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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스쳐 지나갑니다. 스산하게 내립니다. 여름의 끝자락을 밀쳐내고 가을을 불러들이나 봅니다. 올여름은 긴 장마와 찌는 듯 무더위가 유난을 떨었기에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반갑습니다.

이번 비는 며칠 가뭄 끝이라 단비입니다. 우리 채소밭에도 생기가 돕니다. 물기 먹은 땅에 김장거리 배추며 무가 싱싱해졌습니다. 쪽파도 삐죽삐죽 움이 오르고, 갓의 새싹도 파릇파릇해졌습니다.

별 모양의 부추꽃

아낌없이 주는 부추꽃이 피었습니다.
▲ 부추꽃 아낌없이 주는 부추꽃이 피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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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가장자리 부추밭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부추밭에는 흰 꽃이 가득입니다. 서늘한 가을바람 불면 부추꽃이 피지요. 8월에 피기 시작한 부추꽃이 요즘도 한창입니다. 한동안은 부추꽃을 계속 볼 것 같습니다. 꽃을 피워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이치가 참 신비스럽습니다.

별 모양의 부추꽃은 하늘에서 별이 내려온 것처럼 텃밭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녹색의 밭에 흰 꽃이 잘 어울려 보기에 좋습니다.

며칠 전, 집에 다니러 온 아내 친구가 아내랑 수다를 떨더군요.

하얀 부추꽃이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또 다른 기쁨을 안겨줍니다.
▲ 부추꽃 하얀 부추꽃이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또 다른 기쁨을 안겨줍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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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게 무슨 꽃이야? 부추도 꽃이 피니?"
"넌 여태 부추꽃도 처음 보니?"
"야, 난 도회지에서만 살았잖아."
"하기야, 부추꽃 모르는 사람이 너 뿐이겠나 싶다. 어때 참 예쁘지?"
"어쩜 하얀 꽃이 이렇게 무더기로 피어 사람 마음을 빼앗니?"
"넌, 아직 뺏길 마음이라도 있나보네."
"그럼. 가을은 누구나 그렇지 않니!"


부추꽃으로 가을을 느낀다는 소리에 문득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러고 보니 하늘이 한결 높고 깨끗해진 것 같습니다.

아내 친구는 부추꽃을 처음 본 모양입니다. 어릴 적부터 서울에서 나서 자라 부추꽃을 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추꽃은 대롱 같이 길게 올라 온 꽃대자루가 우산살을 펼쳐 보입니다. 꽃대 끝에 핀 여러 꽃송이들이 보기 좋습니다. 눈처럼 작은 하얀 꽃이 다발을 엮어 피어나서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가느다란 긴 허리가 바람에 꺾일 것 같아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꽃대가 올라온 부추꽃이 산들바람에 춤을 춥니다.
▲ 부추꽃 꽃대가 올라온 부추꽃이 산들바람에 춤을 춥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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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 부추꽃을 찾아 친구하고 놉니다.
▲ 부추꽃 꿀벌이 부추꽃을 찾아 친구하고 놉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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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부추꽃 향기에 끌린 꿀벌들이 모여듭니다. 녀석들은 겨울식량 준비에 바쁜 것 같습니다. 꽃향기는 어떨까 코끝을 갖다 대봅니다. 옅은 꽃향이 꿀벌이 친구하고 놀만합니다.

꽃자루로 우산살 펼치고
긴 목 꽃대  끝에는
송이송이 별꽃이 반짝반짝


낮에는 별꽃 자리에
꿀벌들을 유혹하여 친구하고,


밤에는 하늘 빛나는
총총별을 불러들여 친구하네.


건들건들 가을바람 스쳐 지나가도
가는 허리 꺾이지 않고,
초롱초롱 하얀 미소를 머금네.


- 자작시 <부추꽃>

슬픔을 이겨내는 부추꽃

가을에 핀 부추꽃의 아름다운 자태
▲ 부추꽃 가을에 핀 부추꽃의 아름다운 자태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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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는 꽃대가 올라오면 쇄서 먹기가 곤란합니다. 꽃이 피면 뻣뻣하고 억세져 맛이 떨어집니다. 꽃 핀 부추는 밑동을 낫으로 벱니다. 그러면 며칠 지나 금세 부드러운 새움의 부추가 올라옵니다. 가을에도 부추는 몇 번은 잘라먹을 수 있지요.

우리 부추밭에도 먼저 벤 것, 나중 벤 것들이 형님 동생하고 자랍니다. 자른 지 한 달 가까이 된 것은 어느새 자라 또 꽃이 피고, 보름 전에 자른 것은 먹기 좋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잘라낸 것은 벌써 새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추는 사람의 무지막지한 낫질에도 아린 슬픔을 죄다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며칠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향해 쫑긋 고개를 다시 내밀겠습니까? 생장점을 난도질당해도 때 되면 꽃을 피우는 기특함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부추 벤 자리는 두엄을 뿌려주고, 물을 자주 주면 잘 자랍니다. 예전 우리 부모님께서는 부추밭에 아궁이 속의 재를 긁어다 뿌리고, 묵은 오줌을 끼얹었지요. 거름기 먹은 부추는 새 힘을 받아서 잘 자랐습니다.

부추의 생명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엄동설한 겨울에도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서 새봄이면 어김없이 살아있습니다. 한번 심어놓기만 하면 큰 돌봄 없이 여러 해 잘만 자랍니다. 그래 부추는 게으른 사람도 키울 수 있다하여 게으름뱅이풀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부추

부추를 베어내면 어느새 자라 풍성한 먹을거리를 안겨줍니다.
▲ 부추밭 부추를 베어내면 어느새 자라 풍성한 먹을거리를 안겨줍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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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올라온 첫물 부추를 최고로 칩니다. 하지만 꽃 핀 부추를 베어내고 자란 가을부추도 좋습니다.

서너 평 되는 우리 부추밭은 동네 부추밭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은 옆집 아주머니께서 소쿠리를 옆에 끼고 오셨습니다.

"우리 집 양반 겉절이 좀 해주려는데, 부추 벨 게 있나?"
"많아요, 얼마든지 자르세요."


아주머니 입가에 웃음이 배어납니다. 부추를 베는 아주머니 손놀림이 잽쌉니다. 한 움큼씩 베어 탈탈 털며 추립니다. 부추 다듬는 데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한 소쿠리를 가득 베고 나서 허리를 펴시며 아주머니가 말을 하십니다.

"막걸리 생각은 안 나시나?"
"왜요? 막걸리 파티하게요?"
"내 금방 부침개를 할 테니 막걸리 한 잔씩 하자구!"


아주머니는 막걸리 좋아하는 나를 생각해 부침개를 부칠 모양이십니다. 부추부침개에 막걸리는 궁합이 딱 맞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부추. 가을에는 하얀 꽃을 피워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오늘따라 부추부침개 안주삼아 이웃들과 함께 먹는 막걸리 한 잔이 기가 막히게 넘어갑니다.


태그:#부추, #부추꽃, #부추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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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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