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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청소기로 마른 고추를 상자에 담고 있는 아버지
 진공 청소기로 마른 고추를 상자에 담고 있는 아버지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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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고추를 상자에 담으려 진공청소기로 바람을 뺀다.
우체국 마감시간에 쫒기며 서둘러 담는다.
택배를 붙이고 나와 농촌슈퍼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갈라진 손끝마다 까만 때가 앉은 아버지 손을 잡고 막걸리를 딴다.
세상에서 제일 거룩한 손으로 따라 주시는 막걸리,
옥수수 튀밥에 주고받는 잔에 뚝뚝 떨어지는 연민을 마신다.

일을 줄여야 겠어요. 마누라가 '아이고 허리야'를 달고 다녀요.
이제 환갑 지냈는데 벌써 허리가 고추처럼 휘었어요.
아들 셋 하나도 출가시키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죠.
마누라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아야 겠어요.
아버지 눈가에 그렁그렁 이슬이 고인다.
내 두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맺힌다.
젊은 사제와 농부의 가슴으로 흐르는 강물

아버지와 포옹을 하고 트럭에 오른다.
어둑어둑 땅거미 지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린다.
아버지의 그렁그렁한 고백이 자꾸 떠오른다.
농사가 천직이라는 아버지의 눈물일까.
자꾸 자꾸 눈가로 손이 올라간다.
두 볼로 뜨거운 연민이 흘러내린다.
밥은 생명이고 하늘이듯,
가난한 농부가 하늘이라고

고생하는 아내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런 아내가 화장실에 쓰러져 신음한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센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어떤 위로도 드릴 수 없는 젊은 사제,
허리가 휘도록 일만했던 착한 어머니에게
하느님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응급실 밖으로 배웅 나온 아버지를 와락 끌어안는다.
흑흑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인다.
두 눈에 고인 눈물이 두 볼로 흘러내린다.
돌아선 사제의 발걸음마다 떨어지는 연민의 눈물,
하느님, 어머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농부이신 하느님,
선한 농부의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어주소서.


태그:#아버지, #사제, #어머니, #눈물,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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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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