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 자랑이 늘어졌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650만 원짜리 패키지를 현금으로 싸게 해 600만 원에 했다고. 그것도 예신(예비신랑) 돈으로! 아마 나에게 바란 것은 "세상에, 정말? 그 비싼 패키지를 신랑이 해줬다고? 정말 너 사랑하나보다. 기집애, 복받았다!" 하지만 결혼 3년차의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래, 현금 영수증은 받았니?"였다.

내 결혼 갈등의 주범, 그건 바로 웨딩 업체들

오랜 시간 웨딩을 전문으로 해온 사회자를 당황시키는 일들은 예식이 시작되면 찾아온다.
 오랜 시간 웨딩을 전문으로 해온 사회자를 당황시키는 일들은 예식이 시작되면 찾아온다.
ⓒ sxc

관련사진보기


2011년 4월. 나는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예단, 예물, 스드메, 예식장, 함, 신혼여행 등등 수많은 것들이 날보고 '얼른 정하라!'고 닥달하고 있었다. 최소한으로 검소하게, 정말 의미있는 결혼을 하자고 예비신랑과 약속했건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사촌 누구는 어떻게 했다더라, 친구 딸 누구는 어떻게 했다더라, 윗집 아들 내외는 어떻게 했다더라'는 양가 어른들의 '카더라' 통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많이 서운할 것 같다'는 어른들의 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최대한 어른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결혼이라는 엄청난 허례허식의 터널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갈등없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였다. 하지만 우리가 겪은 갈등은 시댁과 처가와의 갈등도 아니고, 예비신랑과 예비신부간의 갈등도 아니었다. 바로 업체와 예비 신혼부부의 갈등이었다. 결혼 준비에 필요한 모든 곳에서, 정말 단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들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현금으로 하시면 싸게 해드릴께요. 하지만 현금 영수증은 안 됩니다."

내가 했던 스드메는 250만 원 패키지였다. 현금으로 하면 50만 원을 깎아준댄다. 그럼 200만 원. 예비 신랑신부는 늘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이다. 세간살이를 새로 장만해야했고, 부모님이 친지분들을 모셨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예식장을 구해야했다. 무엇보다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전세 비용을 마련하느라 수중에는 현금이 얼마 남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그때 깎아준다는 50만 원은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스드메 뿐만이 아니었다. 가구, 가전, 예식장, 폐백, 이바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게 '현금으로 하면 할인'이라는 손을 내밀었고, '단 현금영수증은 없다'라는 조건을 동시에 내밀었다.

현금영수증은 없다는 업체들, 그 많은 돈의 세금은?

분명 그들은 카드 수수료를 아끼는 것 보다 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었다. 각 업체에서 깎아준다는 돈만 모아도 신혼여행이 해결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렸다. 아니, 완전히 그들의 수작에 넘어갔다. 현금을 찾아 할인을 받고 우린 싸게 잘했다며 지혜로운 소비자였다며 자위하고 집에 들어와 자리에 누웠으나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 같은 예비신부 100명이면 그들은 얼마나 탈세를 할 수 있는 거지?'

다음날 아침 예비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같은 유리지갑을 가진 월급쟁이가 이런 현금 할인 장난에 놀아나면서 "우린 유리지갑이니까"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것 같다고. 다른 사람들의 지갑을 불투명을 넘어서 열어보기 불가능한 '콘크리트 지갑'으로 만드는게 바로 우리 같은 '유리지갑'을 가진 사람들 같다고. 결국 업체에 가서, 카드 수수료 만큼을 뗀 금액만 떼고 현금영수증을 해달라고 했다. 650만 원 짜리 패키지 600만 원에 했다는 친구는 너무나 당연하게 말했다.

"아니 왜? 그거 받으면 할인 안 해주잖아."

공무원인 친구, 회계사인 그 친구의 예비 남편도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정부가 정해놓은 룰을 안 지키는 공무원, 셈에 능하지만 깨끗한 돈 처리를 해야 하는 회계사도 탈세의 협력자, 혹은 조력자가 되었다. 그녀와 그가 낸 600만 원은 그들의 연말정산 사용내역에도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그 업체의 매출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저 검은 돈이 되어 공중으로 분해되어 버린 하룻밤의 드레스·턱시도·헤어·메이크업·스튜디오촬영·본식촬영이 되어 있을 것이다.

깎아준다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이유, 아시겠죠?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혼인 건수가 6만2208건이었다고 한다. 그 중 상당 수의 예비 신혼부부들이 청담동, 논현동, 신사동 등지의 몇몇 비양심적인 업체에서 나와 내 친구가 들었던 그말 "현금으로 하면 싸게 해드릴게요. 단 현금영수증은 안 됩니다"는 소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 나라는 세수의 부족으로 복지를 줄이고, 줄이고, 줄이고 있으며 월급쟁이들의 세금을 높이고, 높이고, 높이고 있다. 600만 원 스드메를(그것도 예비신랑이 내준) 품에 안고 행복해 하던 그녀는 얼마전 자신의 프리랜서 시누이가 대학 시절 멋모르고 한 아르바이트에 대한 3년치의 종합소득세 100만 원을 대신 내 주게 되었다며 푸념을 늘어 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을 아르바이트라 하며 디자인 일을 시킨 사장은 자신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시누이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두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인 줄로만 알았던 철 모르는 대학생이었던 시누이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이번에 청구되었던 것. 아직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시누이는 돈이 없고 그것을 오빠가 대신 내주었다며 자신이 왜 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부렸다. 난 속으로 말해 주었다.

'그게 니가 아꼈던 50만 원 때문에 세수가 부족했던 정부가 국세청을 통해 3년 전 세금까지 이잡듯이 뒤져 찾아낸 돈이라고. 물론 국세청은 네가 낸 600만 원은 절대 찾을 수 없을 테지만.'

가을이 왔다. 청첩장이 우편함에 쌓이고 넘친다. 주말마다 '이번엔 3만 원? 아니면 5만 원? 설마 니가 10만 원짜리는 아니지?'라는 속절없는 갈등을 한다. 그들이 입은 드레스, 턱시도. 예식장 앞 이젤에 세워진 사진. 혼인신고 할 때, 이용한 업체 입력란을 채워야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아니면 영수증 사본이라도 제출한다던가) 몇 달치 월급을 순식간에 가져가고 세금도 뱉지 않는 결혼이란 베일을 쓴 순백의 괴물을 내가 사는 나라가 꼭 잡아주길 바랄 뿐이다.


태그:#결혼, #탈세, #결혼 관련 업체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