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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책 표지.
 <대관령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책 표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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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대관령옛길은 물론이고, 대관령 인근에 터를 닦고 살았던 대관령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한 책으로는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이 책에 대관령을 중심으로 한, 한 마을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을 만든 주체가 이 마을 주민들이라는 것도 화제다. 산골마을에서 직접 그 마을의 역사를 담은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허술한 것도 아니다. 책은 비교적 내실 있게 만들어졌다. 책을 집필하는 데는 외부의 도움을 받았다. 책은 비록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돼서 만들었지만,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에게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 대관령을 수없이 넘나들면서, 그동안 그곳에 깃든 역사를 살펴볼 방법이 없었다. 그곳에 살던 주민들의 삶은 더 더욱 알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책이 그런 점들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게 됐다.

대관령처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고갯길도 드물다. 과거 오솔길에 불과했던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 길은 제 할 일을 다 마친 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그 역할을 국도와 4차선 고속도로가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관령옛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옛길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도보상과 우마차가 지나다니는 대신, 등산화를 신은 도보여행객들이 한가롭게 걸어 다니는 길이 됐다. 그 길만큼이나 대관령의 역사도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마을도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다. 대관령을 중심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국가 정책이 바뀌면서 대관령마을에 살던 사람들도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화전정리법이 발효되면서, 대관령 평탄지대에 화전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이 일시에 마을을 떠나야 했던 사건도 있었다. 화전은 다시 숲이 되고, 일부는 배추 등속을 재배하는 고랭지 채소밭으로 남았다.

이 책에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자세히 담겨 있다. 그 외에도 이 책은 대관령에서 그 옛날 휴게소 역할을 했던 '마방' 이야기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춘궁기를 벗어나기 위해 먹었던 것들(감히 음식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한밤중 고갯길을 걷다 호랑이와 마주쳤던 일들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관령마을 사람들이 아니고, 누가 또 이런 책을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대관령에 관한 한, 이 책처럼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책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책은 오로지 대관령마을에 사는 마을 주민들에게만 배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인쇄 부수는 겨우 60여 부. 세대 당 1부씩 돌아갈 수 있는 양만 찍어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은 애초 홍보나 판매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평소 대관령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은 <대관령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 대관령 마을의 삶과 역사>이다.

마을을 뿌리를 알기 위해 만든 책, 마을 주민 모두 흔쾌히 동의

<대관령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책 내용 중. '마을을 만든 사람들' 옛 사진.
 <대관령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책 내용 중. '마을을 만든 사람들' 옛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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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관령마을의 횡계3리 주민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 역시 이 마을 이장이다. 마을 자체적으로 그 마을의 역사가 담긴 책을 제작하겠다고 맘먹는 일이 쉽지 않다. 홍보나 판매를 하려는 목적도 아니고, 마을 주민들은 왜 그 큰돈을 들여가며 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거기에는 대관령마을에 사는 주민이라면 평소 대관령이 간직한 역사 정도는 알고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 마을 이장인 김봉래씨가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김 이장은 평소 마을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유는 이장이 되고 나서 이런 저런 마을 일을 보는데 자신이 마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마을의 역사를 물을 때처럼 난처할 때도 없었다. 그래서 늘 어떻게 하면 마을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을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주변 어르신들을 통해서 궁금증을 해소했다. 하지만 마을의 뿌리 깊은 역사를 아는 데는 부족했다. 그런 가운데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 분들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나마 마을의 역사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도 모두 사라질 판이었다. 그때 김 이장은 그분들이 살아 있을 때 그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마을의 역사를 꼼꼼히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을 만들게 된 동기는 거기에서 시작됐다.

책은 만드는 일은 지난해 10월에 본격화됐다. 그때부터 이 책의 기획과 집필에 나선 사람들이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일일이 인터뷰를 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그 일도 그렇게 쉽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마을의 오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 분들이 살아 있었다면 더 자세한 역사를 기억해낼 수 있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쨌든 역사를 기록하는 데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필요했다.

책을 제작하는 데는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김 이장 말에 따르면, 이 책을 만드는 데는 최소 2천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그 비용을 다 댈 수 없었다. 집필자 등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은 결국 마을회관에서 먹고 자는 일을 감수해야만 했다. 나중에 책 인쇄 부수를 60여 부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런 문제도 있다. 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해서 책 제작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대부분 마을 기금으로 충당했다. 이 기금은 주민들의 동의 없이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주민들은 김봉래 이장이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을 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흔쾌히 동의했다. 그때 주민들은 "마을 기금을 그런 데 써야지 어디야 쓰냐"고 말했다. 이 책은 지난 11일, 마을 주민들에게 배포됐다. 김봉래 이장은 책을 배포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대관령 높은 고갯길 위에 새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대관령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책 내용 중. 마을 주민들이 일제강점기 때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증언 일부.
 <대관령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책 내용 중. 마을 주민들이 일제강점기 때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증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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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의 역사라는 게, 그 내용이 얼마나 풍부할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은 마을의 역사치고는 꽤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 한 산골마을의 역사치고는 그 역사가 갖고 있는 무게가 상당히 무겁다. 그 이유는 대관령의 역사가, 강원도의 역사를 축약해 놓은 것 같은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대관령은 오래 전부터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 요충지였다. 대관령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사람들은 그러면서 대관령에 또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대관령마을 사람들과 호랑이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 중에 하나다. 이 책에는 마을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나거나, 호랑이에게 물려간 이야기가 흔하게 등장한다. 그 이야기들 중에 "(정씨 집안의) 노처녀가 저녁밥을 지으려고 집 뒤 언덕너머 샘터에 물을 길러 갔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중략)...처녀를 물어 등에 업고 갔다"는 것도 있다. 대관령마을 사람들이 아니라면,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대관령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이 들어선 곳도 이곳이다. 마을 사람들이 한겨울에 '설피'를 신고 다니거나, 우리나라 전통 스키인 '설매'를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아이들이 그 설매를 타고 학교를 다닌 이야기며, 눈이 많이 내릴 때는 하천과 도로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이야기 역시 대관령마을에서나 들을 수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는 또 대관령마을 사람들만 알고 지내는 숨은 이야기도 들어 있다. 대관령휴게소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대관령휴게소는 1975년에 2차선 영동고속도로가 개통이 되면서 함께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2001년 4차선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에 폐쇄됐다. 그 후 2008년에 들어, 휴게소 뒤쪽 산비탈에 자리를 잡은 양떼 목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다시 문을 열었다. 휴게소 이름은 그때 '대관령마을휴게소'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휴게소에 남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대관령마을휴게소, 양떼목장 들어가는 길 입구(2012년 11월)
 대관령마을휴게소, 양떼목장 들어가는 길 입구(2012년 11월)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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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정권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과거 대관령휴게소 안에 박정희 전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비공개 특실이 있었다. 그 특실은 평창경찰서장이 직접 열쇠를 보관하며, 특별 관리를 했다. 특실의 유리는 모두 방탄유리로 제작됐다. 밖에서는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이 특실은 전두환 정권 때까지 사용되다가 휴게소가 문을 닫으면서 함께 폐쇄됐다. 이곳에 대통령 특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다.

2011년 대관령마을휴게소에 불이 났다. 그때 주민들이 특실의 문을 여는 데 엄청 애를 먹었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데, 그 유리창을 함마 같은 걸로 30여 번을 두들기고 나서야 겨우 구멍을 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대관령마을 주민들 누구도 그곳이 대통령 특실이고 그 유리가 방탄유리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얘기다. 현재 이 특실의 일부는 관리소장실로 사용되고, 일부는 담배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대통령 특실이 담배 창고로 사용되기까지 무려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책은 두리환경연구소가 짓고, 횡계3리 마을자치위원회가 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책 내용에는 대관령마을의 환경, 역사, 삶터, 생활, 민속 등이 들어 있다. 김봉래 이장은 발간사에 "이 일(책 제작)을 하면서 마을을 위한 몇 가지 그림이 그려졌다. (마을의) 사라진 옛 흔적을 되살려놓으면 많은 이야기 거리가 되살아날 것이고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도 늘 것이다. 언젠가 이런 마을의 꿈이 이루어질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는 말을 적어 남겼다.


태그:#대관령, #횡계3리, #김봉래, #대관령휴게소, #대관령마을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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