘나무 등의 낙엽은 물론, 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재미도 한껏 느껴 볼 수 있다. 화랑로의 주요 가로수인 아름드리 버즘나무는 나무껍질에 사람의 피부에 생기곤 하는 버즘 모양의 무늬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버즘이 반가울 리 없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 나무를 흔히 '플라타너스 나무'라고 부른다.

그 이름처럼 북아메리카 동부지역이 고향인 나무로 공해와 추위에 강해 가로수로 많이 심고, 생명력이 강해 잘 자란다. 넓은 이파리가 무성하여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기 때문에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플라타너스가 쏟아낸 커다란 '잎사귀 융단'에 발목이 폭폭 빠지는 느낌, 걸을 때마다 들려오는 사각사각 발소리는 겨울날 쌓인 눈 속을 걸을 때처럼 색다른 낭만을 선사한다. 도심지치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더 운치가 있고, 한적한 교외에 나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자전거 도로가 있는 널찍한 인도를 온통 뒤덮은 낙엽 위로 걷는 사람도 자전거 탄 시민들도 모두 낭만적인 표정을 짓는 것 같다.

추억의 간이역 기찻길, 산책하기 좋은 태릉·삼육대

경춘선 기차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폐역이 된 화랑대역을 찾아와 철길을 걷곤 한다.
 경춘선 기차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폐역이 된 화랑대역을 찾아와 철길을 걷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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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이맘때 걸으면 참 좋은 태릉.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이맘때 걸으면 참 좋은 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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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로엔 육군사관학교의 다른 이름인 화랑대, 이젠 폐역인 기차역 화랑대역,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왕릉 가운데 하나인 태릉, 아담하고 예쁜 호수를 간직한 삼육대학교 등이 있어 들르기 좋다. 화랑대는 일반 학교와 달리 들어가는 데 제한이 있다. 매주 화요일에서 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입장할 수 있다.

바로 옆에 있는 화랑대역은 역 건물과 기찻길이 남아있어 춘천 가는 무궁화호 기차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찾아와 철길을 걷곤 한다. 정다웠던 간이역은 폐역이 되어 점점 자취를 잃어가고 있지만, 역내 대합실 옆에 살던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 반가웠다. 이 간이역과 기찻길을 없애지 않고 살려서 공원을 만든다니 고맙고 기대가 된다.

한번 가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 태릉선수촌 정문을 쳐다보며 지나치면 세계문화유산이 된 조선 왕릉 가운데 하나인 태릉(泰陵)이 길섶에 나타난다. 입장료(천 원)를 내고 들어가 능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큰 무덤가를 오롯이 걷는 기분이 쓸쓸하기도 하고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 묘하다.

삼육대 제명 호수엔 단풍잎만큼이나 화려한 피부를 지닌 잉어들이 산다.
 삼육대 제명 호수엔 단풍잎만큼이나 화려한 피부를 지닌 잉어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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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취로 가득한 삼육대학교의 명물, 제명 호수.
 가을 정취로 가득한 삼육대학교의 명물, 제명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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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의 이름으로 보아 어느 왕의 무덤이겠거니 했는데 뜻밖에 왕비의 무덤이다.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무덤이다. 중종의 왕비이자 13대 왕 명종의 모후로서 명종대신 수렴청정을 실시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왕비답게 무덤은 왕비의 단릉(單陵)이라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하다. 조성 당시 문정왕후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녀의 능호를 여느 왕비들의 능호에 주로 붙는 여성적인 글자가 아니라 '클 태(泰)'자를 붙여 태릉이라고 부를 만하다.

태릉을 지나면 화랑로 낙엽 길의 맨 마지막 지점인 삼육대학교.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불암산(510m) 등산로가 교내에 있어 학생들 외에도 등산객들이 시시때때로 오가는 학교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 흐드러진 가을 색이 완연한 단풍나무, 서어나무, 쪽동백 나무들 사이로 이어진 불암산 등산로를 따라 완만한 언덕길을 십여 분 오르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아담한 제명 호수가 나타난다. 단풍잎처럼 색색의 예쁜 피부를 지닌 잉어들이 노니는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고 호수 앞 나무 벤치에 앉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유재하의 노래 <가리워진 길>이 담백하게 들려온다. 왠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그의 목소리가 호수위로 드리워진 나무들의 긴 그림자와 잘 어울린다.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11월 5일에 다녀 왔습니다. 오는 주말까지 절정의 낙엽길이 예상됩니다.
ㅇ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화랑로, #낙엽길, #태릉, #버즘나무, #제명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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