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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상경한 김길곤 할아버지(82세)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을 반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 정부에게 공사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 밀양사태 최고령 김길곤 할아버지 "공사 중단해 달라" 밀양에서 상경한 김길곤 할아버지(82세)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을 반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 정부에게 공사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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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까지 같이 올라왔지만 이렇게 할머니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것 보니까 눈물이 앞서서…."

주변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마이크 앞에 선 밀양 주민 김길곤(82)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오전 6시에 김 할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밀양에서 서울로 온 할머니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김 할아버지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요구가 무엇이겠습니까. 죽기 전에 우리 밀양땅, 아름답고 깨끗한 내 고향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을 이었다. 할머니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상경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렸다. 밀양 주민 110여 명과 서울의 관계자 4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경찰 측은 기자회견 전방인 도로 쪽에 '경찰버스벽'을 세웠고 오른쪽엔 '질서유지선'이라고 적힌 바리케이드와 함께 병력을 배치했다. 11시께 정부종합청사 앞에 도착한 한 할머니는 "밀양에만 까마귀(검은 옷을 입은 경찰을 의미)가 많은 줄 알았는데 여기도 많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에는 "우리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의 땅과 고향을 지키고 싶은 뿐이다",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을 어떻게 이렇게 처리할 수가 있는가"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이 들렸다.

"왜 가만히 있는 우리 괴롭히나... 대통령, 밀양 한번 내려오라"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밀양사태 관련 주민들이 상경해 밀양송전탑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밀양주민 "우리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밀양사태 관련 주민들이 상경해 밀양송전탑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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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곤 할어버지에 이어 발언을 한 밀양 주민 한정례(57)씨도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왜 정부는 잘 사는 사람만 잘 살게 하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죽이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치우씨 돌아가신 마을에 삽니다. 오죽했으면 그러겠습니까. 일본은 원전 때문에 생선이고 채소고 다 방사능 덩어리가 됐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나쁜 원전을 자꾸 세우고 송전탑 짓는다고 가만히 있는 우리를 못 살게 구는지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우리 서민들 굽어 살펴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한씨의 '부탁'대로 이날 밀양에서 서울로 올라온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공개서한에는 ▲ 명분이 사라진 밀양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시켜달라 ▲ 책임자를 처벌해달라 ▲ 밀양 송전탑 사회적 공론화기구를 구성해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밀양 주민 송루시아(58)씨는 "한창 바쁜 농사철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매일 밤 잠도 못 자면서 아무리 아프다고 외쳐봐도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며 "박 대통령에 부탁한다. 나라의 수장으로서 밑에서 보고하는 것만 듣지 말고, 한 번이라도 밀양에 내려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고리 3·4호기 부품 불합격... "원전 공사 늦어졌는데 왜 송전탑 강행하나"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경남 밀양 주민들이 상경해 송전탑을 막아달라며 국민들에게 감사와 관심을 호소하는 큰절을 하고 있다.
▲ 서울 온 밀양할머니들 '큰절' 호소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경남 밀양 주민들이 상경해 송전탑을 막아달라며 국민들에게 감사와 관심을 호소하는 큰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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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주민 외에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단체들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힘을 보탰다. 이 문제로 3일부터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아래 한전)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조성제 천주교 부산교구 신부는 "이런 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서울까지 올라오게 해 죄송하다"며 "(단식을 통해) 목숨은 제가 서울에서 걸 테니까 내려가서 절대로 다치지 말고 끝까지 의로운 싸움에 동참해주길 바립니다"라고 말했다.

'밀양 765킬로볼트(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 측도 "신고리 3호기 제어케이블 성능시험 불합격 판정으로 준공은 2년 이상 미뤄졌다"며 "송전탑 공사 강행의 명분이 없다"고 비판했다.

신고리 3·4호기는 16일 제어케이블 성능시험에서 탈락하면서 예정했던 내년 8월 완공이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신고리 3·4호기의 제어케이블은 지난 5월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된 부품이다.

제어케이블의 성능시험 탈락과 관련해 조석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 사장은 17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년 이내에 신고리 3·4호기의 케이블을 모두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한전 역시 18일 "한수원의 발표에 따라 밀양 송전탑 공사를 중단 없이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18일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신고리 3호기 관련 후속 조치 계획' 긴급 브리핑을 열어 "신고리 3·4호기 케이블 교체 및 건설 공사를 1년 내에 마무리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날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대책위 상황실장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밀양 송전탑 건설의 이유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4호기를 세우고 나서 그 전기를 송출하려는 것인데 3·4호기를 제때 지을 수 없다는 걸 정부도, 언론도 다 발표를 했다"며 "부품 하나로 지금 이렇게 공사가 늦춰졌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는 것은 명분 없는 정부와 한전의 고집일 뿐이다"라고 전했다.

한전 본사에 '항의서한' 전달... 21일부터 상경투쟁 이어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경남 밀양 주민들이 상경해 송전탑을 막아달라며 국민들에게 감사와 관심을 호소하는 큰절을 하고 있다
▲ 밀양 할머니들의 큰절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경남 밀양 주민들이 상경해 송전탑을 막아달라며 국민들에게 감사와 관심을 호소하는 큰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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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후 밀양 주민들은 '765KV'를 상징하는 '765배' 절을 통해 "그동안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을 응원해준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굽은 허리를 지지하던 지팡이를 잠시 내려놓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절을 하기 시작했다. 70여 명의 주민들이 각각 10배씩 절을 해 765배를 채웠다.

이들은 오후 2시 30분 서울 강남구 한전 본사로 자리를 옮겨 "조환익 한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항의서한에는 "조환익 사장은 국민을 속였고, 밀양 주민을 속였다. 공기업 사장으로서 이미 자격을 잃었으니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21일 '밀양 주민대표단'을 꾸려 10여 명이 서울에 상주하면서 대한문 앞 촛불집회, 국회 방문, 종교계 지도자 면담, 관계기관 방문 등을 이어간다. 25일에는 한전 국정감사장 앞의 농성도 진행할 계획이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기자회견'에서 상경한 할머니 한분이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 밀양주민 "지팡이 짚고 서라도 지키겠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세종로청사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기자회견'에서 상경한 할머니 한분이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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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주민의 대통령 전달 공개 서한 전문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밀양 주민들의 공개 서한

국정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지금 밀양 송전탑 주민들은 18일째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서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들을 지내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언론을 통해서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의 상황은 이보다 훨신 참혹합니다. 벌써 33명이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22명이 연행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는 비바람 속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농성하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쇠사슬을 묶은 노인의 사지를 들어 짐승처럼 끄집어내는 강제 해산은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들이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울부짖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밀양 송전탑 문제와 관련하여 과연 누구로부터 보고를 받고 계십니까? 아마도 청와대 비서관, 총리실 간부급 공무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들은 밀양 현장에 와 봤을까요? 다녀왔다면 누구를 만나고 왔을까요? 극소수 찬성 측 주민대표들, 관변단체, 한전 관계자 이 분들이 아닐까요? 오늘 이 자리에 몰려 온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밀양 송전탑 문제는 이렇게 극려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밀양 주민들이 왜 이렇게 8년 동안이나 국책사업을 막아서고 있는지, 보수 언론이 '외부 세력의 사주에 넘어간 몽매한 시골 노인들'로 매도해도, 인터넷 상의 입 험한 자들이 '보상금 더 받으려고 떼쓰는 노인네들'로 매도해도, 왜 이렇게 노인들이 목숨을 걸고 막고 있는지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밀양 주민들은 이미 국무총리까지 내려와서 힘을 실어주었던 정부의 보상안을 경과지 전체 주민 64%dp 해당하는 2263명이라는 압도적인 반대 서명으로 거부했스니다. 서명에 동참한 자녀들까지 포함하면 전체 80%에 육박하는 숫자입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절대로 보상으로 풀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지금 신고리 3호기 핵심 부품인 제어케이블이 성능 테스트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신고리 3호기 준공은 2년 이상 미루어졌습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급하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나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모든 국민의 삶이 소중하지만, 더더욱 이 어르신들의 삶은, 이 분들의 노년의 행복은 반드시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어르신들은 이 나라가 가장 힘든 시기에 태어나 모두가 떠난 시골 농촌을 지키며 가장 그늘진 곳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왔고 자식들을 길러내 오늘날의 이 나라를 만든 분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 사태는 일생을 국가와 이 사회를 위해 묵묵히 노동하며 헌신한 이 어르신들에 대한 너무나 심대한 모멸입니다.

아무런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공사를 지금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과연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강행되는 공사 속에서 생겨날 일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까?

밀양 주민들은 대통령께 이렇게 요청합니다.

1. 명분이 사라진 밀양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시켜 주십시오.

2. 책임자를 처벌해 주십시오. 아무런 시급성이 없었던, 핵심 관계자들은 모르지 않았을 작금의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으면서도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여 주민들을 말할 수 없느 s고통에 빠뜨리고, 공권력을 낭비하게 한 실무 책임자, 국무총리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경찰청의 책임자를 처벌해 주십시오.

3. 밀양 송전탑 사회적 공론화기구를 구성해 주십시오! 밀양 송전탑 문제는 밀양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공공갈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밀양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공공갈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이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밀양 송전탑에 얽힌 건강권의 문제, 재산상 피해의 문제, 타당성과 대안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 공론으로 떠올랐습니다. 밀양 송전탑 사회적 공론화 기구를 구성해 주십시오!

2013년 10월 18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태그:#밀양, #송전탑,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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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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