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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면에 제19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설치되는 모습.
 2012년 5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면에 제19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설치되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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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추석은 먹을 게 많아 좋다. 그 중 최고는 송편이다. 이번 추석에는 멥쌀가루 사다 아이들과 함께 참깨, 땅콩, 흑설탕 듬뿍 넣고 꿀 송편을 빚어 먹으리라 벼르고 있다. 참기름 발라 윤기 자르르한 송편을 한입 베어 물면 툭 터져 나오는 꿀, 상상만 해도 침이 고인다.

사실 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던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추석연휴에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다. 추석 당일에 출근해 일한 적도 있고, 연휴 중 딱 하루만 쉬는 탓에 시댁이 있는 전주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남편과 아이들만 보내고 혼자 지내기도 했다. 일정이 급박하지 않아 이삼일 동안 쉬던 때도 머릿속엔 일 생각이 가득해 차라리 출근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 싶기도 했다. 추석이 늘 국회 정기회 기간 중에 있기 때문이다.

추석, 올해는 편히 쉴 수 있을까?

국회법상 정기회는 매년 9월 1일에 열리며(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열린다) 회기는 100일 이내다.(회기란 국회가 열리는 기간을 말한다.) 물론 정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시회도 있다. 임시회는 보통 짝수 달(2, 4, 6월)에 열리는데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4분의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아무 때나 열 수 있다. 임시회의 회기는 30일 이내로 규정되어 있지만, 30일이 지나면 곧장 또 소집할 수 있으니 이론상으로는 일년 365일 내내 개회중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9월에 시작하는 정기회에 대한 긴장감이 가장 높다. 이때 다루는 안건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확정하며, 예산 부수 법률안을 비롯해 각종 제·개정 법률안을 처리한다. 한 번 본회의가 열리면 수십 개에서 많으면 백여 개가 넘는 법안이 한 번에 처리되는 것이 이 시기다.

게다가 대망의 국정감사가 있다. 국정감사를 흔히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한다. 꽃이라니... 단언컨대, 보좌진들이 붙인 별칭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또는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의 실력을 국정감사 기간에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관전의 묘미가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국정감사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는 무대이자 정책 대결의 장이다. 보좌관 입장에서 국정감사는 악마와의 동거이자 악몽이며, 최악의 스트레스 기간이다. 국정감사만 끝나면 커피, 카페인 함유량이 높은 음료, 초콜릿, 컵라면을 먹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국정감사는 늘 10월에 실시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법에 명시된 기간과 상관없이 꿋꿋하게 독자적 일정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서 국정감사는 정기회 이전, 즉 9월 1일 전에 실시하라고 시기를 명시하고 있다. 정기회 때에는 예산 심의, 법안 심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2012년에 개정했다.

그럼 그 이전 법에서는 10월에 하라고 되어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전 법에는 9월 10일부터 20일간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안 지켜졌고, 법을 개정한 지금도 안 지켜지고 있다.

법에 기간을 명시했을 때에는 그에 합당한 사유가 있을 텐데, 이에 개의치 않고 '여야 간 합의'에 의해 의사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한다. 우습지만 국회에서는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존재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모른 척 한다.

지금 국회 상태는 이른바 '파행'이다. 지난 9월 2일 정기회는 개회하였으나 '(국회의원)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 후 교섭단체 간 의사일정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국정원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야당은 천막 당사를 설치하는 등 '장외투쟁'을 불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회의가 열리지 않는 시기에 보좌관들은 뭘 할까? 더 바쁘다고 하면 믿으실까 모르겠다. 의사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시험 기간을 모른 채 시험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불안한 마음으로 내일 열릴 지, 다음 주에 열릴 지 모를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니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분석하고, 질의 주제를 검토하면서 국정감사, 예결산, 법안 심의를 준비하는 이 기간이 한가할 리가 없다.

어디서 '국회가 파행이니 세비를 삭감하거나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인격이 덜 성숙한 나는 "와서 일해 보고 말 하라고!"를 속으로 소리친다.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오른쪽)과 박선민 보좌관.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오른쪽)과 박선민 보좌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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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는 국회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 중 하나다. 국회의원 대부분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열심히 일한다. 관점과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 자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유권자를 위한 정책을 마음껏 펼치고 싶어한다. 정치에서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통용되지 않는다.

명절이면 의원실에 선물이 넘친다고?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선출된 정치인은 정해진 임기동안 지지자들에게 대리인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즉,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치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했다 한들 정작 유권자가 모르면 소용없다.

그러니 언론을 통한 '공중전'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언론에 많이 나와야 '일을 열심히 하는 의원'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이 튼튼하다면 각 지역 정당 조직을 통해 의정활동이 전파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으니, 환경을 탓하기보다 모든 환경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언론은 정치인과 유권자를 이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다.

추석 연휴 밤늦은 시간에 혹 여의도를 지나거든 국회의원회관을 한 번 쳐다봐 주시라. 의원실 몇 곳은 반드시 불이 켜져 있다. 국회의원회관 전체가 소등되는 날은 거의 없다.

아, '오해'와 관련하여 한마디 더 해야겠다. 이맘때면 꼭 선물이 쌓여있는 자극적인 사진과 함께 국회에 선물이 차고 넘친다는 언론보도가 나온다. 이런 주제는 이제 그만 보도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선물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우리 의원실에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추석에도 빈손이었는데 올해도 그렇겠다는 의원실 동료의 푸념이 있을 정도다.

국회 안에는 300명(현재 298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한 의원실에 보좌진 9명이 일하니 국회의원 포함 약 3000명이 한 건물 안에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회관 안에는 우체국, 농협, 매점이 있고, 식당도 3개나 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맘때 우편물과 택배 등이 많은 건 당연하다.

명절이면 국회의원 모두가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는 것처럼 호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인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이 시간까지 의사일정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마음은 불안해도 어쨌거나 이번 추석은 쉴 수 있겠다. 시댁도 가고, 아흔을 훌쩍 넘기신 할아버지도 찾아뵙고, 수년 만에 친정 아버지 산소에도 가봐야겠다. 토란국도 끓이고, 잡채도 만들고, 수정과도 담가 먹을 테다.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고 소원도 빌어 보련다. 정치인이 사랑받고, 정치가 신뢰받는 사회가 되길. 진보정당이 제 역할을 다하고, 좋은 정치를 통해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길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선민씨는 정의당 박원석 국회의원 보좌진입니다.



태그:#국회,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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