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워낙 경제에 문외한이라 은행에도 잘 가지 않는다. 특히 금융과 관련된 용어들은 낯설고 어렵다. 처음에 '모기지론'이란 말이 나왔을 때 그것이 새로운 어떤 경제 '이론'을 말하는 줄로 알 만큼 무지했다. 헤지펀드며, 파생상품이며, 지불준비금, 환차익이며, 국채, 양도성예금증서 등 알 듯 모를 듯한 말들에 주눅이 들곤 하였다.

그러니 은행에 가고 싶겠는가. 내가 은행에 가는 일은 단순히 돈을 넣고, 돈을 찾고, 돈을 보내는 세 가지만을 위해서 간다. 도무지 금융과 관련된 시스템과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나의 무지를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 꺼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돈은 나와 무관하며, '금융은 남의 것'이라는 인식이 무관심과 무지로 이어졌던 것 같다.

이렇게 금융 메커니즘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늘 생각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경제 체제가 결코 온전한 것이 아니며 모종의 결함을 안고 있다는 것. 양극화와 환경파괴, 탐욕과 과소비, 시장 권력과 신자유주의적 경쟁 등은 바로 그 결함의 다른 한 측면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제가 반드시 존재하며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있었던 것 같다.

두 가지 놀라운 경제적 사실

빌 토튼의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 책표지.
 빌 토튼의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 책표지.
ⓒ 녹색평론사

관련사진보기

최근에 두 가지 경제적 사실을 알고는 그런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하나는 '기본소득'이다. 이는 영국의 경제학자 스키델스키 부자가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책에서 주장한 경제 정책이다. 국가가 그 구성원 전체에게 혹은 한 사회에서 공인받은 거주민에게, 그가 부자든 빈민이든 상관없이, 한 개인이 어떤 다른 소득원을 가졌는지와 무관하게 지불하는 소득을 말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별별 마피아 짓을 다 하는 국가만 경험한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이란 실현 불가능한 정책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국민 모두가 빈곤선 이상으로 생활할 수 있으며 노동 시간도, 노동 여건도 선택할 수 있어,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정책으로 보였다.

또 하나는 은행이란 존재의 미스터리다. 즉 은행은 무슨 돈을 가지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부해 주는 걸까. 주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은행에 예금한 돈으로 대부해 주겠지'였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으며, 은행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2006년에 일본으로 귀화한 미국 경제학자 빌 토튼의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녹색평론사)는 바로 이 두 번째 경제적 사실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도대체 '100% 돈'이라니! 그럼 '90% 돈', '80% 돈'도 있다는 말인가. 이 궁금증이 책을 펼치게 하였다.

현재 금융시스템의 심각한 결함, 신용창조와 은행 화폐 창출권

이 책의 논지는 단순하다. 현재의 경제는 잘못된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는 것. 그 잘못된 금융시스템이란 크게 두 가지다. 은행이 은행에 예치된 금액만큼만 대부해주는 게 아니라 예치된 금액(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현금)보다 수십 배가 되는 금액을 '신용창조'라는 이름으로 대부할 수 있는 것이 은행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는 것. 또 하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가 스스로 화폐를 만들지 않고 민간은행에 화폐의 창출을 맡겨놓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잘못된 금융시스템의 근원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17세기에 이르러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자금을 탕진하고 말았다. 그때 한 금융업자가 120만 파운드라는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조건은 연간 8% 이자와 대여된 120만 파운드까지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때 윌리엄 3세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지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금융업자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금을 조달했던 것이다. 이때 설립된 것이 잉글랜드은행이며, 잉글랜드은행은 발권은행으로서 중앙은행의 원형이 되었다. 이로써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금융시스템의 근간이 형성된 것이다.(책머리에 9쪽)

저자는 이렇게 잉글랜드은행이 한 일을 '사기적 비즈니스'라고 했다. 은행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취하여 축재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자금 조달을 왜 민간은행에 맡겨서 거액의 이자를 물어야 하고, 그 이자를 갚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써야 하는가를 저자는 묻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스스로 화폐를 만들어내면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되고, 국민의 세금을 아낄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가 말이다.

이 결함 있는 금융시스템은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도, 일본의 버블경제 발생과 그 붕괴도, 미국의 IT버블도 그리고 최근 리먼 사태로 인한 쇼크도 은행이 화폐 창출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며, 버블과 불황, 인플레와 디플레, 공적 채무와 지속 불가능한 성장 그리고 빈부격차의 확대, 나아가 전 세계의 경제를 파탄 나게 하는 투기 머니가 돌아다니는 것도 가장 큰 원인은 은행이 돈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은행이 돈을 장악하여 움직이는 '카지노 경제'

지금과 같이 은행이 돈을 장악하여 움직이는 경제를 저자는 '카지노 경제'라고 명명했다. 지난 2007년 통계로 저자는 1년간의 외국통화 거래액은 전세계 GDP 합계의 27배가 되고, 세계 전체 무역액의 86배나 된다는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환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세계무역에 필요한 금액은 외국환 거래 전체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9%는 어떠한가. 말 할 것도 없이, 엔을 달러로 교환하여 두었다가 달러 가치가 오르면 그것을 팔아서 엔으로 바꾸면 환차익을 얻는다. 99%가 그런 돈벌이를 위한 거래인 것이다. 이것을 '카지노화'라고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본문 33쪽)

이와 마찬가지로 주식 거래의 99%는 도박이라고 저자는 규정한다. 주식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이는 전체 주식 거래액의 1% 미만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99% 이상은 이미 발행된 주식을 투기가, 투자가가 주가 인상을 기대하며 매매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규 발행주와는 달리 이런 99%의 거래는 기업의 자금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오직 노름에서 이긴 사람은 벌고, 진 사람은 잃는 도박판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경제에 공헌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와 같이 일반 국민이라면 거의 알 수 없는 금융시스템과 돈의 메커니즘에 대해 상세하게, 다양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알려주고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들은 충격적이었다. 오죽 했으면 포드자동차 창업자인 헨리 포드도 은행 제도나 화폐 제도를 일반 국민이 알게 된다면 당장 내일 아침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겠는가.

'100% 돈'이 해결책이다

자, 이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00% 돈'에 대해 말해보자. 이 부분에서는 조금 수학적인 머리가 필요하다. 앞에서 나왔듯이 은행이 대출해주는 돈은 실제의 돈이 아니라,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만들어서 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은행에 100만 원을 예금하였다고 하자. 은행은 이 예금으로 대출하는데, 법정준비율이 10%라고 하면 10만 원을 남겨두고 나머지 90만 원을 대출할 수 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이다. 은행은 A에게 90만 원을 대출하고, A 계좌에 90만 원을 불입한다. 물론 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통장에 기입하는 것이다. 이 90만 원의 예금(대출이나 예금이나 통장에 돈이 찍히는 형태는 같으므로)에서 10%인 9만 원을 남겨두고 81만 원을 B에게 대출하고 계좌에 불입한다. 또 81만 원의 예금의 90%에 해당하는 72만 9천 원을 C에게 대출한다. 이렇게 되풀이하면 대략 1000만 원의 '통장 돈'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해진다.

은행은 100만 원의 현금에서 1000만 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신용창조 시스템인데 민간기업인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고, 이자를 붙여서 빌려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필요 이상으로 통화가 공급되어 경제는 활황을 띠고, 넘쳐나는 돈은 투기자금으로 유입되며, 버블로 돌입한다. 실체 경제와 금융 경제의 괴리는 이런 은행의 신용창조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그러면 이 현행 통화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 해결책의 하나로 '100% 돈'을 제안한다. 저자가 말하는 '100% 돈'은 쉽게 말해서 예금주가 은행에 예금한 돈과 은행이 예금주에게 내 줄 돈을 같게 하자는 아이디어다. 이럴 경우,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는 신용창조 기능은 중지되는 것이다. 그리 되면 은행의 기능은 금고로서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수표나 어음 등에 대한 고객의 자금결제를 중개하는 역할로 한정된다.

이렇게 되면 통화량의 증감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민간 상업은행의 몫이 아니게 되고, 인플레나 디플레, 불황을 방지하는 대책이 되며, 나아가 국가 채무 대부분을 소멸시킬 수 있다. 신규화폐는 중앙 정부의 화폐 관할 기관에서 만들어야 하고, 만들어진 화폐는 갚을 필요가 없는 국가 세입이 되어, 공공 목적을 위해서 정부가 사용하여 국내에 유통되도록 한다.

금융시스템 바로 잡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지금과 같은 금융기관을 '금융해적'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저자의 명쾌한 '금융 파헤치기'는 경제와 사회에 새로운 전망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모르면 이룰 수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일반 국민들을 속여 온 금융 시스템을 자세히 알아야 더 이상 속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좀 더 진지하게 돈, 화폐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돈이 만들어지는 방식, 사용되는 방식에 관여하고 선택할 권리를 행사해야 하며, 그렇게 해서 자주 일어나는 경제적 혼란으로부터 벗어나 안정된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한다. 경제 민주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금융시스템을 바로 잡아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정치에서는 200년에 걸쳐서 민주주의가 세계에 확산되었다. 그러나 화폐의 힘을 지배하고, 그것을 국민을 위해서 선용하는 능력은 크게 후퇴해왔다. 화폐와 금융의 작용을 경제의 공평성이나 정보 시대의 현실에 부합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마저 훼손시키는 결과가 되고 있다.(본문 106쪽)

덧붙이는 글 |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 빌 토튼/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 2013년 8월 30일, 1만 원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

빌 토튼 지음, 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2013)


태그:#100% 돈, #신용창조, #은행 화폐창출권, #카지노 경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