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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럽다'

정확히 1년 반 만에 워싱턴 D.C를 다시 방문했다. 떨어진 기온에 가랑비까지 내려 기자는 순간적으로 이 말이 떠올랐다. 13일(현지시각) 정오가 다다른 시각, 연방정부 폐쇄(shutdown)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다시 찾았다.

백악관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 경찰차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다른 주 번호판을 소지한 낡은 승용차를 검문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어딘가. 얼마 전 코네티컷에 주에 사는 한 여성이 이유를 모르게 경찰 검문에 불응하며 다시 내달리다 결국 총을 맞고 숨진 그 거리다. 더는 차를 몰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백악관에서 다소 먼 거리에 차를 주차하고 백악관을 향해 걸어갔다.

연방정부 폐쇄에도 백악관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연방정부 폐쇄에도 백악관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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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의 스산함을 뒤로하고 백악관이 보이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대부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백악관 앞은 셧다운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정말 오늘도 서 계실까?

컨셉시온 피시오트 여사, 이제는 노환으로 여러 활동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 기자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변함없이 백악관 앞에 펼쳐진 텐트를 향해 걸어갔다.

인간이 만든 가장 최악의 무기 핵무기... 미·러가 먼저 폐기해야

"브라질. 브라질에서 왔어요? 잠시만요. 어디 있더라..."

피시오트 여사, 이제는 77세가 다 된 백악관 앞의 반핵 운동가다. 피시오트 여사는 브라질에서 왔다는 관광객들에게 포르투갈어로 된 유인물을 나누어 주려고 한참을 텐트 안에서 유인물을 찾고 있었다. 결국, 유인물을 찾아내 관광객 손에 꼭 쥐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또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자 : "여사님 저 기억나세요?"
피시오트 : "어, 엉… 알지요." (여사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다, 필자가 준비해간 1년 반 전 <오마이뉴스> 기사의 사진을 보고는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관련기사: "진짜 평화? 미국부터 핵 없애야 한다")

기자: "이렇게 오늘도 계시네요. 여사님이 얼마 동안 이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이 일을 하셨는지 아세요?"
피시오트: "33년, 아마 그쯤 되었을 것인데… 힘들지 않아요."

기자: "얼마 전 경찰이 텐트를 잠시 철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한국에 기사로 썼고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여사님께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건강을 챙기셔야죠." (관련기사: 32년째 해온 백악관 앞 반전·평화 시위 텐트 철거 소동)
피시오트 : "알아요. 내가 잠시 비운 사이 그랬어요. 그 일 있고 4시간 후 내가 왔고 다시 텐트를 설치했지. (하늘을 가리키며) 신이 나를 보호하고 있으니 걱정 없어요."

기자는 피시오트 여사의 활동 내용을 너무도 잘 알기에 반핵 운동에 대한 입장을 묻지도 않았다. 그녀는 33년간 같은 자리에서 해 온 자신의 신념을 어김없이 펼쳐 나갔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더욱 강력히 비난했다.

피시오트 : "이란보다 이스라엘이 더 나빠요. 핵무기 폐기해야 해요. 그들은(이스라엘) 테러리스트한테도 자금을 대 주고 있어요. 이란도 핵무기를 가지면 안 돼요. 하지만 이스라엘도 폐기해야 해요."

기자 : "아시다시피 북한도 핵을 보유하고 있잖아요?"
피시오트 : "잘 알지요. 북한도 핵을 폐기해야 해요. 그러나 그보다 먼저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핵을 먼저 폐기해야 합니다. 인간이 만든 최악의 무기가 핵무기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들고 기자와 함께 서 있는 피시오트 여사.
 <오마이뉴스> 기사를 들고 기자와 함께 서 있는 피시오트 여사.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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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몰려드는 관광객에게 여사가 대화할 시간을 더 주고자 옆으로 비켜서며 코팅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전했다. 이에 피시오트 여사는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면서 "오늘은 비가 와서 모든 전시물을 거의 텐트 안에 다 두었는데, 기사를 텐트 옆에 전시해 유용하게 쓰겠다"며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기자는 "제가 여사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입니다"고 인사를 전하면서 다시 피시오트 여사의 손을 꼭 잡으며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하며 1년 반만의 재회의 아쉬움을 뒤로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라 기자는 점심도 해결할 겸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찾았다는 샌드위치 가게를 가 보기로 했다. 백악관 앞에 서 있는 경찰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위치를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그 가게 이름까지도 정확히 기억하며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 5분을 걸어서 그렇게 가게에 도착했다.

오바마 샌드위치 점원, "정치인들 어리석은 행동 그만하고 국민 도와야..."

기자 : "여기가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 전에 점심 사 먹은 곳이죠?"
점원 : "(반기며) 네, 맞아요."

기자 : "오바마는 무슨 메뉴 먹었어요. 그 샌드위치로 주세요. 참! 오바마 방문했을 때 일 하셨어요?"
점원 : "네, 오바마는 생각보다 놀랍게 키가 켰어요. 아주 인상이 좋았고요. 그날 경호 요원들이 깔리고 난리가 났어요. 우리 가게..."

오바마가 방문했을 당시를 설명하는 샌드위치 가게 점원.
 오바마가 방문했을 당시를 설명하는 샌드위치 가게 점원.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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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아시다시피 연방정부 폐쇄되었는데..."
점원 : "네, 참 바보같이 어리석은(silly) 일이에요. 빨리 공화, 민주당이 합의해야 해요. 그들이 합의해서 국민을 도와야 해요."

기자 : "여기 정부기관 주변들 가게가 연방정부 폐쇄를 다 죽을 맛이라던데..."
점원 : "(웃으며) 네, 그래도 우리는 오바마 방문으로 15%나 매출이 올랐어요."

기자가 다소 돌발적인 질문을 던졌으나 이제 갓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점원은 뚜렷하게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걸어 나온 백악관 앞의 펜실베이니아 도로는 일요일마저 겹쳐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한적하게 텅빈 백악관 앞 '펜실베이니아' 도로.
 한적하게 텅빈 백악관 앞 '펜실베이니아' 도로.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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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을 물론 자연사 박물관 등 모든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관광지가 문을 닫고 있었다. 간혹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박물관 앞에까지 가서 '폐쇄 공고'를 읽어보고 다시 돌아서는 모습이 여러 군데서 보였다.

연방정부 폐쇄로 인해 휴관을 알리는 공고문.
 연방정부 폐쇄로 인해 휴관을 알리는 공고문.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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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회 의원들은 폐쇄 안 되었잖아요"... 미국은 공사 중?

국가 부채 한도 협상도 해결하지 못해 국가 부도사태에 이르러 온갖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정치권의 상징, 미국 의사당을 찾았다.

2013년 10월 13일 미국 의사당의 모습.
 2013년 10월 13일 미국 의사당의 모습.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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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대의 중국 관광 버스가 말해주듯 역시 외국인들만 서성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의사당 사진 한 장을 찍고 나오는 순간, 관광객이 아닌 미국인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먼 벤치에 앉아 있었다.

기자 : "저기 죄송한데, 여기 사세요?"
부부(남편): "네, 여기 살아요. 그런데요."

기자 : "아, 저는 뉴욕에 사는 한국인인데... 연방정부가 폐쇄되어 그 모습을 보고자 의사당이 있는 이곳에 잠시 들렸습니다."
부부(남편) : "아, 네, 그런데 저기(의사당 의원을 지칭)는 폐쇄 안 되었잖아요. 사진 잘 찍어 가세요."

순간, 기자는 웃음과 함께(노부부도 같이 웃음) 아찔함을 느꼈다. 백발에 70대 중반을 넘어 보이는 노부부는 조용히 벤치에 않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지만, 기자의 질문에 의미를 알고 있었다.

다시 차를 몰며 지난번에 둘러보지 못했던 워싱턴 기념탑으로 향했다. 연방정부 폐쇄로 역시 출입이 통제된 워싱턴기념탑은 최근 공사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철조 보조물로 보였다. 그 사진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공사 중인 '워싱턴 기념탑'.
 공사 중인 '워싱턴 기념탑'.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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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은 아니 미국은 지금 공사 중이다. 언제 끝날지 아니 끝나더라도 그것으로 마무리될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찍 찾아오는 밤을 맞이하며 다시 뉴욕으로 차를 몰았다.


태그:#연방정부 폐쇄, #피시오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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