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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 히틀러의 행동을 통해 형식적 법치주의를 비판하라.'

2010학년도 경기도 어느 외국어고의 입시 구술면접 문제다. 단순히 말하자면, 형식적 법치주의란 내용과 상관없이 형식적 법률에 따라 집행하기만 하면 합법이라는 주장으로 '악법도 법이니 고치기 전에는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 형식적 법치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는 드물다.

나치 히틀러의 교훈을 통해 인류는 형식적 법치주의를 넘어 실질적 법치주의로 이행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만 형식적 법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와 관련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법치주의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전교조에 적용한 논리가 왜 문제인지 형식적 법치주의의 극단적 사례인 히틀러의 집권과정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히틀러 독재와 나치당의 수권법

수권법(授權法) 또는 전권위임법은 입법부가 행정부에 입법권을 위임하여 행정부가 입법권을 가지도록 하는 법으로 1933년 독일 나치 정권의 입법권 위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신정권 시절 대통령이 임명하던 유정회도 수권법의 한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

독일 나치당을 이끈 히틀러.
 독일 나치당을 이끈 히틀러.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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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수권법의 정식 명칭은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인데 역설적으로 이 법이 독일을 망하게 만든 법이 됐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수권법이 형식적으로는 합법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히틀러는 1932년 대선에서 힌덴부르크에게 패배했지만 1차 31.1%, 2차 본선 36.8%의 지지를 얻었다.1933년 1월 선거에서 나치당은 43.9%를 얻어 연방의회 제1당이 되었고, 히틀러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독일 총리가 됐다.

이 승리를 기초로 1933년 3월 독일 의회는 찬성 441, 반대 94의 압도적 표차로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나치당은 정족수 2/3를 넘기기 위해 국가인민당이나 중앙당 등을 협박해 수권법을 찬성하게 만들었다.  사민당만 반대표를 던졌고, 나치의 가장 강력한 반대정당이었던 공산당 의원들은 81명 전원이 체포 또는 수배돼 1명도 의사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권처리됐다.

총 다섯 개 조문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수권법은 '행정부가 입법권을 가지며, 정부입법은 의회 및 대통령의 권한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헌법에 위반되어도 유효하며, 법령 해석권을 총리(히틀러)가 가지며, 외국과의 조약에 의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렇게 해서 가장 민주적이고 이상적이라던 바이마르 헌법은 완전히 사문화 됐다.

국민투표에 의해 다수당이 되고, 합법적으로 총리가 되었으며, 수권법까지 의회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통과시킨 나치당과 히틀러는 '합법적 통치'라는 이름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수권법 통과로 입법권을 가지게 된 나치 정권은 가장 먼저 공산당을 해산시키고, 이어서 나치당 이외의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는 정당법을 만들었다. 수권법 통과에 협조했던 중앙당과 국민인민당 등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해산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것도 모자랐는지, 1934년 8월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죽자 히틀러는 대통령과 총리를 겸하는 총통 겸 총서기가 되어 1인 독재체재를 완성했다. 수권법과 그에 의한 명령으로 자행된 유대인 학살과 만행, 전세계를 전쟁의 불구덩이로 밀어넣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적어도 당시 독일 법률로는 합법이었다. 한시법이었던 수권법은 1937년과 1939년, 1943년에 계속 갱신되면서 나치가 종언을 맞는 순간까지 맹위를 떨치며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다.

국민 주권을 빼앗고, 민주주의를 전체주의로 바꾸어버린 이 수권법이 선거로 뽑힌 나치당에 의해 합법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사적 아이러니에서 독일 국민들은 교훈을 찾았다.

2차대전 후 수권법에 의해 행정권력을 행사했던 정치인들과 관료들, 이 법에 따라서 재판을 한 나치 법관들은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전후 독일법의 기본질서는 나치 시대의 형식적 법치주의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반인권적 법과 명령을 용납하지 않았다.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니라 실질적 법치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 것이다.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추세를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여전히 실정법의 이름으로 인권유린을 행하는 구시대적 법치주의, 즉 형식적 법치주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이 형식적 법치주의 유령이 MB정부와 박근혜 정부 내내 '법치주의 확립'으로 포장됐다. '악법도 법'이라며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에 들어대는 해고자 노조원 배제 요구와 법외노조화 시도 역시 형식적 법치주의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얻은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불법"라며 재산지키기에 나선 친일파 후손들의 논리, "국민 91.5%의 찬성으로 만들어진 유신헌법에 따른 판사와 관료들을 문제삼는 것은 법치주의 위반" 또는 "유신헌법에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권이 명시돼 있으므로 긴급조치는 합헌" 등 유신을 정당화하는 주장,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당시 법률에 따른 국민의 선택으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5공 정당화 주장 등은 여전히 우리사회에 팽배한 형식적 법치주의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런 주장은 현행법을 만능으로 이해해 법이라는 형식적 틀만 갖추면 어떤 것도 허용된다는식의 형식적 법치주의의 전형들이다. 인권과 정의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다.

법치주의는 과거 군주의 자의적 통치를 막기 위한 장치로 등장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MB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이 법치주의에 대해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애초 절대적 권력을 가진 자라도 법률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법치주의는 나치 독일에서 보듯 형식주의에 머무는 순간 유대인 학살이라는 인권 유린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적 대앙을 만들 수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나치 히틀러뿐 아니라 우리의 군부독재정권에서도 민주주의나 국민주권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사용됐다.

법의 형식상 요건이 아니라 내용상의 정당성을 따지는 실질적 법치주의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법치를 앞세워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던 지난 유신과 5공 독재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악법도 무조건 지켜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국감받는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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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의 김경협, 한명숙, 홍영표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은 전교조와 전공노에 대한 노동부의 법외노조화 방침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졌다.

이들 의원들은 ILO(국제노동기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노조자문위, EI(국제교원단체총연맹) 등 국제기구의 권고와 선진국 사례 등 국제 기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대법원의 해고자와 구직자 노조 가입 허용 판례, 위헌 가능성 등을 근거로 해고자의 노조 가입 자격을 인정하는 법 개정을 촉구하고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악법도 법이니 현행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현재의 노조법이 해직교사의 노조 가입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정당성을 따질 것도 없이 그냥 법대로 해고자들 내보내라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는 방하남 장관 목소리가 처량하게 들리기까기 했다.

이 이야기는 언뜻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원칙에 맞는 주장처럼 들린다. 그런데,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이번 처신에서 법치주의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넘어 형식적 법치주의의 극단인 히틀러의 나치즘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박근혜 대통령 선거 공약집 중 노동 분야 공약.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집을 통해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공약으로 약속했다.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의 핵심이 바로 노조의 자주권이며, 그 핵심 중의 하나가 노조원의 자격을 노조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선거 공약집 중 노동 분야 공약.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집을 통해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공약으로 약속했다.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의 핵심이 바로 노조의 자주권이며, 그 핵심 중의 하나가 노조원의 자격을 노조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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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 보장의 핵심은 노조의 자주권 보장이며, 이에 근거해 노동조합 가입 자격을 노조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 법외노조화 시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공약을 파기하는 일이다.

말로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는 법치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해직교사를 노조 가입 자격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률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 보호라는 사회적 정의에 비추어 정당한지 따져는 것이 실질적 법치주의 구현의 선결 조건이다.

기존의 여성노조, 일반노조, 청년유니온 노조 관련 판결에 이어 최근 발전산업노조 관련 대법 판결에서 드러난 것처럼 특정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닌 구직자 또는 실업자, 해직자도 초기업 단위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 또는 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있다.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방하남 장관도 분명히 "전교조는 초기업 노조"임을 인정했다. 교원노조법이라는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전교조는 초기업 노조이므로 해직자도 노조원 자격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적어도 법적으로 다투어 볼 여지가 있는 사안이란 이야기다.

15일 민변에서 공개한 또 다른 판례 "조합원 중의 일부가 조합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경우, 바로 노동조합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현실적으로 침해되었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노동조합의 지위를 상실한다고 보아야 할 것"(1997.10.28, 서울고법 97다 94)에 의하면 노조 지위 상실의 판단 근거는 노동자가 아닌 자가 노조에 포함되어 있느냐 여부가 아니라 그로 인한 노조의 자주성 침해 여부이다.

그러니까, 전교조에 해직교사 9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전교조가 자체적으로 정한 규정이기 때문에 사용자나 외부인이 전교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근거가 없는 만큼 노조가 아닌 것으로 볼 이유가 없다.

법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방법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교조 사수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전교조 조합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해고자 조합원의 자격을 문제삼아 전교조 설립을 취소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전교조 "법외노조화 철회하라"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교조 사수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전교조 조합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해고자 조합원의 자격을 문제삼아 전교조 설립을 취소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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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양보해 행정부의 기존 관행으로 미루어 고용노동부가 청와대와 협의 하에 내린 전교조 법외노조 최후 통첩을 잘못된 것이라고 스스로 철회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로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타협을 해야 한다. 그것이 행정이고, 그것이 정치다.

현재, 전교조 법외노조 시도의 정당성을 따져볼 수 있는 몇 가지 독립적인 법적 절차들이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돼, 그 사이 생긴 시간을 통해 전교조와 관련 단체 등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정진후 전교조 전 위원장(현 정의당 국회의원)은 문제의 규약시정 명령을 거부해 벌금 100만원의 유죄 선고를 받은 재판에서 '현직 교사만 교원노조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한 위헌법률 제청'을 신청한 상황이다. 대법원이 이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리면 된다.

두 번째, 지난 9월 전교조는 국가인권위에 법외노조 최후 통첩에 대한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국가인권위는 긴급구제에 대해서는 인권침해 개연성과 계속성, 회복불가능성 등 형식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내부 종결하면서 이 사건을 일반 진정 사건으로 전환해 심사 중이다. 그러니까, 국가인권위에서 교조 법외노조화 최후통첩이 인권침해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 고용노동부가 이를 참고하면 된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절차인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다. 전교조는 고용노동부의 최후 통첩을 받자마자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문제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과 노조법 제2조 등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헌법재판소법에 의하면 헌법소원 제기 후 180일 이내에 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결하면 그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최종 결정을 하면 된다. 그때까지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한 고용노동부 최종 판단을 유보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것이 사회적 비용 낭비를 최소화하는 유일하고,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다.

그 사이에 정부와 국회는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교원노조법, 노조법에 대해서 당사자, 전문가와 토론해 조속히 개정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보수적인 교원단체인 교총도 법 개정에는 반대하지 않으며, 중립적인 기독교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도 이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로 전교조 법외노조 여부 판단을 미루는 게 법치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마저도 거부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 형식적 법치주의에 매몰되어 나치가 걸었던 독재을 길을 다시 걷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방하남 장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민중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전교조, #법외노조, #히틀러, #형식적 법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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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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