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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온라인 커뮤니티의 어학 스터디그룹 모집글 게시판. 2~3분에 한 개 꼴로 모집글이 올라오고 있다.
 취업 온라인 커뮤니티의 어학 스터디그룹 모집글 게시판. 2~3분에 한 개 꼴로 모집글이 올라오고 있다.
ⓒ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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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취업 준비 온라인 커뮤니티(독취사, 스펙업, 아랑 등)에는 스터디그룹 멤버를 찾는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2~3분에 한 개꼴이다. 주로 토익, 토스(토익스피킹) 등 어학부분과 '취업스터디'라고 통칭되는 면접, PPT,  시사·상식 등을 풀패키지로 함께 준비하자는 스터디그룹 모집글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생활스터디'라고 하여 '아침에 모닝콜 해주고 함께 밥을 먹고, 공부도 하자'는 스터디그룹(?) 모집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이렇게 스터디그룹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생기면서 스터디를 하기 위한 공간 찾기도 만만치 않다. 비용이 들지 않는 학교 휴게실이나 스터디룸들은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턱없이 모자라, 자리 경쟁은 과장을 조금 보태 로또 당첨번호를 맞힐 확율과 비슷하다. 무료 공간 확보가 어렵다면, 주머니 사정이 어렵더라도 스터디 대여 공간을 이용하거나 혹은 소란스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카페를 찾는다.

이른 시간부터 꽉 차 있는 카페, 스터디를 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해 놓은 카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시선이 닿는 카페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는 '흔한 풍경'이 되었다.

1993년 1월 12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1980~90년대 대학가를 휩쓸었던 사회과학 학습열풍은 '학술동아리' 활동의 형태로 나타났다. 87년 이후 사회Ÿ인문과학 분야에 대한 학습 욕구로 각 대학의학술동아리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열기는 심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점점 식어가게 되고, 학술동아리들은 학과시험과 영어Ÿ 상식공부등 취업시험 준비를 위한 단순 스터디그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88만원 세대'인 필자로써는 90년대의 '취업난'이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어쨌든 학문적 욕구에 의해 만들어졌던 모임이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이상보다는 현실을 택하게 했다는 점은 요즘 나타나는 스터디그룹 열풍 현상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한다.

지금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업난이 더욱 더 가중됐다. 현실적 조건이 취약한 젊은 세대들에겐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학문적 욕구보다는 당장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삶의 패턴에 맞춰 진화(?)해 온 학습모임이 지금의 스터디그룹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뭐하세요?'라는 질문에 '취준생이에요'라는 답변은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청년 취업난은 16년 혹은 18년 이상의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갓 나온 청년들에게 새로운 '학생'의 신분을 부여한다. 본인이 원해서 한 공부 말고, 회사에서 원하는 '스펙'을 갖추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한다. 외국어성적 및 각종 자격증 취득 그리고 일정 정도의 소양 함양을 위한 공부까지...

청년에게 열려있는 취업의 문은 톰과 제리의 '제리'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져 있고, 이를 통과하기 위해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들은 넘쳐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취업성공이라는 '단일목표' 그리고 단기간에 성취해야만 하는 '단기목표'를 향한 취준생들의 모임인 스터디그룹의 개체수가 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스터디그룹은 결합의 목적(취업준비)과 해산의 목적(취업성공)이 뚜렷하다. 오히려 해산에 방점이 찍힌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임(동아리, 동호회 등)이 비슷한 기호를 갖는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스터디그룹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시적인 만남, 목표만이 최고의 공유재인 스터디그룹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평균 3~4개월 정도. 멤버들이 모두 취업에 성공해서거나, 시험에 합격 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한 취업준비 과정 속의 매너리즘, 의지와책임감의 소진 탓인 경우가 더 많다.

성공과 실패, 무한경쟁만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함께 모여 정보를 나누고, 학습 효율을 높이고, 서로 위로가 되는 점은 분명 긍적적이다. 하지만 점점 더 좁아져만 가는 취업의 문은 취준생들로 하여금 공허함과 패배감만 더해줄 뿐이다.

모임이 가능한 공간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카페 고객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만큼 스터디그룹의 활동지수는 높다. 그만큼공부의 절대량은 늘어났다. 공부가 목적이 아닌 수단인 사회, 사람보다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사회, 목표가 전도 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제는 동네 카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있게 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학술분야의 노벨상 하나 받지 못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좁은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오늘도 스터디그룹을 전전하며 마시는 취준생들의 아메리카노는 누군가의 여유로운 한잔의 커피가 아니라 막막한 현실의 한숨이 섞인 '눈물젖은 커피'다.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사회, 캬라멜마키아또 같은 내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절실한 이유이다.


태그:#스터디그룹, #커피, #취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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