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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앞에 아빠가 앉아 있었다.
 도자기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앞에 아빠가 앉아 있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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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곳 지명이 가물가물해서 '이천 도자기 페스티벌'이라고 대충 입력했는데도, 친절한 내비게이션 아가씨는 길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 경기도 이천 설봉공원에 있는 '이천 세라피아'였다.

'이천 세라피아'는 '2013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세 곳 중 한 곳이다. 나머지 두 곳은 광주 곤지암 '도자공원'과 여주 '도자세상'이다.

11월이 시작되는 첫 날, 이천 세라피아에 다녀왔다. 도자기에 조예가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니다. 가을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그 곳에 도착해 있었다.

비엔날레(biennale)는 이태리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 이란 뜻이다. 세라피아는 세라믹(Ceramic)과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다. 우리말로 하면 '도자기 천국'정도로 해석 된다.

'고려청자, 조선 백자가 있는 도자기 종주국인데, 좋은 한국말로 하지 뭐 땜시 꼬부랑말을 죄다 붙여 놓았지, 별로 멋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투덜거리며 운전을 하다 보니 자동차가 어느 새 세라피아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래! 맞아! 나도 저런 놀이 했었어

작품, 소녀
 작품, 소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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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아에서 가장 먼저 내 발길을 붙잡은 건 도자기가 아니라 아이들이다. 아빠와 함께 흙을 만지작거리며 도자기 만들기 체험에 여념이 없는 예닐곱 살 여자 아이들 모습이 정겨웠다. 아이들이 만지는 흙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저 만할 때 나도 저런 놀이를 했었다. 누나와 함께 흙으로 항아리 모형 같은 것을 만들었다. 손을 감싸는 흙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었다.

'세라믹 창조센터'에 발을 들이니, 사방이 온통 도자기로 채워져 있다. 어째서 '세라피아' 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를 알려 주는 공간이었다. 창조공방에는 작가들 이름이 붙은 아기자기한 또는 약간 기괴한 모양의 작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창작의도·창작동기 등, 작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귀찮은 사람이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무엇인가 물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을 만든 작가는 단 한 명도 그 자리에 없었다.

작품, 나의 파란 하늘
 작품, 나의 파란 하늘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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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남긴 채 2층으로 향했다. 2층에는 40대 이하의 젊은 작가들 중,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칠 가능성이 있는 작가를 발굴할 목적으로 기획된 'HOT Rookies' 라는 특별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특별전시에 온라인 국제공모를 통해 선정된 8개국 20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소녀들이 불만이 가득한 냉소적인 표정을 한 채 서 있고, 한 젊은 여자가 얇은 천을 덮은 채 반라로 누워있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라이너 쿠르카(Raineer KURKA) 라는 독일 작가 작품이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 속의 소녀는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듯한 멍한 눈을 하고 있다. 그 아무생각 없어 보이는 멍한 눈에서, 신기하게도 소녀가 품고 있는 좌절과 불만이 느껴졌다.  

중국 작가 '우디'의 '나의 파란 하늘'이라는 작품도 인상적이다. 그의 작품은 갖가지 기괴한 표정을 하고 있는 5개의 얼굴이다. 작가는 일그러지고, 탐욕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통해 물질에 대한 욕망·유혹, 이를 감내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나의 파란 하늘
 나의 파란 하늘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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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얼굴은 모두 한 사람의 얼굴, 바로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과장·왜곡·변형시켜서 욕망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혹은 끊임없이 욕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냈다.

익명성을 담보로 쉽게 상처주고 상처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 '타자의 욕망 앞에 서다'는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공감이 큰 작품이다. 김명선이라는 한국 작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악성 댓글 때문에 한번 쯤 아픔을 겪었거나, 또는 아픔을 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큰 울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그런 경험이 없어도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무척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태생적으로 둔하고 무감각한 성격 덕(?)에 악성 댓글로 인한 상처를 거의 받지 않으며 살아왔는데도, 작품을 보자마자 '맞아, 맞아'란 말이 절로 되뇌어졌다. 

원형 전시대 중앙에 있는 토끼를 중심으로 여러 마리의 토끼들이 무리지어 있다. 토끼를 자세히 살펴보면 중앙에 서 있는 토끼는 도끼가 머리에 꽂힌 채 피를 흘리며 서 있고, 나머지 토끼들은 차갑거나 냉혹한 표정, 그저 관조하는 듯한 냉랭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점점 서로 남이 되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소녀들이 불만 가득한 냉소적인 표정으로

작품, 타자의 욕망앞에 서다
 작품, 타자의 욕망앞에 서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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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는 국제지명공모전에 출품된 40세 이상 국내외 중견작가들 작품이 전시돼있다. 국제 지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작가에게는 상금 2만 불이 시상금으로 주어진다. '국지지명공모전'은 현대 도예 분양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작가들 간의 우호적인 경쟁을 통해 현대도예의 흐름을 조망하고 비평적 담론을 생성하기 위해 개최했다고 한다.

'요람'이라는 작품을 보는 순간 느낀 섬뜩함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윌마 크루즈'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작가 작품이다. 요람에 누워있는 것은 분명 작고 귀여운 인간의 아기들인데, 참으로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다.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고, 어떤 아기는 동물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기괴한 아기들은 여러 색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인종의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방대한 양의 아기 형상은 급증하는 인구와 환경 파괴를 상징한다. 기형적인 아이들 모습은, 기형에 대한 공포가 아닌 좌절된 생식력을 의미한다. 동물형상으로 변종된 아기들 모습에는 너, 나,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에 동물도 포함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한다.

작품, 요람
 작품, 요람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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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작가 '리샤오펑'의 '불사조1'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얼핏 모아도 꽤 매력적인 여자 옷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송·원·명·청 왕조시대에 사용됐던 그릇들의 파편을 엮어 만든 용기, 즉 신체를 담을 수 있는 도자기 옷이다. 그렇다면 불사조와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불사조는 수백 년을 살다가 스스로를 불태운 뒤 그 재 속에서 되살아난다는 전설의 새다. 불사조는 중국 문화에서 복이나 행운을 상징한다. 그 불사조를 작가는 붉은 색의 도자기 파편들로 표현했다. 과거에 빛나던 도자기 파편들이 먼지 속에 묻혀 있다가 작가의 손을 통해 다시 고유의 광택과 생명력을 되찾게 된다.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렇게 다시 살아난 도자기 파편은 예전 모습이 아니다. 모양도 색도 작가 손을 거치며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이 변함을 통해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대 중국사회를 표현하고 있다. 

작품, 불사조 1
 작품, 불사조 1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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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많은 작품이 '이천 세라피아 세라믹 창작센터'에 전시돼 있다. 시간이 부족해 좀 더 찬찬히 감상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정도로 멋진 작품이 즐비하다.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지난 9월 28일부터 시작됐고, 오는 11월 17일까지 계속된다. 가을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태그:#이천 세라피아, #경기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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