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가정보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애초 내부 전산망에 올린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이 자료를 가지고 법정에서 검찰 주장을 공박하기도 했다.

이는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조작한 내용을 법정에서 무죄 주장의 한 근거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매우 부도덕한 행위다. 이 자료는 현재 이 사건 공판에 주요 증거로 채택되어 있다.

<오마이뉴스>는 검찰이 국정원 계정으로 특정한 402개 트위터 계정 중에 @wlsdbsk, @taesan4 두 계정이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특히 @taesan4 계정이 올린 게시글은 지난 18일 공소장변경신청서에 첨부한 범죄일람표 5만5689건 중에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두 계정은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이하 말씀 자료) 중 IEA(국제에너지기구)를 IAEA(국제원자력기구)라고 잘못 적은 것까지 그대로 트윗에 옮겨, 지난 3월 언론을 통해 국정원 의심 계정으로 지목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압수수색 당시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한 말씀 자료에는 IAEA라는 오기가 IEA로 고쳐져 있었다. 결국 국정원은 IAEA 오자를 고리로 트위터 의혹으로까지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손 본 채 제출한 것이다(관련기사: IAEA와 IEA는 왜 바뀌었을까).

해당 '말씀'이 국정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날이 지난해 11월 23일이고, 두 계정에서 오기(誤記)까지 그대로 트윗을 날린 날은 닷새 후인 11월 28일이며, 진 의원의 폭로와 언론의 지적은 지난 3월이었다. 검찰이 말씀자료를 확보한 국정원 압수수색은 지난 4월 30일 이루어졌다. 형식은 압수수색이었지만, 국가정보기관이라는 위상을 고려해 검찰이 국정원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직접 압수한 것이 아니라 자료를 요청하면 국정원이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국정원 측은 사후에 증거에 손을 댄 것에 그치지 않고, 고쳐진 자료를 가지고 법정에서 검찰측 주장을 공박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지난 14일 8차 공판에서 국정원이 제출한 말씀 자료에는 IEA라고 정확히 적혀 있다며, 고소인인 민주당에서 왜곡했고 그에 기반한 언론 보도는 오보라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 측의 주장은 ▲원래 말씀 자료에는 오자가 없고 ▲오자는 민주당에서 폭로하면서 발생했으며 ▲따라서 오자까지 똑같이 퍼뜨렸다는 @wlsdbsk와 @taesan4 계정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소장에 사용된 주요 근거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검찰 공소 내용을 탄핵하려 했다.

해당 '말씀'과 오기 트윗은 재판을 받고 있는 원 전 원장 재임 시절 일어난 일이지만, 말씀 자료 조작과 재판에서의 활용은 남재준 현 원장 부임 이후 벌어진 일이다.

자료 조작은 남재준 부임 이후 벌어진 일... 검찰 트위터 수사로 꼬리 잡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 국정원에 유리하게 조작된 채 검찰에 제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남재준 국정원장 부임 이후 일어난 일이다. 사진은 지난 8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남 원장의 모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 국정원에 유리하게 조작된 채 검찰에 제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남재준 국정원장 부임 이후 일어난 일이다. 사진은 지난 8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남 원장의 모습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검찰의 추가 수사 결과 두 계정이 국정원 계정으로 특정되고 범죄일람표에까지 수록됨으로써 국정원 측의 조작 시도는 탄로가 나게 됐다. <오마이뉴스>는 검찰이 특정한 국정원 계정 402개 목록 전체를 입수했다. 수사 결과 @wlsdbsk와 @taesan4는 단순 재전송(리트윗)용 계정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종의 '대장 계정'이었다.  검찰은 "안철수 부부의 다운계약서 관련, 가루상의 한 마디... '양심이 없스무니다'" 등 @taesan4 계정이 올린 게시글(트윗)을 대선 개입 및 정치 개입 혐의가 있다고 보고 범죄일람표 4971번, 4974번, 1만3916번, 2만2023번 등에 올렸다.

국정원의 말씀 자료 조작에 대해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아직 공소장 변경 요청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그래도 현재까지 우리 입장에서는 IEA라고 정확히 기재된 국정원의 말씀 자료를 믿을 수밖에 없다, 설마 국정원이 그것을 조작했겠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대변인은 사실 확인 요청에 너무 구체적인 사안이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서 "최종 법원 판단을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인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오자를 수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를 근거로 공소 사실을 탄핵하려한 국정원 측의 행위는 명백히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며 "이 일로 인해 원 전 원장에게 유리하게 서술되어 있는 다른 말씀 자료의 신뢰성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그:#국정원, #원세훈, #트위터
댓글5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인포그래픽 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