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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수신인 '김'은 실제와 가상을 7 대 3 정도로 버무려 만든 인물입니다. -기자말

김에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을 향한 고용노동부(아래 고용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그예 내려왔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네. 하지만 '역시나'였네. 내심으로는 제법 오래도록 '별 거 아니다'고 자기 암시를 주었어. 그런데도 가슴 한켠에 서리는 서늘함은 어쩔 수 없더군. 스산함도 밀려왔지. 그런 마음 어쩔 길 없어 이렇게 자네에게 글을 쓰네.

술자리에서 자네는 가끔 웃으며 날 열혈의 전교조 활동가니 극렬 좌파니 하는 말을 하네만, 나는 다만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어 교사이자 전교조 조합원일 따름일세. 좀 더 정확하게 '평'조합원이라고 말해야겠군. '평'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네. 그리고 그 이유 속에 오늘 자네에게 이 편지를 쓰는 뜻도 담겨 있음을 헤아려 주시게나.

어제 저녁, 전주에 다녀왔네. 전교조 전북지부가 고용부의 '노조 아님' 통보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 전주노동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어. 그 집회에 참석해 '으샤으샤' 소리로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했지. 그놈의 보충 수업 뒤 끝에 가느라 결국 집회가 끝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지만 말일세.

전교조 집회에 참석한 선생님들 모습.
 전교조 집회에 참석한 선생님들 모습.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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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돌아서기가 뭐해 선생님 예닐곱 분과 뒤풀이 겸 식사를 했다네.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 나와 자네처럼 합법화 세대(전교조가 합법화한 1999년 이후 조합원이 된 세대)는 잘 모르는 비합법 시절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어젯일처럼 다가왔지. '노조 아님' 통보가 가져올 엄혹한 분위기가 기시감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말일세. 그런 말 뒤 끝마다 이어지던 선생님들의 짧은 침묵이 내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눌렀다네.

어제는 나랏님이 한과 분을 삭이려는 전국의 전교조 선생님들을 거리와 술집으로 내몬 꼴 아닌가. 그러니 지역 골목 경제와 전국의 유흥 음식업 진흥에 큰 도움을 준 게 아니냐며 조소하던 중이었네. 그때 한 선생님이 슬픈 목소리로 말을 했어. '평'조합원이 아닌 선생님들 몇몇은 해직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고 말았다고. 어떡하냐고.

이번에는 정말 모두들 긴 침묵에 들어갔네. 그 말을 듣자니 정녕 서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내렸어. 느닷없는(?!) 이 사태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청년 전태일을 영원한 죽음으로 몰고 간 1970년대도 아닌, 개명한 2013년의 이 눈부신 10월에, 어찌하여 전교조는 스산한 가을 거리로 내몰려야 했단 말인가. 어제 함께한 선생님들은 모두 이 거꾸로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결코 믿을 수 없었네.

전교조 출범한 지 24년, 물오른 청년의 나이

그렇지 않은가. 전교조가 출범한 지 물경 24년이네. 물오른 청년의 나이일세. 역대 정권도 그 존재를 인정했지 않은가. 그런데도 고용부는 야당과 수백 개의 시민단체, 국제기구, 여론 등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결국 '노조 아님' 통보를 해왔네. 말도 안 되는 '법대로'의 덫에 우리가 걸린 것일세.

말 그대로 '덫'이라네. 그런데 그 덫이 뻔뻔하기 짝이 없어. 역대 정권 그 누구도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던 것을, 권력으로서는 점점 미묘해지는 정국의 추이를 겨냥하여 대놓고 터뜨렸지 않았는가. 진작부터 그 덫에 걸릴 줄 뻔히 알면서도 제거하지 않았으니 또 얼마나 비열한가. 그런 뻔뻔하고 비열한 덫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야.

아끼는 후배 교사가 있다네. 나와 같은 '평'조합원만으로는 볼 수 없는, 이 지역 전교조 지회장 선생님일세. 내가 키우고 있는 자식 또래의 어린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바쁜 엄마이기도 하지. 이렇게 이야기하더군.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전교조를, 왜 이 나라 정부는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일세. 그래. 어젯밤, 그리고 지금 정말 힘드네. 몸도, 마음도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어제, 서남수 교육부장관을 보았는가. 고용부 장관과 함께 이번 법외노조 통보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 자리에 섰더군. 그런데 나만 그랬을까. 난 6만의 교육 동지가 법외로 밀려나는 통보를 하는 그 자리에 50만 교육 가족의 수장이 들러리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런데 서 장관이 그저 그런 들러리만은 아니었어. 차라리 들러리로만 서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발언을 했더군. 서 장관이 그랬다네. 교사는 조합원이기 이전에 선생님이라고. 조합원이기 이전에 선생님이시니 먼저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세상에 만능인 법이 있겠나. 법은 불완전하여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지. 그래도 한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모든 사람이 법을 제대로 잘 지켜야지. 하지만 생각해보게나. 도대체 이 나라 법을 누가 제일 안 지키는가. 그 허술한 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기들의 벌건 욕망을 충족하는 데 활용하는 자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교사는 선생님 이전에 헌법상 차별 받아서는 안 되는 평등한 국민

또 하나. 장관이라면 교육 가족을 옥죄는 허술한 법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을 터이지. 그렇다면 취임한 지난 3월부터라도 그 허술하고 문제 투성이의 법을 뜯어고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순리 아닌가.

그런데도 이제와서 법률이 위임하지도 않은 시행령 상의 규정 하나만 믿고 그걸 따랐어야 한다면서 을러대네. 대체 서 장관은 이 나라의 어느 부처 장관인가. 그래서 나는 서 장관의 그 말을 이렇게 돌려드리고 싶으이. 교사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헌법상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평등한 국민의 하나라고.

조합원이기 이전에 선생님이라니, 한때 조합원이었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도 서 장관의 그런 생각처럼 '조합원'이 아니라 '선생님'으로 살기 위해 전교조를 탈퇴했나. 그렇지는 않았지 않은가.

서 장관의 그 말은 정말 반민주의의적이고, 자본주의의 실질적인 주춧돌인 노동자들을 심각하게 폄훼하는 말일세. 노동자이기 이전에 선생님이니 법을 잘 지키라는 논리를 뒤집어보게나. 그렇다면 노동자는 법을 안 지키는 집단이란 말인가. 불법을 저지르며 자기 조직(노조)의 이익만 생각하면서 파렴치하게 사는 이들이란 말인가. 그런 공공연한 오해와 부정적인 낙인 효과를 가져오는 위험한 발언을 장관이란 사람이 국민 앞에서 내뱉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네.

젊은 초등 선생님들이 집회 관련 사전 퍼포먼스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젊은 초등 선생님들이 집회 관련 사전 퍼포먼스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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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아래에서는 '선생님'으로 하겠네. 김 선생님은 지금 '위원장'이라는 호칭만으로도 커다란 무게감에 힘겨워하실 게야)을 잘 알고 있겠지. 우리 언젠가도 집회에서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 않은가. 그 김 선생님이 긴 시간 동안 정부의 법외노조화 협박에 항의하는 단식을 했다네. 그리고 어제, 언론 보도에 나온 김 선생님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았어.

김 선생님은 평소에도 '후덕한' 얼굴은 아니었지 않은가. 오히려 늘 여윈 모습이지. 그래서 그랬을까. 어제는, 그렇지 않아도 퀭한 얼굴이 더욱 안쓰럽게 다가오더군. 힘든 단식으로 홀쭉해진 김 선생님의 모습이 참 가슴 아팠어. 김 선생님은, 그리고 많은 전교조 선생님은 지금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 해직도 불사하겠다고 말하고 있네. 감옥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니 어찌 목이 메이지 않았겠나. 그래 어젯밤 김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네.

그런데 자네 아는가. 백척간두에 선 전교조의 선장인 그 김 선생님이 시를 쓰신다네. 전공 교과목은 지구과학이야. 자연과학도인 셈이지. 그러니 김 선생님의 시 쓰기는 일종의 '외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어제, 6만의 교사가 가입해 있는 전교조의 위원장이 직접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한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얼마나 기꺼웠는지 모른다네. 내가 국어 선생이어서, 시를 좋아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네. 시를 쓰는, 대단히 '정치적인' 교원노조의 위원장이라니 이 가공할 대한민국의 지형에서 얼마나 희귀하고 신선한 사례인가 말일세.

예나 지금이나 시를 쓰는 마음과 노력을 폄훼하는 자들이 있네. 고백하자면, 철없는 한때 나도 그랬었지. 이 거대한 세상을 시 따위로 어떻게 바꾸겠단 말인가. 시나 나불거리는 시인 무리가 이 세상을 바꾸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겠나. 이런 생각으로 말이야.

하지만 진짜 시는 힘이 세다네. 진짜 시인은 결코 한가한 풍류객이 아니네. 그런 시 한 편은, 옷을 적시는 실가랑비처럼, 기어이 바위를 뚫고 마는 한 방울의 낙숫물처럼, 거대한 바다로 흘러드는 풀잎의 조그만 이슬처럼, '힘'이 없으나 결코 '힘'이 없지 않네. 그런 시인 한 명이 수백만의 가슴을 뜨거운 잉걸로 만드네. 그런 시를 쓰는 위원장을 두었으니 전교조는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가.

그래 하는 말일세. 이제 다시 우리 전교조의 품으로 돌아오게나. 사실은 오늘 이 한 마디를 조심스레 꺼내려고 이토록 긴 길을 돌아왔다네. 자네가 전교조를 떠나간 이유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묻지 않겠네. 뜻이 있어 떠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꼭 다시 돌아오라고 간절히 말하고 싶네. 진심으로 부탁하는 말일세.

자네는 어제 내게 '기운 내'라는 짧은 위로의 문자를 전해 주었지. 하지만 솔직히 그 3음절의 말로는 지금도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네. 자네가 돌아와야 하네. 자네가 한때 몸 담았던, 그러다가 이런저런 말 못할 사정으로 떠나간 그 전교조로 돌아와야 하네. 돌아와 위기에 빠진 전교조에 힘을 보태 주어야 하네.

역설적이지만 마침 기회와 여건도 좋다네. 행정실이며 학교 관리자 눈치를 보지 않고 자동이체로 조합비를 내면 되니까 말일세. 사실 '이런저런 말 못할 사정' 안에 교장이나 교감과 같은 학교 관리자의 보이지 않는 견제와 불이익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 기회에 그런 눈치 보지 말고 조합에 가입해 민주주의적인 교원노조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세나.

전교조가 전능의 조직이 아님을 잘 알고 있네. 보수언론이 부풀린 것이긴 하지만 해묵은 정파 갈등도 없지 않네. 하지만 세상 어떤 조직이 완벽하고, 무정파의 일사불란함을 과시하겠는가. '검사동일체'라는 웃기지도 않은 원칙을 들먹이며 한 몸을 강조하는 검찰도 요새 시끌시끌하지 않은가.

민주주의 갈망하는 시민이 전교조에 힘 보태야 하는 이유

기실 건강한 조직이란 게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한쪽에서 찬성하면 다른 쪽에선 반대하고, 그리하여 치열하게 토론하여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일세. 새가 두 날개로 날 듯이 세상도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나란히 가야 건강해짐을 믿네. 전교조가 이 나라 교육에서 그 날개의 한쪽 노릇을 하고 있음을 믿네. 그것이 자네가 전교조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수많은 시민이 전교조에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사협의회(1987년 9월 27일 결성)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했네. 같은 해 7월 1일, 당시 문교부는 '교사의 노조 결성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전교조 소속 교사 1527명을 파면·해임했지. 전교조의 비극적인 출발이었네.

하지만 그뒤 법정 소송을 통해 해직교사 1329명이 1994년 3월 자로 복직했어. 그래도 전교조를 향한 권력의 핍박은 그치지 않았지. 이명박 정권 때 40여 명 가까운 전교조 교사들이 파면과 해임, 정직 등의 중징계를 당한 사실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선생님들 모두 무효 판결을 받고 속속 교단으로 돌아오고 있네. 바로 이것이 역사의 정의고 진보하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일세. 그 정의와 민주주의의 길에, 떨리고 두렵겠지만 자네가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네.

2013년 10월 24일, 빛나는 가을 아침에, 벗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교조 법외노조화, #김정훈 전교조위원장, #민주주의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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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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