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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10만인클럽 환경운동연합은 '흐르는 강물, 생명을 품다'라는 제목의 공동기획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구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7일부터 6박7일 동안 심층 취재 보도를 내보냅니다. 전문가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어민-농민-골재채취업자들을 만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또 한강과 금강 구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기획기사를 통해 선보이겠습니다. 이 기획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후원합니다. 10만인클럽 회원, 시민기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낙동강 골재노동자로 일했던 문수진씨가 대구 화원유원지에서 사문진교 맞은편의 자신이 일했던 일터를 가르키고 있다.
 낙동강 골재노동자로 일했던 문수진씨가 대구 화원유원지에서 사문진교 맞은편의 자신이 일했던 일터를 가르키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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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건너편이 내가 일하던 장소였는데···. 물 맑고 공기가 좋은 데다가 확 트인 강가에서 일했으니 얼마나 좋은 직장이었겠어요.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4대강사업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쫓겨났지요. 일자리 창출을 한다며 4대강을 파헤치면서 강가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들은 쫓아내다니,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화원유원지 건너편 골재채취장에서 20여 년 동안 배의 선장을 해 왔던 문수진(53)씨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낙동강 22공구 건설회사인 현대건설이 인근 달성보 공사를 하면서 이 부근까지 작업장으로 써 더이상 골재 채취를 할 수 없었다. 정부가 골재 채취 면허권을 더 이상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현대건설 측의 이유다.

문씨가 근무하던 회사는 2009년 하반기부터 일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2010년 4월 폐업을 결정했다. 당시 문씨는 정부의 시책으로 하는 사업이니까 대책을 세워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정부는 무자비하게 노동자들을 쫓아냈다.

낙동강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업체가 대구와 경북에 33개가 있었고 한 회사에서 7명에서 10명 정도씩 총 4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했다. 하지만 이들은 몇 개월 사이에 모두 일자리를 잃고 쫓겨났다.


문씨를 비롯한 골재노동자들은 정부에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씨가 속한 골재노조는 4대강 사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하며 대구시내를 돌며 5보1배를 했다. 서울에 상경해 3보1배를 하기도 하고, 생존권을 요구하며 보트를 타고 수상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싸워 얻은 것이 노동자들에게 생계지원금을 지급한다는 약속이다. 정부는 2010년 8월 이후에 폐업한 업체의 노동자들에게 6개월분의 월급에 해당하는 생계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기준은 2009년 7,8 9월 월급의 평균액이었다.

문씨가 다니던 직장도 2010년 4월 폐업했기 때문에 당연히 생계지원금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부의 기준이 8월 이후로 넘어가면서 돈을 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골재노조 노동자들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도 생겨났다.

비디오 가게 운영하다 골재노동자로

4대강사업 이전까지 낙동강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일을 했던 문수진씨는 이제 어쩔수없이 부인과 함께 다른 일을 해야만 한다.
 4대강사업 이전까지 낙동강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일을 했던 문수진씨는 이제 어쩔수없이 부인과 함께 다른 일을 해야만 한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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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골재노동자로 일했던 문수진씨가 15년동안 탔던 골재채취선. 이제는 주인을 잃고 강 가에서 녹슬어가고 있다.
 낙동강 골재노동자로 일했던 문수진씨가 15년동안 탔던 골재채취선. 이제는 주인을 잃고 강 가에서 녹슬어가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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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는 1990년대 초반까지 조그만 비디오가게를 운영했다. 부인이 식당을 별도로 운영하면서 힘을 보탰다. 그러다가 비디오 가게를 정리하고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일광실업에 취직해 골재노동자가 됐다.

문씨는 골재채취선에서 선장 보조로 일을 하면서 자격증을 땄다. 결국 취업한 지 5년 만에 배를 직접 지휘하는 선장이 되었고 덕분에 가정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1997년 IMF사태로 인해 20여 명의 직원들이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문씨는 직장에서 살아남았다. 결국, 문씨를 직장에서 내몬 것은 회사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었다.

문수진씨는 직장을 잃자 대학생인 자녀의 학업을 중단시키고  군대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켜야 한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으로 무분별한 모래 채취, 건설대란 올 것

지난 8일, 자신이 일했던 현장을 찾은 문씨는 멀리 보이는 골재채취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일했던 장소에는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배 한 척만이 물 속에 떠서 녹슬어가고 있었다.

문씨는 손으로 강 너머를 가리키며 "저기에서 배를 타고 일을 했지요. 드넓은 낙동강 가에서 일을 하면 경치도 좋고 확 트인 공간이어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는데 이젠 이곳에 올 일이 없어졌네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명박 정부가 강을 정비한다고 하면서 30년 동안 쓸 모래를 준설했어요. 하지만 모래가 너무 많이 남아 적재할 곳이 모자라자 4대강 인근의 논에 보상을 하고 모래를 쌓고 흙을 쌓는 복토를 했지요. 지금 남아있는 모래는 2년도 쓰지 못할 적은 양뿐입니다. 앞으로가 문제지요."

문수진씨는 정부가 4대강 공사를 하면서 모래를 파헤쳐 적재할 공간이 모자라자 아무렇게나 처리했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건설현장에서 모래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골재업체가 매년 채취하는 모래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일정한 양만 채취해야 하는데, 이 모래를 사업때문에 싹쓸이해서 전국의 강에 모래가 모자라게 된다는 거다.

결국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산을 깎아 모래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름다운 강산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며 "강을 파헤치고 산을 훼손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4대강 사업을 하기 전까지 문수진씨가 일했던 낙동강변의 골재채취장. 이제는 풀만이 무성하다.
 4대강 사업을 하기 전까지 문수진씨가 일했던 낙동강변의 골재채취장. 이제는 풀만이 무성하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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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진씨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특혜를 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었어요. 우리같이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고, 힘들어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어요"라며 골재업을 하던 한 업체의 사장의 안타까운 사연을 떠올리기도 했다.

문씨가 근무하던 회사와 가까운 데서 골재를 채취하던 업체의 사장이 일감이 떨어지고 직원들을 내보내자 상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주장했다.
 
자신이 일하던 낙동강 건너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뒤돌아서던 문씨는 "더 이상 우리같은 힘없는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정부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대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4대강, #골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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