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정원발 이석기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로 온나라가 시끄러워진 지 2주 만에 전교조와 전공노가 등장했다.

12일 일부 언론들은 국정원 관계자 전언을 인용해 "5월 12일 열린 RO모임에 참석한 130여 명 가운데 채증사진 등을 통하여 80여명의 신원을 파악했으며 이 가운데 교사와 공무원 30~40명이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은 경기도 지자체 공무원들이며 일부는 전공노 소속 공무원으로, 경기지역 전교조 교사도 RO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이 모임에 10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국정원의 수사 확대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 보도는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식으로 보인다. 진보당은 물론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수원지검 역시 부인하고 있다. 수원지검 담당 검사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언론에 보도된 이들 외에 공직자가 포함돼 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 전교조 등 특정 단체가 회합에 참여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전했다.

그러나 연합뉴스에 이어 조선TV 등 보수언론들은 여전히 익명의 공안 당국자를 인용하며 마치 전교조 교사와 공무원들이 RO 회원으로 이 모임에 참석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또다시 등장한 '빨대'... 계속되는 인격살인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8월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에서 국정원 직원들과 통합진보당 지도부간의 대치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8월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에서 국정원 직원들과 통합진보당 지도부간의 대치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이석기 사건을 통해 국민들은 여전한 '빨대'의 존재와 받아쓰기 언론의 현주소를 보고 있다. 법조계에 널리 쓰이는 '빨대'는 언론에 수사 기밀을 흘리는 내부취재원을 뜻하는 은어다. 이  말이 세간에 널리 회자된 것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검찰이 수사하던 당시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회갑 선물로 억대 명품 시계를 받았는데, 부인인 권양숙씨가 이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나온 적 있다. 문재인 의원은 당시 변호사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한 '나쁜 검찰'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형편 없는 빨대'를 찾아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피의사실유포로 처벌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소리 없는 인격살해자로 불리는 피의사실유포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어느 빨대도, 받아쓰기 언론도, 그 누구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비슷한 사례는 이후에도 계속 반복됐다.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된 수사에서도 검찰은 수사 중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마구 언론에 흘렸고, 언론은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열심히 받아 썼다. 연일 쏟아지는 보도에 국민 대부분은 총리가 저럴 수가 있느냐며 혀를 찼지만 결국 한명숙 총리는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더 가까운 예로는 곽노현 서울교육감 사건이 있다. 서울교육감 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후보를 2억을 주고 매수하였다는 보도부터 시작해 하루가 멀다하고 미확인 피의사실이 유포되었다. 재판 전에 이미 광장에서 여론재판을 통해 곽 교육감은 파렴치한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법원은 곽 교육감이 사전에 후보를 매수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2억을 준 것 역시 사전 후보 매수의 대가로 보지도 않았다. 다만, 사전 약속의 이행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퇴한 후보에게 돈을 준 것 자체가 사후매수라는, 유례 없는 조항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피의사실유포에 의한 여론재판, 광장재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잔재다. 피의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면, 더 나아가 조작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번 이석기 사건에서도 언론들이 국정원발 소설 같은 보도를 얼마나 많이 쏟아냈는가? 첫날 변장도주라는 허위보도로 시작해, 30만 원 정도의 루블화를 러시아를 통해 받은 북한공작금인 것처럼 보도하고, 합법적인 금강산 방북을 마치 북의 공작원 접선을 위한 밀입북처럼 보도했다.

국회의원 당선 축하 편지를 조직원들이 두목에게 보내는 충성편지로 묘사했고, 공중전화를 통한 해외공작원 접선 의혹이라는 첩보영화의 한 장면도 등장했다. 병 치료를 위해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약품 관련 파일을 사제폭탄 제조매뉴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이런 코미디 같은 피의사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이나 정의당 같은 야당까지 이번 이석기 사건에 있어서는 피의사실유포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녹취록을 비롯하여 국정원발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야당의 모습을 보면 이들이 노 대통령의 죽음과 한명숙 사건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언론재판 일삼는 국정원... 재판 유무죄는 중요치 않다?

천주교 신자와 사제, 수녀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를 열어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 천주교 신자와 사제, 수녀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를 열어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석기 의원에서 내란음모 사건은  하루가 멀다하고 그 대상을 늘려가고 있다. 이 사건은 블랙홀이 되어 정치권의 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으며, 모든 세력들을 종북의 테두리에 가두고 있다.

이석기 의원에서 시작하여 김재연, 김미희 의원으로 확대되면서 진보당 해산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진보당에서 시작하여 민주당을 종북의 숙주라는 입에 담기 힘든 폭언으로 비난하고 있으며, 문재인 의원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 이석기에서 성남, 수원 등 지방자치단체의 공직자들과 시민단체로 확대되고, 민주노총과 범민련 등 시민사회단체에 마수를 뻗더니 급기야 전교조와 공무원으로 촉수를 뻗어가고 있다. 다음은 타깃은 어디가 될까?

한국사회 진보, 민주, 통일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어떤 세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누리당이나 보수언론, 보수단체들이 보기에 진보당 이석기와 민주당의 임수경은 전혀 다르지 않고, 진보당 이정희 만큼이나 민주당 문재인도 싫은 존재다.

대표적 보수논객인 변희재가 '광의의 종북'이나 '협의의 종북'이니 하는 말을 왜 꺼내들었을까. 60년을 한 쪽 눈으로 살아온 세력들 눈으로 보면 이정희, 문재인, 노회찬, 심상정이 모두 종북세력일뿐이다.

나치 히틀러와 맞서 싸웠던 마틴 니묄러 신부가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라는 시를 통해 말하던 바로 그 상황이다. 공산주의자, 사민주의자, 노동조합, 유태인, 그리고 가톨릭으로 이어지는 그 숙청의 도미노를 느끼지 못했던 니묄러 신부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 시의 부제가 "다음은 당신이다"로 붙여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국정원과 공안세력들은 수사와 기소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이를 통한 여론재판이 목적이므로 결코 재판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가 기억하는 2008년 전교조 서울통일교사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전교조 교사가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수업을 하고, 전교조가 중학생을 의식화하기 위한 지침서를 만들었다고 국정원발로 대서특필한 사건은 전교조 통일위원장이었던 두명의 교사를 구속하고 수십명을 수사하면서 보수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2011년 대법원에서 두 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모든 혐의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들 교사들과 전교조에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 내용을 보도한 보수언론들은 무죄 판결을 제대로 보도도 하지 않았다. 물론 사과나 정정기사도 없었다. 이런 못된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간첩을 통하여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팔아먹은 것처럼 몰아갔던 소위 '탈북자 남매 간첩 사건'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오빠를 간첩으로 거짓 밀고하게 만든 패륜을 저지른 국정원은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항소했다.

12일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고문과 조작에 의하여 조작된 재일교포간첩단 사건 당사자에게 국가가 12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국가보안법 상의 국가변란 선전선동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던 해방연대 관계자들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역시 국정원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

33년 만에 부활한 내란음모 사건 역시 유죄를 쉽게 자신하기 힘들다. 그러나 국민들이 유무죄를 따지는 순간 국정원은 웃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목표는 법정에서의 유무죄가 아니라 여론재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지겨운 국정원의 못된 관행은 끝내야 한다.


태그:#국정원, #이석기, #내란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