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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용산철거민참사 진압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한국항공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가운데 7일 오후 김 신임사장이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로 출근을 시도하자 노조원들이 '공항 비전문가, 경찰출신 낙하산 사장'이라며 저지하고 있다. 김 신임 사장은 천막농성을 하며 출근저지투쟁을 벌이는 노조원들의 제지를 받고 10여분만에 현장을 떠났다.
 용산철거민참사 진압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한국항공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가운데 7일 오후 김 신임사장이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로 출근을 시도하자 노조원들이 '공항 비전문가, 경찰출신 낙하산 사장'이라며 저지하고 있다. 김 신임 사장은 천막농성을 하며 출근저지투쟁을 벌이는 노조원들의 제지를 받고 10여분만에 현장을 떠났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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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한국공항공사(아래 공항공사)의 사장으로 적합한 인물은 누구일까?

참고로, 공항공사는 김포·김해·제주 등 전국 14개 공항과 항공기 안전운항을 위한 항로시설본부 및 10개 항공무선표지소를 건설·관리·운영하고 있는 공항운영 전문 공기업이다. 공항공사 사장이 지난해 받은 보수는 3억2419만 원으로,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장 가운데 가장 많다(출처 :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헌승 새누리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

A씨 : 서울지방경찰청장, 대구경찰청장으로 재직시 쌓은 대규모 조직관리 및 공직수행 경험과, 경찰최초 홍보마스코트(포돌이-포순이)를 도입하는 등 창조적 업무수행 능력, 해외공관 근무시 쌓은 해외사업 정보 및 네트워크 구축을 바탕으로...(이하 생략). 공사 해외사업 기여 및 창조적 조직혁신 달성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됨.

B씨 : 39년간 공군 지휘관 및 참모를 역임하면서 쌓은 조직관리 경험과 공역사용, 항로 및 비행운영과 이·착륙 관제업무 조정 등 민항과 공군간 협조체계 강화하는 등 안전한 공항운영 및 항공산업발전에 기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하 생략).

C씨 : 건설교통부에서 항공분야 주요보직을 두루 거치면서 저비용 항공사제도 도입, 김포공항 유휴시설 활용지원 등 다양한 공항활성화 정책을 수립하였고,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교체 수석대표로서 공항공사의 항공보안교육센터 인증취득을 적극 지원하는 등 항공 및 공항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하 생략).

여러분이 대통령이라면 세 명 중에 누구를 임명하시겠는가? 눈치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A씨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선택했다.

꼴등이 일등으로 둔갑?... 3배수 꼴찌한 김석기, 사장으로 선임

비상임 이사와 외부 전문위원 7인으로 구성된 공항공사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  달 9일 김 전 청장과 오창환 전 공군사관학교 교장, 유한준 전 국토부 ICAO 교체수석 대표 등 3명을 신임 사장 후보로 압축했다. 위에 열거한 내용은 이들 세 후보를 기획재정부에 추천하면서 밝힌 추천 사유다. 그런데 김석기 전 청장은 임원추천위원회의 서류·면접심사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고도 사장으로 임명되는 희한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민홍철 민주당 의원(김해 갑)이 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개별 서류심사 후 임원추천위 위원들의 투표방식 평가에서 5점을 받아 6점을 받은 두 후보자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면접심사 채점 결과 652점을 받아 654점을 받은 오창환 후보와 658점을 받은 유한준 후보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공항공사 사장으로서 중요한 평가 중 하나인 공항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 분야에서는 김 전 청장이 140점 만점에서 116점을 받아 2위인 오창환 후보의 128점, 1위인 유한준 후보의 136점보다 많게는 20점 이상이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김 전 청장은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2배수에 합격했고, 간단한 서면으로 진행된 국토부와 기재부의 주주총회에서 최종 낙점되어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임원추천위는 들러리로 세운 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실제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는 민 의원실과의 통화에서 "임원추천위 평가 점수를 따로 참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전문성으로 볼 때 사장 자질이 부족한 김 전 총장이 결국 사장으로 선정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안전불감증 심각한 김석기가 공항공사 사장?"

"저에 대한 평가 가운데는 늘 용산사고 애기가 따라 붙습니다만 용산사고의 본질은 불법폭력시위로부터 경찰이 선량한 시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법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정당한 법집행에서 출발합니다."

김석기 전 청장이 공항공사 사장 공모지원서에서 밝힌 자기소개 중 한 대목이다. 김 전 청장에게는 늘 '용산참사의 책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에 대해 강경진압을 명령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을 숨지게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김 전 청장은 이를 두고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그럴까?

지난 8일 국회에서 만난 이충연씨의 생각은 다르다. 이씨는 경찰특공대의 강제 진압 당시 건물 4층에 있다가 운좋게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그는 용산참사로 아버지 이상림씨를 잃었다. 그 역시 감옥에서 꼬박 4년을 보내고 지난 1월 31일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다. 그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항공사 사장에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사람을 앉힌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며 "용산에서보다 더 큰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 전 청장은 지난 7일 임명장을 받았지만,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반발과 공항공사노조의 출근 저지 농성 탓에 11일 현재까지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로 예정됐던 취임식도 잠정 연기된 상황.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리겠다. 여러분이 대통령이라면, 전문성도 부족한 데다가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마저 있는 김석기 전 청장을 공항공사 사장에 임명하시겠는가?

경기 화성갑 재보선에 출마한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 대형 사진이 내걸려 있다.
 경기 화성갑 재보선에 출마한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 대형 사진이 내걸려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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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대선 공신 홀대론'에 김석기 임명으로 부글부글

야권에서는 김석기 전 청장의 사장 임명을 두고 연일 "전형적인 청와대 낙하산 인사"라고 성토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운영법률에 따라 공모 과정을 진행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김 전 청장이 사장 공모 시점부터 사실상 내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과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공항공사노조 측에서는 지난 8월 24일 공모 시작 이후 2~3일 만에 이미 김 전 청장이 최종 후보에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 김 전 청장은 낮은 평가 점수에도 3명의 최종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결국 사장 임명장을 받았다.

사실 미리 내정을 했느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궁금한 것은 왜 '김석기'냐는 거다. 김 전 청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TK(대구·경북) 인맥' 핵심이다.

이명박 정부 때 경찰청장에까지 내정됐던 그가 결국 용산참사로 낙마하기는 했지만,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를 거쳐 이 전 대통령의 출생지인 일본 오사카 총영사까지 오르는 등 총애를 받은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게다가 제19대 총선 당시 박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던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이에 불복하고 무소속 후보로 나섰다. 박 대통령과 김 전 청장의 간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낙하산 인사'라고 주장하는 야권 인사들도 고개를 갸웃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김 전 청장이 무슨 인연이 있기에, 이렇게 무리수를 둬가며 낙하산으로 내리 꽂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야권에서 추론 끝에 가지고 온 근거는 이렇다.

"김 전 청장이 1978년 영남대를 졸업하고, 현재 영남대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남대 전 이사장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떨칠 수 없게 하는 이유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

"30년간 경찰생활만 한 김석기씨를 전혀 연관도 없는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한 이유를 아무리 찾아봐도 박 대통령과 특수관계인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것 말고는 찾지 못하겠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

일각에서는 '기관장 나눠먹기'라는 시각도 있다. 공항공사 사장 공모와 같은 시기에 진행된 한국철도공사 사장의 경우 최연혜씨가 선임됐다. 그는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당적으로 대전에서 출마했고, 최근까지 대전 서구을 당협위원장으로 재직한 바 있는 '전형적인' 친박 인사다. 따라서 최연혜씨를 철도공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대신, 친이계 몫으로 김 전 청장을 공항공사 사장에 임명했다는 얘기다.

김석기 전 청장의 임명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박근혜 정권 초기 인사참사 이후 함께 중단됐던 공공기관장 인사가 지난 달부터 서서히 재개되는 분위기다. 이런 틈을 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에선 논공행상이 한창이다. 김무성 의원이 최근 의원연찬회에 참석한 청와대 인사에게 대선 공신을 좀 챙겨달라는 얘기를 노골적으로 했는데, 전날(10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음식점에서 비공개로 열린 당청회동에서도 이런 주문이 쇄도했다는 것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당에서 준비해간 별도의 공공 기관장 인사 추천 명단을 전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앞서 정우택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열린 회의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애쓴 동지를 위한 적극적인 배려가 당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 공신 홀대론'으로 불만이 팽배하던 차에 친이계인 김석기 전 청장의 공항공사 사장 임명이 기름을 부은 꼴이다. '친박 인사들은 제쳐두고 MB 인사만 챙기냐'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공항공사 노조원들과 용산참사 유가족이 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과해동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용산철거민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신임사장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석기가 죽였다" 피켓 든 용산참사 유가족 공항공사 노조원들과 용산참사 유가족이 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과해동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용산철거민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신임사장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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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은 '논공행상', 대통령은 '나홀로인사' 

"최근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다. 이는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MB정부의 낙하산 인사 관행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인수위 시절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2개월 만에 말을 바꿨다. 지난 3월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선원칙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대선 공신들이라는 점에서 노골적으로 낙하산 인사를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결국 박 대통령은 '나홀로인사', '불통인사'를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 쓰다가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인사참사'를 겪었고, 대국민사과를 하기까지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비리 전력자 공천 배제'라는 약속을 깨고 '원조 친박' 서청원 전 대표를 10·30 재보선에 내보냈다. 이번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면 비어 있는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인사가 예상된다. 반면, 청와대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행정관 인사까지 관여할 정도로 꼼꼼히 챙기기 때문에 '인사 추천'은 엄두도 못 낸다 얘기가 들린다. 국민만 모르고 대통령 혼자만 아는 '나홀로인사', '수첩인사'가 계속되는 한, 제2의 인사참사는 물론 제2의 용산참사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태그:#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박근혜 대통령, #용산참사, #한국공항공사사장, #낙하산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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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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