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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 : ① 통치 계급 또는 기성세력의 입장에서 보아 사상, 태도 등에 맞서고 대립하는 기질이 있음 ② 통치 계급이나 기성세력의 입장에서 보아 온당하지 않음

'불온'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통치 계급과 기성세력의 입장을 강조해 놓았다. 그러므로 '불온하다' 할 때의 '불온'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누가 불온하다고 하는가. 통치 계급과 기성세력이 그렇지 않은 계급과 세력의 사상과 태도를 향해 불온하다고 하는 것이다. 다분히 억압기제와 함께 작동하는 정치적, 심리적 장치이며, 순종적이지 않은 태도를 비판하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사의 일종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한다.
▲ 홍세화 외 8명이 공저한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한다.
ⓒ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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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불온한 사람들이 쓴 불온한 책이 있다. 그것도 끊임없이 통치계급, 기성세력의 입장과 만나야 하는 교사들에게 불온을 가르치는 책이다. 누구보다도 기성세력의 입장을 잘 수용하고 잘 전달해야 할 법한 교사에게 불온을 가르치다니! 교사에게 스며든 불온성이 '순진한' 학생들에게 퍼져나갈까봐 노심초사하는 세력들에게는 큰 일 날 일이 아닌가.

게다가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이라는 제목을 보라. 이석기의 불온성이 내란음모죄로 폭풍 확대 되는 것을 보면, 이 책의 불온성도 걱정스럽기만 한데, 책 속에는 편집부의 말처럼 '불의한 시대, 잘못된 질서에 맞서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이 책은 우리 시대 대표적 진보 논객인 홍세화로부터 불온의 시동이 걸린 뒤에 진웅용, 조영선, 정용주, 이상대, 안정선 등 5명의 현직 교원과 이형빈 한국교육네트워크 상임연구원,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박복선 성미산학교 교장 등 총 9명의 교육운동가가 집필에 참여하였고, 3개월간에 걸쳐 강의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주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교육

홍세화는 교육이 노예를 양산한다고 포문을 연다. 학교는 주체를 형성하는 교육보다, 지배체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시민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체제에 맞서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적대시하는 데 일조한다면서, 학교가 '위대한 보통 사람'이 아닌 '위험한 보통 사람'을 낳고 있다고 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은 철학의 고전적 명제이다. 변산공동체의 윤구병 선생도 일찍이 '몸 가는데 마음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몸이라는 존재에 마음이라는 의식이 따라서 규정된다는 것. 유물론적인 명제이긴 하지만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속성인 것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학생이라는 존재는 학생 의식을 가지고, 교사라는 존재는 교사 의식을 가지며, 교장이라는 존재는 교장 의식을 가진다. 유추하면, 노동자라는 존재는 노동자의 의식을 가지고, 자본가라는 존재는 자본가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은 종종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형성하게 한다. 게다가 지금은 소유가 존재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래서 홍세화는 불온성의 핵심을 소유와의 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인간을 끊임없이 소유물로 비교하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나라는 존재는 소유물로 비교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어떤 자존감이 불온성을 끝까지 유지해주게 해 주는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유가 존재를 규정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지배 이념, 가치관에 맞서 얼마만큼 소박한 생존 조건, 몸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가가 나의 불온성을 보장해줄 것입니다.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위해 몸의 불편함, 몸의 어려움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본문 34쪽)

가장 먼저 성찰해야 할 것은 능력주의다

능력주의에 대한 반기를 불온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형빈은 우리 학교가 인간적인 공간이 되려면 가장 먼저 성찰해야 할 것은 '능력'이라는 개념이라고 했다. 그리고 학벌주의와 결합된 능력 이데올로기에 가장 강력하게 젖어서 실현하는 집단은 교사라는 것이다. 교사는 주로 공부 잘하는 '범생이'로 성장하였으므로.

문제는 교사가 스스로 내면화한 능력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노력하면 필요한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신화는 사실이 아니며, 더 중요한 것은 능력이나 학력이 없는 사람도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토지에도 '토지공개념'이 있듯이, 능력에도 '능력공개념'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가진 능력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가진 능력이 공적으로 얻어진 것이므로, 자신의 능력을 사유화하여 더 많은 인정과 보상을 받으려는 능력주의를 과감히 거부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자는 것이다.

'능력공개념'에 따라 내 능력을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사용하면서,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자기 자신을 착취할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자그마한 것이라도 동료들과 나누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무능한 교사가 된다는 것은 체제가 요구하는 것을 '유능하게' 처리하는 기능인 같은 삶을 거부하는 교사를 말한다.

이를 위해 '체제 속의 이방인'이나 '자발적 낙오자'가 되라고 한다. 이는 조영선이 교사 '20년 차가 되어도 상황마다 쩔쩔매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 말이나, 이상대가 '교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능숙해지고 능란해지는 것'이라고 한 말과 정용주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을 가진 유능한 주체보다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유능함을 가진 무능한 주체'가 되자는 매우 역설적인 표현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들이 하는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능해도 괜찮아."

학생들의 문제를 사회적 상처로 인식하는 시선이 있어야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중요한 불온의 요소가 된다. 결국 교사의 시선은 학생들에게 머물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냈느냐, 얼마나 유능하게 일처리를 하였는가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떤 고통 속에 있는가, 어떤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책임감 있게 응답할 줄 알아야 하며, 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주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들은 때로 교사들을 매우 힘들게 하거나 좌절하게 하는데, 그 모습이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서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다. 잘 사는 지역의 학생이냐, 못 사는 지역의 학생이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이 다르게 형성되어 있음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감정코칭과 같이 자기 솔루션으로서는 해결될 수 없는 사회적 상처로 인식할 때 아이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선 속에서라야,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에서 더 나아가 학생을 존중하는 교사가 되자고 권하며, 인권감수성을 키워 사회적 약자인 학생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하며, 아이들을 만나는 건 언제든 처음 만나듯 긴장하고 헤아리고 돌아봐야 하는 거라며, 글쓰기로 아이들과 연대하라는 주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모여서 공부하자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교사의 불온성이 학교와 아이들을 지켜내고, 아이들이 주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책 속에서 많은 집필자들이 제시하고 안내하는 방안은 '공부하는 것'이다. 교사는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며, 좋은 교사는 100을 연구하여 40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서 공부하는 건 위험하다고, '여럿이, 함께, 모여서' 공부하자고 한다. 말하자면 동료성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교사 셋이면 학교가 바뀐다는 신념으로, 배려와 존중의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자는 것, 소공동체를 많이 만들어 동료들이 공감하고 격려하며 협업을 해나가는 풍토를 조성하자는 제안은 모두 자기 인식을 바꾸는 공부를 하자는 데 있다. 공부하면 길이 열린다는 믿음을 이 책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부박한 시대에 불온성은 위험한 것이나, 이러한 시대에 또 어찌 불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리치의 말처럼, 남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나로부터 나와서, 내가 뭔가를 하겠다는 게 희망이라는데, 여전히 학교는 불온한 교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희망을 찾아가는 길은 멀기만 해 보인다. 그래서 좌절하고 파편화되어 스스로를 소외하며 없는 듯이 살아가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홍세화가 껴안고 사는 다음 말이 큰 울림이 되어 다가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한다."(본문 38쪽)

덧붙이는 글 |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홍세화 외 공저, 교육공동체 벗, 2013년 6월 10일, 1만 4천 원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홍세화.이상대.이계삼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2012)


태그:#불온, #능력공개념, #주체형성, #자발적 낙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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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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