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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연극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간암 말기인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온다. 명문대 졸업에 대기업 사원인 큰아들은 외국에 있고, 작은아들도 서울 살림 포기하고 시골집에 내려와 병수발 들기는 무리. 결국 옆에 남은 건 칠십 넘은 아내와 식구처럼 드나드는 옆집 정씨 뿐이다.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아버지의 병이 깊어지면서 '간성혼수'(간의 병이 심해져 기능이 상실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상)에 빠진 아버지와 곁을 지키는 어머니, 가끔 들를 수밖에 없는 작은아들 이야기다. '홍매'는 어머니의 이름. 어머니는 이름 부르는 것을 질색하지만 아버지는 쉬지 않고 '홍매'를 불러댄다.

극의 중반부터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터져나오는 흐느낌을 멈추지 못한다. 세상 떠난 아버지 생각이 났을까, 아니면 오랜 병수발에 시들어가면서도 손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를 떠올렸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저런 오해 속에 영영 풀지못하고 만 부모 자식 사이의 어떤 맺힘에 가슴이 아팠을까.

포스터
▲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포스터
ⓒ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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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른다더니...

똑똑하고 잘난 큰아들이 아닌 착하고 순한 작은아들이 그저 만만했다고, 그래서 곁에 두고 싶었다고, 고향 농업고등학교에 보낸 것도 그 때문이라고. 이제 와서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지만 부모님은 사실 "큰아들, 큰아들" 하며 살았다. 늘 그걸 듣고 보며 자란 작은아들 마음은 어땠을까.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잘난 아들은 외국에서 업무가 바빠 아버지가 위독해도 쉽게 오지 못한다. 사는 게 시원찮아 어머니한테서도 그저 타박 받는 게 일이지만 집에 드나들며 부모님을 들여다보는 것은 작은아들이다. 마지막을 지키는 것도 역시 작은아들이다.

물론 작은아들 본인은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 밥 떠먹여 드리고,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 대소변 수발하고,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 업어드리라고 기회를 주신 거라고 하지만.

#2. 요양병원은 부모를 버리는 곳?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우리 안에는 부모님을 노인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은 불효라는 생각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버린다'거나 '버림받았다'는 표현 또한 곧잘 한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상황과 여건이 안 돼서 그럴 수도 있고 당사자와 가족 모두 최선의 선택으로 여겨 기꺼이 옮기는 경우도 많다고, 오히려 전문적인 도움과 돌봄을 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고, 노인과 가족 모두 만족하는 일이 많다고 강조해도 도통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화장실 출입을 하다 본인은 물론 간병하는 어머니까지 넘어지고, 간성혼수에 빠져 헛소리를 하고 자리에 누운 채 기저귀를 사용해야 하는 아버지를 보다 못해 아들은 요양병원에 모시자고 하지만 어머니는 '버리자는 말이냐'며 단호하게 반대한다. 완강한 어머니를 보며 아들은 답한다. "버리지 않을게" 그 때 다시 어머니가 말한다.

"아니, 버릴 땐 버려야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연극 속 어머니와 아들의 입으로 '버린다'는 표현을 들으니 가슴이 쓰렸다. 혹시라도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신 자녀가 객석에 앉아있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마음이 쓰였다. 아, 노인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나만 해도 가까운 분들이 그곳에 계시는데 이런 아픈 표현은 과연 언제쯤 달라질까. 과연 달라지는 때가 오긴 올까.

#3. 노부부의 사별

이미 딴 세상으로 갈라섰지만 마주 서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노부부. 91세, 86세 친정부모님 두 분의 사별도 저리 애달프겠구나, 가슴이 싸해진다. 자신이 이미 70대에 접어든 어머니 역의 배우 '손숙'씨 대사가 어찌나 실감나는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새겨질 듯 파고든다.

"지겹고 지겹고…. 그런데 막상 간다고 하니 불쌍하고, 내가 아프다. 가슴이 허전하고 기운이 없다."   

부부는 그런 걸까. 평생 지지고 볶으며 지겨워하지만 막상 떠날 때는 애가 타고 가슴이 아픈. "당신에게 할 말이 많은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늙고 병든 남편. 뒤에 남은 머리 하얀 아내는 그 말을 이미 다 알아 들었는지도 모른다.

심심찮게 웃음이 터지지만 그래도 눈물이 많은 연극. 누구는 세상 떠난 부모님 생각이 날 것이고, 또 누구는 살아 계시지만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부모님 생각을 할 것이고, 부모님과 남달리 각별하게 지내는 또 다른 누구는 영원히 곁에 계셔주지 않으실 부모님 생각에 문득 가슴이 아파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김광탁 극본, 김철리 연출 / 신 구, 손 숙, 이호성, 정승길, 서은경) ~ 10월 6일까지,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



태그:#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아버지, #노인, #죽음,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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