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동성애자들은 30년 일찍 죽는다."

동성애자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 맞은편에서 동성애 반대 집회를 하는 참가자 중 어느 노인 한 분이 당당하게 한 발언이라고 한다. 이같은 엉뚱한 오해는 가끔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의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불쌍하다' 혹은 '살아가기 힘들겠다'와 같은 편견 일색이다.

청소년기 이후 김조광수 감독의 삶은 이러한 이성애자들의 편견과 싸워나가는 동시에 동성애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었다.

지난 16일, 카이스트 대학원 인권센터와 대전충남인권연대가 공동주최하는 제2회 시민과 함께하는 카이스트 인권학교의 두 번째 강사로 참가한 김조광수 감독(동성애자 인권연대 '친구사이' 대표)이 70명이 넘는 수강생들 앞에 섰다. 강의는 열흘 전 그가 올린 국내 최초동성 공개 결혼에 대한 축하 박수로 시작되었다. 이날 그는 동성애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강의 내내 수강생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동성애자들은 30년 일찍 죽는다"?

김조광수 <동성애자 인권연대 친구사이 대표>
▲ 시민과 함께하는 카이스트인권학교에서 강의중인 김조광수 김조광수 <동성애자 인권연대 친구사이 대표>
ⓒ 대전충남인권연대

관련사진보기

김조광수 감독이 초등학교 때, 이웃집에는 명문대에 다니고 있었던 형제가 자취를 하며 살고 있었다. 이 형제는 얼굴도 잘생겨서 이웃 아주머니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고 김조 감독을 비롯한 동네 아이들에게 저렴하게 과외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형제가 야반도주를 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그 이웃의 두 남자는 형제가 아니고 '호모' 커플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김조 감독이 최초로 동성애자를 가까이서 접한 사건이 되었다. 동네 어른들의 수군거리는 대화를 들은 초등학생 김조광수는 어머니와 선생님에게 연이어 똑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호모가 뭐예요?"

어머니와 선생님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일치했는데, 깜짝 놀라며 그건 '병'이라고 대답했다. 병도 그냥 병이 아니라 더럽고 남에게 옮을 수도 있는 병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그 형제가 사실은 동성애자임이 밝혀지고 난 후 동네 어른들의 180도 달라진 싸늘한 반응, 호모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어른들의 두렵기까지 한 대답은 오랫동안 동성애자 김조광수 감독을 지배한 어두운 기억이었다. 이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확인한 이후에도 자신과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스웨덴처럼 될 수 없는 걸까"

김조광수 감독이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차린 계기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학교의 한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때도 2차 성징이 빠른 아이들은 이미 <플레이보이>, <허슬러>와 같은 외국 성인잡지를 구해 와서 돌려 보았다고 한다. 이때 김조광수 감독은 여성들의 나체에는 심드렁했지만 남성들의 벗은 몸에는 호기심이 생기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자기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동성애가 '병'이라는 식의 그릇되고 부정적인 정보와 그에 따른 자기혐오 때문에 15살부터 19살까지의 청소년기를 자학하면서 고통으로 점철된 시절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김조광수 감독의 방황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80년대 초에 대학을 입학한 그 역시 이른바 운동권 선배의 영향과 광주학살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학생운동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호모'라는 자신의 개인 문제에만 빠져서 부조리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살아왔다는 자각을 한 김조광수 감독은 이후 1993년까지 10여 년 동안 학생운동을 하면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과 한총련(한국대학생총연합) 시기를 거쳤다.

이 시기, 김조 감독은 학생운동에 전념하면서 동성애자로서의 성적인 욕망을 숨기거나 억제하며 살면서도, 전 세계 혁명사 어디를 공부해 봐도 동성애자는 혁명세력의 적밖에 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에 좌절했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만난 게이 선배에게서 동성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스웨덴으로 갈 거란 계획을 듣고, 그 선배에 대한 불만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왜 한국에서는 동성애가 인정되지 않는 걸까? 동성애자들이 노력한다면 한국도 언젠가는 스웨덴처럼 되지 않을까?"

이후 김조광수 감독은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을 향해 동성애자인 자신을 인정해 달라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노력은 주변 지인들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는 이른바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강연에서 자신의 삶은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커밍아웃이 자신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커밍아웃 이후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상에 대해서도 보다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이는 14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동성 간 결혼이 한국에서도 안 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동성 공개 결혼식, 커다란 진보"

시민과 함께하는 카이스트 인권학교 수강생들
 시민과 함께하는 카이스트 인권학교 수강생들
ⓒ 대전충남인권연대

관련사진보기


김조광수 감독은 자신의 동성애 인권 활동을 둘러싸고 이성애자와 일부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불편한 시선도 있음을 인정했다. 이를테면 "왜 너는 게이로서 잠자코 있거나 괴로운 존재로 수동적으로 있지 않고 왜 행복한 게이, 싸우는 게이로서 사람들에게 비쳐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세간의 인식에 대해 그는 노예제, 흑인 인권, 여성 인권 등 싸우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서 정당한 권리를 쟁취한 역사가 있었냐고 반문했다. 자신의 결혼식 역시 비록 세상의 다수가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커다란 진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의 결혼식 이후 이에 대해서 고민하고 뒤따르는 동성애자들이 많아지고 동성애 인권 상황도 보다 발전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앞으로도 영화 제작과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국내 동성애자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연 말미에 김조 감독은 다음과 같이 동성애자인권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촉구했다.

"당신들의 주변에 수는 적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성적 소수자들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겁니다."

대전충남인권연대와 카이스트대학원 인권센터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공동 개최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카이스트 인권학교'는 24일(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카이스트 내 창의학습관(E11) 1층 터만홀에서 열린다. 오는 24일(화요일)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원장의 '노동과 인권', 30일(월)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의 '팔꿈치 사회를 넘어 좋은 삶을 위한 대안으로', 10월 7일(월)에는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2013년, 대한민국의 인권' 강연이 이어진다. 카이스트 학생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 누구나 참여가능하며 수강료는 무료다.

덧붙이는 글 | 참가문의 : 대전충남인권연대 전화 042-345-1210, 홈페이지 www.dchr.or.kr 세 번 이상의 강의를 들은 참가자에게는 인권 관련 도서를 한 권씩 증정한다.



태그:#시민과 함께하는 카이스트 인권학교, #대전충남인권연대, #성소수자인권, #김조광수
댓글7

대전충남인권연대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기본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1948.12.10)의 정신에 따라 대전충남지역의 인권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권상담과 교육,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 피해자 구제활동 등을 펼치는 인권운동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