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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옥녀봉의 멋진 풍경, 왼쪽으로 철판장 암벽이 보인다.
 가운데 옥녀봉의 멋진 풍경, 왼쪽으로 철판장 암벽이 보인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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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곡의 명소 옥녀봉은 멀리서 보아도 우뚝하다. 아래위로 미끈하게 솟은 암벽 위로 나무들이 운치를 더했다. 선녀가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옥녀봉은 수려함에 있어서 무이산 최고로 알려져 있다. 웅장함에 있어서는 대왕봉이 최고고, 높이에 있어서는 상앙봉이 최고라고 한다. 그래선지 웅장한 대왕봉과 수려한 옥녀봉이 사랑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옥녀봉은 옆에 있는 경대(鏡臺)를 보면서 늘 얼굴과 옷매무새를 다졌다. 그래서 경대의 다른 이름이 장경대(粧鏡臺)가 되었다. 그녀는 곧 건너편에 있는 대왕봉의 웅장함에 반해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마주보고 있는 철판장(鐵板嶂)이 이들의 사랑을 시샘했다고 한다. 철판장은 현재도 길고 넓은 암벽으로 이들의 만남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자 옥녀봉은 할 수 없이 경대 앞에 비치는 대왕봉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래서 경대의 또 다른 이름이 면경대(面鏡臺)가 되었다.

옥녀봉
 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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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는 2곡에 있는 옥녀봉을 꽃 꽂은 여인으로 의인화했다. 더욱이 자신은 도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여인과 정을 통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는 흥겨운 마음으로 앞산에 들어 자연의 푸르름을 즐긴다. 여기서 양대몽(陽臺夢)은 전국시대 송옥(宋玉)이 지은 '고당부병서(高堂賦幷序)'에 나오는 말로, 무산지몽(巫山之夢)으로도 표현된다. 그것은 초나라 양왕의 선왕이 무산(巫山)의 남쪽 양대(陽臺)에 사는 여인과 하룻밤 운우지정을 나눴기 때문이다.  

이곡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옥녀봉아               二曲亭亭玉女峰    
꽃 꽂고 물가에 있는 건 누구 위한 단장인가?    揷花臨水爲誰容   
도인은 더 이상 양대를 꿈꾸지 않고                 道人不作陽臺夢    
흥에 겨워 앞산 드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興入前山翠幾重  

면경대 또는 장경대가 아닌 심경대이거늘...

경대(오른쪽)와 두무봉
 경대(오른쪽)와 두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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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에는 경대라는 붉은색 각자가 있다. 명나라 때 새겨진 것이지만 그 경대의 연원은 수당(脩唐)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경대를 불교의 선종(禪宗)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경대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지 몸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대는 심경대(心鏡臺)를 말하는 것이다. 도대체 마음을 어떻게 비춘단 말인가? 

이야기는 선종이 남종과 북종으로 나눠지는 5조 홍인(弘忍: 602-675)선사에서 시작된다. 홍인선사는 황매현 동산(東山)에 머물며 선종을 전파했다. 그때 가장 뛰어난 제자가 신수(神秀: 606-706)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신처럼 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뭇꾼에 불과하던 혜능(慧能: 638-713)이 《금강경》을 듣고 발심을 해서 홍인선사를 찾아가 중 되기를 청한다. 한두 마디의 선문답으로 혜능의 비범함을 알아본 스님은 그를 출가시켜 방앗간에서 일하도록 한다.

신수
 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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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8개월쯤 지났을 때 홍인선사는 법을 전하기 위해 모든 제자를 불러 놓고 마음을 표현하는 게송을 짓도록 한다. 그 중 신수가 먼저 성실한 게송으로 스승의 말씀에 화답한다. 그러나 이 게송에는 감동이 없다.

몸은 보리수요                         身是菩提樹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時時勤拂拭
티끌이 끼지 않도록 한다.          莫使有塵挨

이 게송을 들은 혜능은 한 차원 높은 게송으로 화답한다. 이곳에서 그는 언어유희를 하는 듯 하면서 마음의 본체를 이야기한다. 마음은 물건으로 비유할 수 없는 것일뿐더러, 털고 닦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은 닦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깨닫는 것이라는 선의 본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혜능은 돈오(頓悟)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능의 진신
 혜능의 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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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菩提本無樹

                          명경 또한 대가 아니라오.                   明鏡亦非臺
                          본래 물건이 아니거늘                        本來無一物
                          어떻게 티끌을 생각한단 말이오?         何處惹塵埃

이처럼 경대를 심경대로 보아야 하는 것은 이웃하고 있는 인석(印石)이라는 각자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울(鏡)이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도장(印)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대와 인석은 불교적인 사상에서 나온 글자이고 이름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대는 심경대로 이해하는 게 맞다.   

일곡 입구 수광석에 새겨진 구곡계 이야기

대왕봉
 대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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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과 경대를 지나면 왼쪽으로 대왕봉(大王峰)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왕봉은 일곡에서 가장 두드러진 암봉으로 뗏목에서는 절반정도만 보인다. 오히려 물 가까이 있는 것은 수광석(水光石)이다. 수광석에는 각자가 많아 이들 글자를 통해 무이구곡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 구곡계(九曲溪)와 일곡(一曲) 각자는 이곳부터 구곡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수신위본(修身爲本)은 유교적이고, 진환별계(塵寰別界)는 도교적이다.

몸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가정을 다스린 다음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유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진환은 티끌로 가득한 현세를 말하고, 진환별계는 그곳과 격리된 별 세계라는 뜻이니, 이곳이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라는 뜻이다. 그 외 명산대천(名山大川), 산수기관(山水奇觀) 같은 쉬운 한자도 보인다. 산천이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다.

수광석
 수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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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자의 시를 보면 만정봉(幔亭峰)이 나오는데 그 봉우리를 찾을 수 없다. 자료에 보면 무이산장 옆에 있다고 하는데 어느 봉우리를 말하는 걸까? 주자의 시에서 유추해보자. 내용으로 봐서는 수광석 뒤로 보이는 산인 것 같다.

일곡의 물가에서 낚싯배에 오르니           一曲溪邊上釣船  
만정봉 그림자 맑은 물에 잠겼구나.         幔亭峰影蘸晴川
무지개 다리 끊어진 후 소식이 없고         虹橋一斷無消息  
골짜기 바위마다 푸른 안개 자욱하네.      萬壑千巖鎖翠煙

석문을 지나 하유부두(下游码头)로

석문(石門)
 석문(石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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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광석을 지나면 배는 거리낌 없이 유유히 흘러간다. 그리고는 마지막 바위인 석문(石門)을 지나게 된다. 석문은 세 개의 바위가 계류를 막고 있으며, 그 너머로 지나온 경대, 옥녀봉, 철판장이 어슴프레하게 보인다. 이곳을 벗어나면 구곡계를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이다. 경사가 조금 심해지면서 물살이 조금씩 빨라지고 뗏목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평범한 시내로 바뀌면서 세속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보다 먼저 뗏목을 내린 사람들이다. 우리도 주파이 사공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뗏목을 내린다. 이곳이 바로 하유부두(下游码头)다. 성촌에 있는 부두가 배를 타는 상유부두라면, 이곳 무이궁에 있는 부두는 배를 내리는 곳이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도교 사원인 무이궁으로 간다. 가는 길에 무이산 박물관이 있고, 무이산 죽각예술관(竹刻藝術館)이 있다. 그리고 길을 따라서는 송나라 때의 거리를 재현한 송가(宋街)가 펼쳐져 있다.

무이산 박물관에 있는 무이산에 대한 기록들
 무이산 박물관에 있는 무이산에 대한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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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무이산 박물관에 들러 무이산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 이곳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무이산 지역의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석기와 청동기 등 고대 유물, 민월시대의 매장 유물도 있고, 한당시대의 문헌자료도 있다. 송나라 때 무이산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친 주자 관련 자료도 많다. 그리고 세계유산 무이산에 대한 소개도 있다. 무이산 죽각예술관에는 죽간으로부터 시작해 죽세공품,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길 반대편 쪽으로는 도교의 신 팽조(彭祖)를 모신 장원(莊園)도 보인다. 송대 거리를 지나며 우리는 구곡계 답사를 마무리한다.


태그:#제2곡, #옥녀봉과 경대, #제1곡, #대왕봉, #수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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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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