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부상자·연행자가 속출하고 있다. 내년 여름 전력 대란을 피하기 위해 공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다. 지중화와 우회 선로를 통한 송전 등의 방법은 아예 배제하고 765kV 송전탑 건설만 고집하는 한전의 공사 강행을 막겠다는 주민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언론들은 연일 경찰을 막아서는 주민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지만, 정작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는 접근은 많지 않다. 한편 보수 언론 일각에서는 외부 세력 개입을 들먹이면서 이념 논쟁으로 몰아가려는 저의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언론 탓에 국민들이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님비(NIMBY)현상이고 보상금을 노린 투쟁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대표적이다. 또한 할머니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전력 대란을 막기 위한 희생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주장 또한 언론의 일방적 보도에 기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공권력 투입에 맞서 밀양에서 상경해 한국전력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한 주민 소식을 접하고, 밀양의 진실이 궁금했다. 가장 바쁜 농사철에 아내와 아들딸을 이끌고 단식을 위해 상경한 김정회(42)씨. 그를 지난 3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만났다. 전날 삼성동 한국전력 앞에서 단식을 하고 잠을 자는 것조차 여의치 않아 대한문 앞으로 장소를 옮겼다는 그는 얼굴이 검게 타서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농부였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관련기사 : [오마이포토] '송전탑 반대' 밀양 부부 단식돌입

가족을 이끌고 단식을 위해 상경한 밀양 농민 김정회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될 전기를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한 세계최대 규모인 765kV 밀양 송전탑 공사가 공권력 투입을 통해 강행되는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전본사앞에서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 대책위원장인 김정회씨와 부인 박은숙씨,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대표 조성제 신부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에 돌입한 김정회씨 부부 곁에 아이들이 오자 김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밀양송전탑 막아주세요" 한전앞 부부 단식 돌입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될 전기를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한 세계최대 규모인 765kV 밀양 송전탑 공사가 공권력 투입을 통해 강행되는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전본사앞에서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 대책위원장인 김정회씨와 부인 박은숙씨,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대표 조성제 신부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에 돌입한 김정회씨 부부 곁에 아이들이 오자 김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단식을 위해 상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왜 단식을 하게 됐나?
"밀양 동화전 마을에서 유기농 채소 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이 농촌에서는 가장 바쁜 철이다. 그런데 한전의 일방적 공사 강행 소식이 알려졌고 주민들은 농사일을 팽개친 채 굴착기 앞에 모여들었다. 생업도 포기하고 목숨을 담보로 싸우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외면 할 수 없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이들도 흔쾌히 동의했다(김정회씨는 지난 8월 경찰·검찰이 송전탑 공사를 방해해 업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되어 풀려 나왔다. 이때 판사 앞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 한전에서는 내년 여름 전력 수급을 위해 공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한다. 신고리 3호기 완공이 내년 8월로 예정되어 있는데 송전을 할 수 없다면 큰일 아닌가?
"몇 가지 복합적인 질문인 것 같다. 우선 올 여름 전력난은 전기가 부족해서 나타난 게 아니라 전력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원전 24기 중 10여기가 고장과 핵심 부품의 불량품 사용으로 멈추길 반복했다. 국민들의 고통어린 절전 동참도 있었지만 전력 관리만 잘 되었다면 이렇게 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신고리 3호기의 경우 송전탑 연결과 상관없이 문제 부품 재검증 결과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완공 시기와 상관없이 발전이 늦춰질 수 있다.(민주당 조경태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신고리3호기 문제부품 재검증 결과가 오는 17일과 11월 23일 발표된다고 한다. 만약 재검증 결과시 한 가지라도 불합격 받을 경우, 신고리 3호기 가동은 대략 2년 정도 늦어지고, 빠르면 오는 2017년 후반기에나 정식가동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전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공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라는 주장은 공사 강행의 명분 쌓기를 위한 주장일 뿐이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이 원전의 40% 가까이를 세워 놓고 140Kw 신고리 3호기 가동된들 전력난 해소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전력난의 원인이 마치 밀양 주민들에게 있다는 주장, 이해할 수가 없다."

- 일부에서는 투쟁이 보상금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고압 송전탑과 암 발생의 상관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어떤 것이고, 님비 현상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보상금 문제는 주민들이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공사가 가로막히니까 한전이 주민을 회유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보상책이었고 한 마을에 한두 명 정도 보상금을 합의한 것도 사실이다. 치졸하게 보상금으로 주민들을 갈라놓고 이제 와 주민 대부분이 보상금에 합의했다고 언론에 흘리는 것은 한전이 할 일은 아니다.

암 발생과 상관관계도 그렇다. 고작 몇 달의 조사로 암의 인과관계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지금까지 과학적 결과는 암과의 상관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지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집만 하더라도 문만 열만 고압 송전탑이 보인다. 면연력이 약한 아이들이 수십 년 송전탑 아래 살아야 한다. 나중에 어떤 문제점이 나타날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또 송전탑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농협 등 은행권에서 대출을 거부당하고 있다. 급하게 땅을 팔아야 할 경우에도 살 사람이 나서지 않는 것도 주민들의 피해이다. 이런 유·무형의 피해를 감내하고 송전탑 건설을 수용하라는 것, 공익을 빙자한 폭력 아닌가?"

"한전, 송전탑 건설 이외의 어떤 대안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밀양 송전탑 반대와 공권력 투입에 항의 서울 대한문 앞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회씨와 부인
 밀양 송전탑 반대와 공권력 투입에 항의 서울 대한문 앞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회씨와 부인
ⓒ 안호덕

관련사진보기


- 대책위에서는 지중화나 우회 송전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전에서는 기술적으로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지중화나 우회 송전 이용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중화와 우회 송전은 우리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한전에서 내놓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전에서는 지중화 사업이 기술적으로 불가한 것이 아니라 비용과 공사 기간의 장기화 때문이라고 한다.

한전 측은 지중화하기 위해서는 2조7천 억이 들고 14년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5900억 정도면 가능하다는 것이 야당이나 대책위의 입장이다. 또 우회 송전 또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며 송전선로 고장시 대규모 정전이 예상된다는 것이 한전 측의 설명이지만 여유가 있는 기존 송전선을 이용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대책위에서는 지중화나 우회 송전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능성이 있느니만큼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전은 송전탑 건설 이외의 어떤 대안도 검토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지중화와 우회 송전이 불가능하다면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지, 바쁜 농사철에 공권력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 한전이나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한전은 지난 8년 동안 수차례 교섭과 대화를 했다고 하지만 성실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주민들과 인사하는 것조차 대화 실적으로 기록했고, 지중화 요구 검토 등 약속은 허다하게 뒤집었다. 한전 측은 밀양 주민들이 미래 전력대란의 주범처럼 취급해서 안 된다. 노인들이 서리 내리는 산에서 노숙을 하고 손자 같은 경찰들에게 끌려 내려오는 것,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한전은 지금이라고 공사의 강행보다 주민들과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굴착기를 막아서는 것, 보상금 몇 푼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력 대란을 야기하려는 음모도 물론 아니다. 노인들이 물리력으로 공사를 막는다고 한들 무슨 힘이 있겠는가? 한전과 보수 세력들은 외부 세력 개입을 운운하고 있지만 환경과 전력 수급 문제에 있어서 외부 세력이 어디 있는가? 국민들은 냉철하게 바라봐 줬으면 한다. 할머니들이 투쟁을 계속하고 공사가 강행되는 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우리 가족 역시 단식을 이어 나갈 생각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전력난 해소 명분으로 밀양 주민 희생 강요하는 것은 폭력

국민들은 여름 내내 전력대란의 공포 때문에 더위를 참아야 했다. 한전과 정부는 그 이유를 들어 국민들에게 절전을 강요했고 그때마다 전기 요금을 인상했다. 그러나 공급 사정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고 정부는 10월 또 한 차례 전기요금 개편안을 내어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원전 24기 중 10여기가 가동을 멈춘 지난 여름. 국민들은 찜통 더위를 부채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원전 하나가 더 지어진다고 전력난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원전 마피아들의 탐욕과 무능이다. 전기가 모자란다면서 대기업에 값싼 전기를 공급하고 절전보조금까지 지급하는 형태. 전기를 아껴 쓰라는 것인지, 더 많이 쓰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김정회씨의 호소를 들으면서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 원전 마피아의 최면에 걸려 외눈박이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대의. 그것을 위한 희생은 값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대의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대의를 위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 폭력과 다르지 않다. 전력대란을 해소를 위해 765kV 송전탑 건설과 밀양 주민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무지의 의한 폭력일 수 있다. 서울 시내가 시끄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김정회씨, 그가 하루 빨리 밀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태그:#밀양 송전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