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불편은 좌파나 우파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당은 어떤 정치력, 지배력 또는 경제력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운영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을 표명한 것...(중략) 어떤 세력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는다는 조선일보의 뚜렷한 좌표로 발전됐습니다."

<조선일보>가 '불편부당'을 사시(社是)로 내건 이유는 분명하다. 1920년 창간 이후 긴 세월 동안 어떤 정파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 신문시장에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앞세워 주류언론을 참칭하며 여론형성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조선일보>의 보도행태에선 '불편부당'이란 사시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한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는 외면한 <조선일보>가 이 사건과 관련 전직 국정원장과 서울경찰청장의 기소를 이끈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설을 연일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언론의 본령은 고사하고 사시를 준수할 의지가 과연 있기나 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의 '가차저널리즘 보도'

<조선일보>는 6일자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한 여성과 10여 년간 혼외관계를 유지하며 아들까지 낳았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6일자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한 여성과 10여 년간 혼외관계를 유지하며 아들까지 낳았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PDF

관련사진보기


<조선일보>는 지난 6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단독으로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아들을 숨겼다', '혼외아들 학교 기록에 아버지 채동욱'이라고 대서특필 한 데 이어 후속기사와 사설을 연일 내보내고 있지만 지면 어디에서도 객관적인 근거와 취재원(소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전후맥락을 보면 '흠집내기' 또는 "꼬투리잡기'식 보도형태를 말하는 '가차저널리즘'(Gotcha Journalism: '너 딱 걸렸어'의 준말로, 언론사가 의도하는 쪽으로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 교묘히 편집하거나 공인의 말실수나 해프닝을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행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1960년대 미국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던 '가차저널리즘'은 '먹레이킹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취재원의 인격은 상관하지 않고 쓰레기 더미를 갈퀴로 파헤치듯 보도하는 형태)과 함께 미국 언론들의 과도한 속보경쟁이 낳은 병폐 중 하나다. 그 병폐가 되살아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활개를 치는 형국이다.    

<조선일보>의 '검찰 때리기' 또는 '검찰총장 흠집내기' 보도는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분노가 고조되고 검찰수사가 무르익으면서 이미 시작됐다. 지난 6월 '국정원 정치개입 특별수사팀의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지난해 대선에서 정치 개입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작성한 댓글은 모두 1760개이며 이 중 선거개입에 관여한 글이 60여개에 불과하고 글의 내용도 대북문제에 집중돼 있다"고 보도하고, "국정원 수사를 맡았던 주임 검사가 운동권 출신"이라는 해묵은 색깔론에 군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어 8월 19일에는 검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수사결과 발표문을 문제 삼아 꼬투리를 잡기도 했다. 기사를 통해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문에 나오는 세부 문구의 의도적 생략과 삽입을 주장하며 검찰이 경찰 분석관들의 동영상 내용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오죽했으면 '언론보도 진상'이란 자료를 통해 보도내용을 반박하며 정정보도를 요구했을 정도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일부 내용에 대해 정정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국정원발 뉴스 충실히 보도한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검찰 때리기' 또는 '검찰총장 흠집내기'는 '국정원 편들기'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간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거센 목소리와 각계 각층의 시국선언을 외면하다시피 하면서도 툭하면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폄훼한 보도행태에서 잘 읽힌다. 게다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당직자 등 10명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는 것을 계기로 <조선일보>는 국정원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기에 바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를 두고 '국정원 입만 좇는 <조중동>', '따옴표 저널리즘의 극치'라며 보수신문들의 국정원발 여론호도 경쟁을 호되게 비판했다. 이 가운데 <조선>은 '국정원 관계자'를 앞세워 "내란음모 혐의 등을 입증할 5건의 녹취록이 확보됐다"며 큼지막하게 지면을 할애하는 등 이 내용을 신속하고 비중있게 다뤘다.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을 다룰 때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급기야 '검찰총장의 혼외아들'설을 들고 나섰지만, 보도를 둘러싸고 의혹의 눈길을 거두기 힘들다.
      
<조선일보> 11일자 사설
 <조선일보> 11일자 사설
ⓒ 조선PDF

관련사진보기


<조선일보>의 기사를 들여다보면 '아니면 말고'식 또는 '시선을 흩트리기 위한 연막용' 성격이 강하다. 왜 확인되지 않은 불분명한 의제를 왜 급히 서둘러 보도했을까?  개인의 인격이나 명예에 치명적일 수 있는 내용임에도 신뢰할 만한 취재원이 제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혼외아들이라는 객관적인 증거 제시도 못한 채 11일자 신문에 낸 장문의 사설 '검찰총장의 처신과 판단'에서는 이미 검찰총장은 정상적이거나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묘사했다. 불과 5개월 전에 열렸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 다른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암묵적 요청이 강하게 묻어나 있다.

1960년대 미국의 황색언론을 겨냥한 '가차저널리즘'과 '먹레이킹저널리즘'의 국내판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를 두고 단순히 기자들의 취재력만으로 가능하겠느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소스가 국가정보원이 아니겠느냐'는 의심이 제기된 것은 일련의 보도행태에서 잘 묻어난다.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국일 등 출국기록이라든가 가족관계등록부 학교기록, 거주지, 입주자 카드 등 아파트 부동산 기록, 유학준비 서류 등 기사에 등장한 여러 건의 서류는 본인이 아니면 뗄 수 없다"며 "이를 할 수 있는 기관은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아니면 접근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언론인 출신인 신경민 민주당 의원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쪽에서는 취재를 열심히 한 것이라고 항변하겠으나 취재를 통해 얻기엔 그 한계와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며 "학교교육자료, 법무부(출입국기록)자료, 아파트관련 자료, 이 세 가지에 접근할 수 있는 곳은 국정원 같은 엄청난 힘을 가진 국가정보기관 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터무니없는 <조선일보> 주장의 배후로 국정원이 지목되는 이유는 검찰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전 국정원장을 기소한 데 이어 현 국정원장까지 정상회담 대화록 무단공개 건으로 고소고발 당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점 등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정국을 뒤흔드는 사건의 핵심에 개혁의 대상인 국정원이 늘 놓여 있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다. 게다가 <조선일보>까지 가세해 국정원을 싸고 도는 보도행태는 '유신시절 회귀' 그 이상의 섬뜩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때 그때 다른 공직자 혼외자 보도

2009년 11월 19일자 <조선일보> 칼럼
 2009년 11월 19일자 <조선일보> 칼럼
ⓒ <조선일보> PDF

관련사진보기


9월 13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란에 실린 박정훈 칼럼 '채동욱 총장과 이만의 장관의 차이'
 9월 13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란에 실린 박정훈 칼럼 '채동욱 총장과 이만의 장관의 차이'
ⓒ 조선일보PDF

관련사진보기


여기서 분명히 되짚어 볼 대목이 있다. 과연 <조선일보>는 공인이나 정치인들의 '혼외 관계(아들)'에 대해 일관된 논조를 보여 왔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4년 전인 2009년 11월 19일. 당시 박정훈 <조선일보> 사회정책부장은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란 제목의 칼럼에서 지금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펼쳤다.

칼럼은 "1994년 프랑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혼외 딸이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며 당시 현직 장관(당시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혼외자 문제가 법정 공방을 빚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친자가 맞는지 아닌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며 점잖게 나무랐다. 특히 다른 언론보도에 <르피가로>를 인용해 우회적으로 "하수구 저널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칼럼은 "공직자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다"며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는 <르몽드>의 반문은 생각할수록 절묘하다"며 끝을 맺고 있다. 이 칼럼이 공격받자 4년전 칼럼의 당사자인 박정훈 디지털담당 부국장은 9월 13일자 <조선일보>를 통해 "채동욱 총장 문제는 사적 영역을 벗어난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이만의 장관의 경우 처럼 당사자가 직접 문제제기를 해서 사안이 공론화 된 것이 아니고, 오직 <조선일보>가 확인도 되지 않은 내용을 보도해 놓고, 공적 이슈라고 우기고 있다는 점이다.

의혹을 사실처럼 보도하고, 이를 부인하는 당사자에게 "억울하면 의혹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입증해보라"는 <조선일보>의 일련의 보도행태를 보면서 언론의 '공익성', '불편부당성', '균형성', '진실성', '객관성'이 왜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 준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12일 '혼외 아들'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고, 소송과 별도로 진실 규명을 위한 유전자 검사도 조속히 실시할 방침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국정원 개혁' 물타기에 불과한 이번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시시비비가 분명히 가려지는 일이다.  대충 타협하고 넘어갈 경우,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암담한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태그:#조선일보, #혼외아들, #검찰총장, #국정원, #가차저널리즘
댓글2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