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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슈퍼마켓이나 할인점 등이 없었던 옛날 구멍 가게에서 팔던 것들 일부다.
 지금과 같은 슈퍼마켓이나 할인점 등이 없었던 옛날 구멍 가게에서 팔던 것들 일부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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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구멍가에서 주로 팔았던 물건들 중 하나. 유니나 샴푸는 내가 처음 만난 샴푸로 샴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기도 하다.
 옛날 구멍가에서 주로 팔았던 물건들 중 하나. 유니나 샴푸는 내가 처음 만난 샴푸로 샴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기도 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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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슈퍼마켓이나 할인점이 없던 1970~80년대, 사람들이 좀 많이 사는 시골 동네에는 '점방'이라 불리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50여 가구가 살았던 우리 동네에도 점방이 있었다. 10분 남짓만 걸으면 읍내에 닿았던 동네였음에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점방은 요긴한 생활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점방 앞에는 늘 동네 사람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소식을 나눴고, 아이들은 올망졸망 모여 놀았다. 노란 고무줄과 검정 고무줄, 이쁜이 비누와 유니나 샴푸, 공책 몇 권과 편지봉투, 한 다스짜리 연필 상자와 모나미 볼펜상자, 젤리나 고구마과자와 뽀빠이, 양초와 성냥, 라면과 국수, 미원이나 사카린, 소다 등 꼭 필요한 생활 용품과 군것질거리 몇 가지를 팔곤 했는데 매일 구경을 해도 질리지 않았다.

점방에서 파는 것들이 워낙 흥미로웠던지라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가장 큰 구경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점방에 등장해 아이들의 끝없는 눈길을 받곤 했던 아이스크림 통이었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삼강 하드 통이었다. 시골 동네의 점방에서 팔리면서, 삼강 하드는 아이스크림의 대명사가 되었다.

삼강 하드라는 것이 아이스크림의 대명사가 되기 전에는 매고 다니며 팔던 아이스케키가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때문인지 오늘날 대체적으로 아이스크림이라 부르는 얼려 만든 군것질 거리를 나이 많은 어른들은 하드 혹은 아이스케키라 부른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표지
 <아이스크림의 지구사>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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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동네마다 있었던 점방과 그 점방에서 사먹던 달콤한 군것질 거리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하드를 오랜만에 추억할 수 있게 한 책은 <아이스크림의 지구사>(휴머니스트 펴냄)이다.

아이스크림은 냉동시설 없이는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냉동기술이 등장한 근대에나 먹기 시작한 음식 정도로 지레짐작하기 쉽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스크림은 3000년 전부터 먹어온 음식이란다.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을 정도로 인류는 오래 전부터 얼음을 즐겼다. 그런데 산꼭대기 등에서 얼음을 채취해 보관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고 수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런 만큼 아무나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이처럼 보관하기 어려운 얼음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에 의하면 '얼음에 매료된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국 당나라의 황제들은 와인이나 꿀, 밀크 등을 천연 얼음에 넣어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스크림의 기원'이란다.

이처럼 채취부터 보관까지 어려운 얼음을 바탕으로 탄생한지라 아이스크림은 황제와 같은 권력가들이나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 1870년에 독일의 과학자 린네가 발명한 냉동 기술과 만나게 되어 대량 생산을 하게 되는 19세기까지, 수세기 동안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얼음을 채취하고 보관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차갑고 달콤한 맛을 본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다양한 얼음 디저트를 만들어낸다.

책은 ▲ 고대인들에 의해 발견된 얼음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아이스크림이 되었는지 ▲ 우리들이 오늘날 맛보는 아이스바나 아이스콘 등과 같은 다양한 아이스크림들은 언제부터 먹게 되었는지 ▲ 구대륙에서 사랑받던 아이스크림이 어떻게 신대륙을 거쳐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디저트가 되었는지 ▲ 상류층만이 즐기던 사치스러운 아이스크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처럼 누구나 쉽게 먹는 대중적인 군것질거리가 되었는지 ▲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내고 먹어온 아이스크림들은 어떤 것들인지 ▲ 아이스크림들의 선두를 향한 각축전 ▲ 아이스크림의 발전에 공헌한 냉장 혹은 냉동기술 ▲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형태와 같은 아이스크림의 시작▲ 다양한 아이스크림 요리법 등 ▲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들 등 아이스크림에 얽혀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지난날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하드를 넣고 팔던 삼강하드통
 지난날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하드를 넣고 팔던 삼강하드통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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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처럼 우리 생활과 깊이 연관된 것들을 주인공으로 한 외국인 저자가 쓴 책들을 읽을 때, 우리의 현실이 언급되지 않아 아쉬울 때도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아이스크림처럼 내게도 관련 추억이 있을 경우, 그 아쉬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겠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을 비롯하여 대도시와 중소도시에서는 암모니아로 냉동한 아이스케이크를 파는 가게가 부쩍 늘어났다. 당시 아이스케이크는 노란 설탕을 탄 물에 팥을 넣어 나무꼬챙이를 꽂아 얼린 얼음덩어리였다. 사람들은 '아이스케이크'를 줄여 '아이스케키'라고 불렀다. 1950년대 서울에서 판매되던 아이스케키의 제품명은 '석빙고'와 '앙꼬'였다. 가난한 가정의 소년들은 아이스케키통을 메고 소리치며 골목을 누볐다. 도시의 극장 앞이나 운동회장도 아이스케키를 팔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위생문제가 걸렸다. 1962년 '하드 아이스크림'이 생산되면서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불량이나 위생 문제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아이스크림은 미국에서 수입한 아이스크림 기계로 기업형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더욱이 한 상자에 아이스크림 60개가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박스에는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유통했기 때문에 녹을 위험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하드'라고 불렀는데, 당시 초·중등 학생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았다. 이 '하드'의 대명사가 바로 '삼강하드'였다. - <아이스크림의 지구사>'한국 아이스크림의 역사'에서

반갑게도 이 책은 요리 칼럼니스트 주영하(박스기사 참고)씨의 '한국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특집으로 실었다.

고려시대에 집필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신라 유리왕(?~57년)이 28년에 장빙고를 만들라고 명령했으며, 신라 지증왕(437~514년)이 505년 11월에 얼음을 저장하라는 명령을 소사에 내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 조상들도 꽤 오래 전부터 얼음을 이용했다.

현풍 석빙고(보물 제673호), 청도 석빙고(보물 323호), 안동 석빙고(보물 305호),창녕 석빙고(보물 310호), 경주 석빙고(보물 66호) 등은 얼음 관련 유적들이다. 서울의 동빙고와 서빙고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쓰는 중요한 얼음 창고였는데, 외에도 강화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얼음 창고를 만들어 놓고 얼음이 나지 않는 3월부터 10월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 아이스크림의 역사' 쓴 주영하씨는
음식을 문화와 인류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이다.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김치의 문화인류학적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때부터 음식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를 출간했다. 1990년대 초반 전국의 오일장을 다룬 <한국의 시장>(4권)을 공동 집필하며 음식 재료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였고, 1998년 6월 중국 중앙민족대학 대학원 민족학과에서 <중국 쓰촨성 량산 이족의 전통 칠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음식문화와 역사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식전쟁 문화전쟁>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차폰 잔폰 짬뽕>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중국음식문화사>가 있다.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성과를 담은 <음식인문학>을 통해 문화인류학과 민속학뿐 아니라 과학·예술·역사· 사회 등 여러 학문 분과를 망라한 '비판적 음식학'을 제안했다.

20세기 한국 음식과 음식점에 대한 사료와 해석이 종횡을 이루는 <식탁 위의 한국사>에서는 거시사와 미시사를 넘나들며 음식 담론의 흐름을 읽어냄으로써 문화와 전통, 국가를 읽는 새로운 차원의 음식 인문학을 제시한다. 더불어 음식 관련 원사료를 독자 스스로 '두껍게 읽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음식학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저자 프로필 인용)
이처럼 채취부터 보관까지 어려운 얼음을 2천년 가까이 사용했던 만큼, 1900년 초 일본인 주도로 생겨난 오늘날의 팥빙수처럼 잘게 부스러뜨린 얼음에 갖가지 부재료들과 설탕, 우유 등을 넣어 만든 빙수를 팔던 가게는 인기를 끈다.

나아가 경험이 없어도 소자본으로 할 수 있다는 점, 설비 등이 매우 간단하고 매장이 넓지 않아도 된다는 점, 5원 매상에 40%의 이익이 남을 정도로 이익이 높다는 점에서 각광받는 창업 아이템이었다고도 한다. 이런 만큼 당시의 신문에 관련 기사들이 자주 오르내렸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일제강점기 특별한 군것질거리로, 괜찮은 돈벌이로 인기를 끌었던 빙수는 얼마였을까?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아이스크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간 우리가 먹은 아이스크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이스바와 아이스콘 등은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이스크림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줬을까. 우리가 소비하는 아이스크림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등을 알 수 있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는 아마도 아이스크림을 즐기며 한 번쯤 누구나 궁금해 했을 아이스크림의 탄생부터 오늘날 아이스크림의 위상까지를, 지난날 우리의 입맛을 매혹시켰던 우리의 아이스크림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거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물건이나 음식, 문화 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아이스크림 업계는 중국이나 브라질, 심지어는 발명된 독일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냉동기술을 받아들여 아이스크림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에까지 한국형 아이스크림을 수출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의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1조 5000억, 80%는 대기업이, 나머지 20%는 배스킨라빈스와 같은 프리미엄급 아이스크림이 차지하고 있단다.

덧붙이는 글 |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로라 B. 와이스 (지은이) | 김현희 (옮긴이) | 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3-08-19 | 16,000원



아이스크림의 지구사

로라 B. 와이스 지음, 김현희 옮김, 주영하 감수, 휴머니스트(2013)


태그:#아이스크림, #삼강 하드, #팥빙수, #아이스콘, #아이스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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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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