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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 회원들과 꽃등심 구어 건배를 한다. 우리는 하늘아래 하나다
▲ 우! 하! 하! 가톨릭농민회 회원들과 꽃등심 구어 건배를 한다. 우리는 하늘아래 하나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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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한가위 명절만 같아라. 흩어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나누는 행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세상살이 모두가 공평한 것은 아니다.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복지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고 고향을 갈 수 없는 실향민이 그렇다. 2교대로 일하는 노동자들,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주고 보살펴야 하는 축산 귀농자들 또한 외로운 명절이다.

진안에 귀농한 지 5년이다. 귀농 이후 명절을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가 없었다. 혼자 지내야 하는 명절이 많았던 것이다. 유기농 거름을 생산하기 위해 키우는 똥돼지와 닭들 때문이다.

한가위 연휴 전날, 눈길이 자꾸 진입로 쪽으로 향했다. 낮익은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공직에서 조기 정년 하신 형님이 쇠고기를 들고 오셨다. 축산물유통센터에 가서 방금 떠온 고기였다. 오실 줄 알고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보자기를 풀고 선물 포장을 뜯었다. 마블링이 꽃처럼 피어있는 꽃등심이다. 처음으로 받아본 꽃등심을 보자,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달빛을 보면 꽃봉오리가 툭툭 터지는 달맞이꽃. 내 입이 달맞이꽃처럼 말을 터뜨렸다. "혼자 먹으면 맛이 없는데, 누구를 초대할까?" 부귀공소 가톨릭 농민회 회원들이 떠올랐다.

"아버님 오늘 저녁에 무슨 일 있으세요. 꽃등심 선물이 왔는데, 저희 마을로 오시지요."
"형님, 명절 연휴 전날이라 안 바쁘시죠. 한가위 선물로 꽃등심이 들어왔는데 혼자 먹으면 맛이 없잖아요."
"신부님 정말 영리하시네요. 혼자 먹으면 맛 없는 것을 어떻게 아셨데요. 천재가 아니면 모르는디요."
"혼자 먹으면 맛 없다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은 몰라요."
"하-하-하"

서둘러 돼지와 닭 모이를 주었다. 고기 하나만 굽기가 미안했다. 낮에 따 놓은 빨간 고추와 풋고추를 썰고 솔과 묵은 김치를 숭숭 썰어 부침개를 준비했다. 야외 서치라이트도 설치하고 야외식탁에 식탁보도 깔았다. 객지에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고향집 부모님처럼 마음이 설렌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내 마음처럼 앞산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개인택시에서 내리는 회원들을 일일이 포옹해 주었다.

형님이 들고 온 한가위 명절 선물 꽃등심
▲ 꽃등심 형님이 들고 온 한가위 명절 선물 꽃등심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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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프라이팬에 꽃등심을 굽는다. 핏기가 도는 등심을 잘라 접시에 올렸다. 정읍에서 공수한 동동주 잔을 부딪치며 묵은 김치에 싸먹는 쇠고기 맛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우리는 하늘아래 하나다."
"우! 하! 하!"

건배사를 외치며 마시는 막걸리 맛을 누가 알 수 있으랴.

"누가 한 달에 한 번 꽃등심을 선물했으면 좋겠어요. 아니 삼겹살이라도 좋아요. 그래야 한 달에 한 번 행복한 파티를 하죠."
"돌아가면서 소고기 사들고 모이면 8개월에 한 번씩 돌아가네요."
"우리 아우가 소도 키우겄다. 부위별로 썰어서 오면 되죠."
"앞다리 뒷다리 살점을 썰어내고 아까징끼(머큐룸) 발라주면 되잖아요."
"우리 소들은 주인을 닮아서 착해요. 앞다리고 갈비살이고 달라는대로 대주고 있을거여요."
"하-하-하- 오늘 대박은 착한 소네요."
"우-하-하"

우리는 하늘아래 하나다.


태그:#파티, #한가위, #꽃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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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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