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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국 국가정보원이라는 조직의 압력에 굴복한 것인가. 검찰 조사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가장 불리한 진술을 했던 국정원 여직원 황아무개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대폭 번복했다.

4일 오전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11차 공판(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 증인으로 출석한 황씨는 검찰 조사 때와는 달리 심리전단 업무 매뉴얼을 이메일로 받아본 적이 없으며, 매일 상부로부터 내려온 '이슈 및 논지'를 서면으로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황씨는 진술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 "(검찰 조사 당시에는) 헷갈려서", "위축되고 불안감을 느껴서", "(그렇게 진술하면 자신에게) 뭔가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검찰에서 허위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서면 업무 매뉴얼과 서면 이슈 및 논지 등에 대한 기존 황씨의 진술은 이번 사건에서 국정원 '최고위' 원 전 원장과 '말단' 심리전단 직원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황씨가 진술을 전면 뒤집음에 따라 향후 검찰은 법정에서 더욱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됐다.

황씨는 김하영씨와 같은 심리전단 3팀5파트 소속으로, 검찰 수사 당시 맨 마지막에 아이디가 꼬리 잡혀 소환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는 검찰에서 다른 파트원들과 달리 구체적인 지시 및 보고 체계에 대해 순순히 다 밝혔고, 이는 검찰이 기소 방침을 굳히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서면으로 전달됐다는 이슈 및 논지에 대해 검사 앞에서 종이 위에 써서 재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후 황씨는 국정원 내부에서 각종 시달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지난달 7일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임신으로 인해 약 한 달 연기됐다. 현재 임신 15주인 황씨는 검찰 조사 당시에는 임신 상태는 아니었다. (관련기사 : 국정원 심리전단 또다른 여직원의 시달림)

전 국정원장-3차장-심리전단장 지켜보는 가운데 증언한 황씨

4일 오전 법정 문이 열리고 황씨가 들어왔다. 이날은 병합되어 치러진 첫 재판으로 원 전 원장뿐 아니라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까지 피고인으로 나와 황씨의 옆과 뒤에서 증언을 직접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검사가 물었다.

- 증인(황씨)은 검찰 조사에서 2012년 4월경 당시 심리전단 업무 매뉴얼을 원내 이메일로 전달받아 읽어본 적 있다고 했죠?
"그렇게 진술했지만, 착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메일로 받은 것은 업무 매뉴얼이 아니라 다른 행정 매뉴얼이었던 것 같다."

- 착각했었다?
"당시 헷갈려서 그랬다."

- 다시 생각이 난 이유는?
"내가 진술한 내용을 살펴보니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어 이슈 및 논지에 대해 문답이 오갔다.

- 이슈 및 논지를 서면으로 시달 받은 적이 있는가.
"구두로 전달받았다. (검찰 조사 당시 서면 전달 진술은) 위축되고 불안감을 느낄 때였다. 그런 글을 올린 계기가 뭐냐는 검사의 질문에, 개인이 했다고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껴서 그랬다."

- 지시를 받은 것은 맞는데, 서면이 아니고 구두였다? 잘못 진술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 당시 전달 받았던 이슈 및 논지 양식을 직접 작성해 보인 것은 맞는가.
"작성해 보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구두로 전달받은 것을 평소 메모를 해왔는데 그 메모 양식을 적은 것이다. 검찰에서는 서면으로 받았다고 하면 뭔가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

- 허위진술했다?
"많이 위축되고 당황하고 그래서 그랬다."

판사도 "이해 안 간다" 지적... 검찰 진술조서 유출 의혹도

주요한 진술이 대폭 번복되는 상황. 의문을 품은 판사가 업무 매뉴얼에 대해 물었다.

- 직접 받았는지, 이메일로 받았는지, 이런 것은 착각할 수도 있는데, 본인이 '이메일로 받아서 읽어 보았다'라고까지 진술한 것으로 보아, 읽어 보지도 않고 처음 보는 문서를 그렇게 진술하는 것은 조금 이해가 안간다.
"당시 비슷한 성격의 행정 관련 메일이 많았기 때문에 착각했다."

그 외 다른 많은 사안에서 황씨의 진술은 대폭 후퇴했다. 구체적인 게시글에 대해 이슈 및 논지가 기억이 안 난다거나, 일부는 지시 없이 개인적으로 올린 글이라고 말했다.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심리전단 지시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거나 회피했다.

특히 "검찰에서는 그렇게 진술했지만, 나중에 (내가) 진술한 내용을 살펴보니 오류가 있었다"고 여러 차례 말해, 검찰 조서가 국정원 측에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는 검찰 조사 이후 조서의 내용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으로부터 전화로 들었다고 증언했다.

- 증인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이후, 조서 내용을 보거나 조서 내용이 어떤지 들은 적이 있는가.
"휴직중이라서 사무실 출근 안했다. 통화로 들었다."

- 조서를 본 것은 아니고 통화로 들었다? 누구에게 들었나.
"사무실에서."

- 심리전단 직원이었나?
"그렇다."


태그:#원세훈, #국정원, #심리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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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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