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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을 지키며 카메라가 무서워 고개도 들지 못하는 할머니들
 농성장을 지키며 카메라가 무서워 고개도 들지 못하는 할머니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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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9일부터 285일째 유독성 산업폐기물매립장 사업 철회를 주장하며 릴레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대양1리를 찾았다.

9일 찾은 사업 예정지에는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와 생존권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인근 27개 마을이 돌아가며 농성을 하는데, 이날은 경둔리(일명 두턱골)에 사는 고령의 노인 10여명이 모여 '결사반대'가 적힌 붉은 머리띠와 가슴띠를 두른 채 릴레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었다.

문제의 매립장은 한맥테코산업(주)이 충남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 산2-1번지 일대에 설치하려는 것으로, 81만1840㎡(24만5581평) 전체 토지에 사업면적 46만8958㎡(14만1859평), 조성 면적 28만7342㎡(8만6920평)에 에어돔(Air Dome) 형태로 들어설 계획이다. 매립기간은 30년으로 총 매립가능용량은 789만5250톤이다.

매립폐기물은 폐주물사, 폐내화물, 분진, 도자기유약바른 편윰, 열경화성수지 등 인체에 해로운 성분인 납, 구리, 비소, 수은, 카드륨 등으로 확인됐다. 매립장 인허가 부서는 금강유역환경청이고 최종 승인은 부여군에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 "태어나 처음 겪는 일... 전쟁보다 무섭고 두렵다"

충남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 사업 예정지 입구 농성장
 충남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 사업 예정지 입구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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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에서 만난 조원행(87) 할머니는 "옆 동네에서 가마 타고 시집을 와서 5대째 살아왔다. TV에서 데모를 한다고 봤는데 (집회) 이런 일은 구경도 못해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띠를 둘러봤다"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서 도와준 덕분에 오늘 3번째로 참석하고 있지만, 전쟁터도 이런 전쟁터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옆자리에 있던 이아무개(77) 할머니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자리를 지키러 오늘 6번째 나왔는데 저녁에 끝나고 들어가면 아무것도 못 하고 밥한 술 뜨면 끝이다, 고추도 따야 하고, 김장 배추 풀도 매야 한다.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언제 다할지 걱정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작년 겨울, 그 추운 날 군청에서 집회를 할 때 아들 같은 사람들이 머리를 깎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울고 추위에 떨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며 "감기가 걸려서 한동안 병원에 다니고 누워 있느라 산송장이 되었던 생각만 하면 두렵다"고 회고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낼 모레면 추석이라 자식이고 손자가 오는데 밤이라도 주워서 먹어야 하는데 이러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다"라며 "여기 나오는 날은 이런저런 걱정 하느라 밤잠을 설치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뛰쳐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는지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대책위 "고소·고발 당하면서 지속하는 싸움... 스트레스 말로 다 못해"

추석을 앞두고 포도 수확에 바쁜 대책위 서창원 총무
 추석을 앞두고 포도 수확에 바쁜 대책위 서창원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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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어울려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대책위 서창원 총무를 만났다. 서 총무는 "농업은 시기에 맞춰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1명이 할 일을 2~3명이 해야하니, 시간 빼앗기고 경제적인 부분까지 어려움이 많다"며 "하루라도 빨리 해결이 나야지 내년까지 이런 식으로 간다면 파산지경이 올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작년에는 정신적인 고통이 말도 못했다. 대기업에 전량 납품을 하고 있는데, 납품업체 쪽에서 '폐기물장이 들어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해 정신이 아찔했다"며 "농사짓는 사람 입장에서는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판매처가 없으면 다 허사인데, 이 때문에 스트레스로 겪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올해는 그런대로 넘어가고 있지만 폐기물장이 들어오면 지금처럼 갈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우려했다. 

모처럼 웃어 본다는 대책위 김기일 사무국장
 모처럼 웃어 본다는 대책위 김기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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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 김기일 사무국장은 "폐기물장 업체 측에서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등 지역에 살면서 가족처럼 지내며 살아오던 사람들이 찬성 측에 기울어서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다"며 "유치하려는 사람들이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폐기물 매립장은 반드시 들어온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지금 1명이 업무방해에 대해서만 재판이 진행 중이고 나머지 35명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및 집회방해 폭력에 관해 부여경찰서에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를 했다. 또 16명에게 1억3500만 원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우리 측 변호사는 '정당한 행위를 한 것으로 죄가 아니다'고 하지만은 당사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예정지 일부가 '금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로 제20조 및 시행령 제19조에 의거 폐기물매립시설 설치 제한 지역으로 포함되어 저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환경부 장관을 상대로 공식질의를 했는데 '진입로도 사업예정지로 보아야 한다'는 답변을 받아냈다"고 공문을 내보였다.

백제의 고도에 폐기물매립장 설치는 농업기반 흔들어 놓을 것

지난해 12월 5일 부여군청에서 농성을 하면서 삭박을 하는 장면
 지난해 12월 5일 부여군청에서 농성을 하면서 삭박을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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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는 지정폐기물 매립장 설치 반대이유로 "이곳은 1400여 년 전 대 백제가 융성했던 124년 동안, 백제의 고도로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아름다운 문화예술의 본 고장이다,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과 고대 선조들의 혼과 숨결을 담아 빚은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를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 214점이 산대해 있는 최대 규모의 역사적 관광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로부터 무공해 청정 농촌지역이며,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을 기반으로 굿뜨래 8味로 밤, 오이, 딸기, 메론, 토마토, 양송이, 표고, 수박 등 질적으로 매우 우수한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유명한 곳이다"며 "이런 친환경 청정농업지구에 폐기물매립장 설치로 침출수와 분진 등으로 땅과 물, 공기 오염을 일으켜 부여군 전체에 해악이 되는 곳으로 폐기물매립장 설치를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2012년 8월 11일 '폐기물매립장 반대 대책위'를 구성하고,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 침해 ▲사업예정지는 재해위험지역으로 천재지변시 주민피해 심각 ▲멸종위기 야생식물 자연생태계 파괴 및 서식지 훼손우려 ▲축령봉(356고지) 이대 군사시설 및 훈련장 사용 악영향 ▲백제의 왕도 이미지 실추 ▲부여군 농업군의 농가소득증대 감소로 지역경제 붕괴 ▲밤나무 훼손은 산림소득증대에 막대한 피해초래 ▲사업진행 및 사업종료 후 유지관리 등 문제점 책임소재 불분명 ▲기타 반대이유(문제 점)를 지적하고 있다.

대책위는 은산면사무소와 부여군청, 토지매도자, (사업자)한맥테코산업, 금강유역환경청 등 1000명에서 20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집회를 7차례를 가졌다. 그리고 사업반대를 위한 8164명의 주민동의를 받고 폐기물매립장이 운영 중인 충북 제천시 폐기물매립장과 '검은비'가 내리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수시 율촌산단을 방문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리고 11월 29일부터 부여군청과 사업예정지 입구에서 침묵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대전환경운동연합과 연대하여 환경운동연합 정남순 변호사를 고문변호사로 정용환, 박순배 변호사를 자문변호사로 두고 있다.


태그:#폐기물매립장, #농성 28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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