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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예비군훈련장까지 찾아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 예비군의 시선 동원예비군훈련장까지 찾아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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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오전 7시까지 집결장소 집합'

병력동원훈련 소집통지서엔 궁서체로 '늦을 시 모든 책임은 훈련 참가자 본인에게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때문일까? 이른 새벽부터 말 그대로 군복을 몸에 걸친 2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다. 다들 부리나케 서두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막상 오전 7시가 됐는데도 버스는 움직일 기미조차 없었다.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대기 중인 버스에 앉아 한 시간을 기다렸다. 중간중간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몇몇이 담배를 태웠을 뿐, 모두 예외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 장면 2

같은 날 정오 무렵, 경기도 용인의 산 속 깊은 예비군 훈련장. 무료한 오전 일과가 끝나자(훈련장 9시 도착 후, 숙소 배정 외 일과 없음) 생활관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마치 동네 찜질방 수면실을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쥐죽은 듯 조용했다. 방에는 분명 열댓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깨어있는 예비군은 하나도 없었다.

# 장면 3

1일차 오후, 안보 특강 시간. 다시 한 번 '밖'에선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강의 시작 전부터 예비군들은 픽픽 쓰러졌다. 현역 간부들과 조교들이 분주히 다니며 일으켜 세워도 소용없었다. 다들 폭풍취침 중이었다. 강의를 진행한 현역 대령 역시 "일어나라"는 말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PPT 속 북한 대남 도발 과정만 '혼자' 열심히 읽어내려 갔다. 예비군들의 눈꺼풀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밖에선 안 그런 사람들이..."

예비군은 잠들었고, 교관은 무의미한 설명만 한다.
▲ 1일차 안보 특강 예비군은 잠들었고, 교관은 무의미한 설명만 한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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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대한민국 안방극장을 뒤흔들고 있는 MBC 예능 <진짜 사나이> 속 '진짜 사나이' 같은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다만 프로그램의 긍정적 여파가 어느 정도 미치지 않을까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괜한 생각이었다. 대한민국 군대의 동원예비군 훈련은 역시 '예비군'스러웠다.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에서 진행된 2박 3일간의 동원훈련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대한민국 예비군에게 '진짜사나이' 속 군인은 TV 예능에나 존재했다. 현장에서 훈련을 받은 250여명의 예비군은 예외 없이 체감했다.
  
그렇다고 2박 3일 동안 잠만 잔 건 아니었다. '거친' 훈련도 있었다. 문제는 야외훈련인 각개전투, 화생방 심지어 총소리가 울리는 사격장에서도 훈련병들 중 몇 명은 눈을 감았다. 장소와 시간 불문하고 다들 고개를 꺾었다. 물론 교관은 그때마다 어르고 달래며 말을 이었다.

"그만 좀 자요. 앞에 서서 강의하는 사람도 생각해줘야죠. 밖에서는 안 그러는 사람들이…. 왜 예비군 훈련만 오면 자는 겁니까?"

교관의 성토는 정확히 1분간만 통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몇몇 예비군들이 잠시 자세를 고쳐 앉았을 뿐, 이내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숙였다.

"자고 싶어 자는 게 아니에요"

야외훈련도 예외일 수 없다. 푹 잔다.
▲ 사격 훈련 중에도 야외훈련도 예외일 수 없다. 푹 잔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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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의 훈련 동안,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 바로 '군대리아(군대 햄버거 식단)'가 저녁으로 나온 밤이었다. 치킨 패티 한 장과 빵 두 쪽, 딸기잼, 스프를 앞에 놓고 다들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예비군 김영섭(29)씨가 말을 보탰다.

"솔직히 '군대리아'만 기대했겠어요? 훈련이 훈련다워야 열심히 하죠. 도대체 30년 전 아버지들 훈련이랑 똑같은데 누가 관심을 갖겠어요. 아까 군장 보셨죠? 6·25때 썼던 군장 주면서 어쩌라는 건지. 그러니 '군대리아'만 기다릴 수밖에 없죠."

또 다른 예비군 임호(30·가명)씨도 덧붙여 말했다.

"솔직히 교관 앞에서 자는 거 미안한 일이죠. 다들 군 생활 오래 하신 분들인데. 그래도 아닌 건 아니죠. 도대체 국방 예산을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어요. 총 한 번 쏘고 밥 먹고 자는 거 말고는 하는 게 없잖아요. 자고 싶어서 자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할 게 없어서 자는 겁니다."

"국방부, 동원예비군 훈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참여했다면"

국방부가 밝힌 2013년 국방 예산은 34조 4970억 원(추경포함)이다. 당장 내년부터 향후 5년 동안 매년 7% 이상 증가한다. 하지만 예산 증가와는 별개로 예비군 훈련, 특히 동원훈련에 대한 실질적인 변화는 전혀 계획된 게 없다.

매년 국방부가 "북한의 특수전부대와 시가지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군을 특급 저격수로 양성하겠다"고 강조하지만, 과연 한 번이라도 '제대로' 관심갖고 하는 말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여주기식 훈련 관행 역시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훈련 중에 위에서 검열 나왔다는 소식에만 바짝 긴장했을 뿐. 훈련 물자와 준비 부족으로 대부분의 교육이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았다.

국방부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은, 예비군 한 명 한 명이 2박 3일이라는 어려운 시간을  내서 동원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훈련에 참여해 군복만 입혀 놓는다고 대한민국 예비군이 '진짜 사나이'가 되는 건 아니다. 전국에서 매년 14만 명의 동원 예비군이 훈련받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개선과 변화가 당장 요구된다. 내년 훈련도 지켜보겠다.


태그:#동원훈련, #예비군,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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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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