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북대 김두식 교수가 쓴 <욕망해도 괜찮아>를 보면 재미 있는 이야기가 많다. 읽으면서 한참 동안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대목도 있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에서 여배우의 노출 한도를 소개하는 대목의 내용이 특히 그랬다.

이제는 그 정도쯤이야 너그러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인격적 품성이 함양되어서일까. 오늘날에는 영화 속 여배우의 가슴 노출 정도는 아주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영화뿐이랴. 케이블 티브이의 평범한(?) 드라마에서도 여배우의 가슴 노출은 아주 자연스럽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남녀 주인공의 섹스신에서 애무나 키스가 최대 임계치였던 시대가 불과 30~40년 전이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한도가 뭐였을까 하고 김 교수가 장난스레 묻는다. 남녀 주인공이 손을 잡고 나란히 눕기? 아니면 둘이 방으로 들어가면서 화면 암전(F.O.). 혹시 난데없이 등장하는 물레방앗간만으로 섹스신을 대신한 영화도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1986년쯤이었을 것이다. 친구와 함께 몰래 삼류 에로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나는 <벌레먹은 장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본 그 영화의 주인공은 젊은 시절의 유동근과 김혜숙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우리는 실망감과 배신감(!)만 가득 안은 채 극장 문을 나섰다.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고 들어간 우리에게, 1980년대의 잔인한 검열관들은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에 최대한 가까운 게 남녀 주인공의 키스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순식간에 진행된 화면 암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뜬금없이 여배우 노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학교 교문에서 멈춰버리는 학생인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학생은 시민이되 교복을 입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면 피식 하고 웃어버리는 대한민국 학교와 교사들에게 딴죽을 걸고 싶어서다. 계기가 있다.

학생 속옷 색깔도 규정하는 학교, 이게 뭡니까

살구색 스타킹은 섹시해서 안 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복장 규정은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살구색 스타킹은 섹시해서 안 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복장 규정은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오늘(10월 17일) 오전의 어느 수업 시간이었다.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라며 격려하는 말을 수업 들머리 시간에 잠깐 해주었다. 그리고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 순간, 한 녀석이 말했다.

"추워도 스타킹을 맘대로 신을 수 없고, 겉옷도 아무거나 못 입어요."
"스타킹을 맘대로 못 신다니, 무슨 말이야?"

의아해서 물었다. 아이들은 검정색은 되고 살구색은 안 된다느니(아이들은 처음에 '살구색'이 아니라 '살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자리에서 '살구색'과 '살색'의 차이를 설명하고 고쳐 주었다.), 왜 그렇게 복장 단속을 엄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느니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순간 '살구색은 안 된다'는 말이 들려 그 이유를 물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살구색은 섹시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살구색이 섹시하다니 이게 '뭥미'?

2012년 4월 서울학생인권조례 정착화를 위한 청소년네트워크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학생인권 침해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두발 규제다. 두발 규제, 과연 몇 센티미터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이 문제는 여배우 노출 수위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왜? 결코 그 답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학교도 귀밑 7센티미터를 고수하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였다. 2000년대 초반, 내가 학교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귀밑 머리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를 놓고 교무회의에서 토의가 벌어진 적이 있다.

우수한 학업과 방정한 품행 유지를 위하는 '아름다운'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의 머리 길이를 늘려 줘서는 안 된다는 분들의 의견이 제법 있었다. 머리에 신경을 쓰면 집중력이 떨어져 성적이 떨어진다느니, 어중간하게 기르면 목이 머리카락에 쓸려 불편하게 된다느니 하는 의견들이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과연 그런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다들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하지만 회의 뒤, 그런 의견을 낸 선생님 중 한 분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정 선생 딸이 그렇게 머리를 기르고 공부 안 한다면 좋겠어?라고...

머리카락 길이가 아이들의 학업에 주는 영향을 엄밀하게 분석한 결과가 있다면 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다. 머리카락 길이를 늘리는 것에 그토록 반대하던 분들은 지금 대세가 돼가고 있는(아직 완전한 자유화까지는 아니다) 두발 길이 자유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여전히 아이들을 나무라고, 그런 아이들을 그대로 놔두는 이 타락한 세상을 개탄하고 있을까.

교복 차림새나 복장 등의 문제도 그렇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착용해야 하는 양말과 속옷 색깔을 규정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 또 있을까. 어떤 학교에서는 흰색 양말과 흰색 속옷만 허용된다. 물론 겨울이 오면 학생들의 흰 양말 착용을 강제하지 않는 유연하고 인간적인(?) 학교도 있긴 하다.

스타킹으로 화제를 돌리면 더 기가 막힌다. 겨울엔 살구색 스타킹은 안 되고 검정 스타킹만 신을 수 있는 학교가 많다. 교복 동복과 춘추복에 맞춰 동복에는 검정색을, 춘추복에는 살구색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동복에 살구색 스타킹을 맞추거나 춘추복에 검정색 스타킹을 맞춰 신으면 문제가 된다. 왜 동복에 살구색 스타킹이 안 되냐고 물으면 규정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규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규정을 위해서 있는 꼴이다.

살구색은 살구색일 뿐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난 2012년 1월 26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변춘희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본부 공동대표, 청소년 인권활동가 '수수', 한상희 정책자문위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난 2012년 1월 26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변춘희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본부 공동대표, 청소년 인권활동가 '수수', 한상희 정책자문위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민감한 학생들은 날씨가 조금만 바뀌어도 몸이 금방 반응을 보인다. 검정 스타킹 정도가 아니라 길고 두꺼운 레깅스를 착용해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몸의 반응은 몸의 반응일 뿐이다. 아이들 각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학교 분위기는 또 뭐가 되겠나. 대충 이런 말들이 오간다.

무릎 정도에 와닿는 조금 긴 양말을 불허하는 학교들도 있다. 그런 양말은 여학생들이 교복을 구입할 때 서비스 품목으로 끼워 넣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학교가 규정을 이유로 그런 긴 양말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살구색 스타킹을 전면적으로 불허하는 학교들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살구색 스타킹은 섹시하다는 것! 살구색 스타킹이 섹시하다는 건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살구색은 살구색일 뿐이다. 살구색 스타킹이 섹시하다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논리일 뿐이다.

살구색이 섹시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천연 살구색의 섹시한 얼굴을, 주변 사람들이나 낯 모르는 타인들에게 일상적으로 들이대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뭔가. 그런 논리 같지도 않은 논리를 들이대는 학교와 교사를 보면 절망의 한숨이 나온다.

학생들이 복장이나 두발 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은 그 또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문화다. 꼭 아이들 세대가 아니라도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면 자신의 머리와 복장 등을 통해 자신의 개성적인 속내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양복에 넥타이 매는 것을 좋아하는 교사와 허름한 등산용 점퍼를 즐겨 입는 교사의 개성이나 태도가 같지는 않을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12조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 된다. 다만, 복장에 대해서는 학교 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가 바로 그 조항이다.

학생들의 개성 표현의 권리는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진정으로 '교육적인' 차원에서 그 권리를 제한해야 겠다면 학교 규칙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제정하면 된다. 전체 학생회의나 공청회, 의견 수렴 등을 거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것 말이다. 학생들은 학교가 규칙을 일방적으로 정해 강제할 때보다 스스로 정했을 때 그것을 훨씬 더 잘 지킨다.

대한민국 학교는 감옥이라는 말이 있다. 억압과 통제의 요소가 많으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명령과 지시로 움직이는 교육 관료 시스템의 최하위 지위에서 그나마 교사가 숨통을 틀 수 있는 대상이 학생이기 때문일까. 학생들을 검사하고 감시하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교사들은 '꼰대' 소리 듣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21세기 학생들에게 19세기나 20세기식 교육에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 학교와 교사가 절망스러운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생인권조례, #살구색 스타킹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