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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진행 중인 벌초...갓 삶아 온 감자 먹으며 망중한...
▲ 벌초... 한참 진행 중인 벌초...갓 삶아 온 감자 먹으며 망중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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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하룻밤을 묵고 갈 집은 고향마을에 있는 큰아버지 댁이다. 큰어머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큰 아버지와 쉰이 훨씬 넘은 큰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오늘은 또 목포에 살고 있는 작은 형(남편이 부르는 대로)도 와 있어서 곰만 한 남자만 세 명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큰 집은 약간 언덕진 곳에 자리해 있어서 집 앞 마당에서 보면 논밭들과 교회를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집에 들어서자 커다란 누렁개와 흰 개가 컹컹 짖어댔다. 인사를 하고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먹고 운영이 형이 가이드 해 장산섬을 한 바퀴 돌아준다고 했다. 일명 장산투어였다.

일면식이 없었던 장산도. 처음 와 보는 섬이라 어디가 어딘지 잘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섬 가장자리를 한 바퀴 차로 돌아보며 작은형은 지나가면서 여기저기 설명을 해주었다.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빨리 돌아보면 약 20분밖에 안 걸린다고 했지만 천천히 설명도 하고 내려서 보기도 하면서 가는 길이라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 사용해 보는 예초기...아직 기계 숙지도 못해 열심히 설명 듣고 있네요...
▲ 벌초... 처음 사용해 보는 예초기...아직 기계 숙지도 못해 열심히 설명 듣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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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크지 않은 섬이고 특별할 것 없이 아기자기 고만고만했고 아기자기 했다. 고추농사 콩 농사가 유독 많은 것 같았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두어 시간 남짓 들어와야 하는 섬. 이 섬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섬을 에워싼 바다와 개펄에 갇히고, 사람들은 섬에 갇혀 지내는 걸까. 섬마다 사람들이 비빌 언덕을 만들고 그 섬에 잇대어 살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디든지 사람들은 삶을 일구며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유독 눈에 띄는 건 가가호호마다 텃밭에 수박이나 무화과나무가 한두 그루쯤 없는 집이 없다는 점이었다. 인사하러 친척집에 들릴라 치면 꼭 뒤 곁에 있는 밭에 가서 수박을 따와서 잘라 주었는데 밭에서 바로 딴 수박은 육질이 연하고 달아서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무화과는 주렁주렁 왕성하게 달려서 조금씩 감질 맛나게 익어가고 있었다. 무화과나무는 감나무만큼이나 흔하디흔했다.

서툴지만 조금씩 예초기를 사용하며...
▲ ... 서툴지만 조금씩 예초기를 사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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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를 들고 벌초 하려다가...결국...풀을 긁어 모으고 있네요...^^
▲ 벌초... 예초기를 들고 벌초 하려다가...결국...풀을 긁어 모으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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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일단은 장산도 전체를(다는 아닐지라도) 돌아보는 장산투어부터 소개해 본다. 잘 닦아놓은 도로를 따라 바닷가 쪽으로 섬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보는데 증도의 태평염전과 바닷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히 펼쳐진 갯벌이며 낚시터 등 섬의 곳곳을 돌아보았다. 벌초도 해야 하니 시간이 넉넉지 않아 꼼꼼하게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할 수 없었다.

장산도를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돌아온 우리는 아직도 햇볕이 쨍쨍하지만 너무 늦어져도 안 되기에 준비를 해서 선산으로 향했다. 예초기와 모자 장갑 등 나름대로 단단히 준비해 산을 올랐다. 풀이 무성하게 웃자라 선산엔 묘지들이 함부로 자란 풀로 뒤덮여 있었지만 매년 잘 돌본 까닭인지 생각보단 나았다. 벌초를 생전 처음 해본다는(나 역시 벌초하러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주버님과 옆지기는 시작부터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작은 형이 함께 왔기 망정이지 오늘 오후 내내 해도 끝나지 않을 뻔했다.

감자 먹으며 휴식...
▲ 벌초... 감자 먹으며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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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시간...
▲ 벌초... 감자 먹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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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버님과 남편이 예초기를 하나씩 들고서 풀을 베려고 하니 기계 작동법도 숙지를 안 해서 한참을 만지작거렸고 겨우 기계사용 방법을 가르쳐주니 마치 바리캉으로 머리를 이상하게 잘라놓은 것처럼 풀이 매끈하게 잘려 나가지 않아 보기가 흉했다. 보다 못한 둘째형은 그렇게 하다가는 오히려 몸 다치고 밤새도록 해도 끝나지 않겠다며 손수 기계를 들고 풀을 베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주버님은 서툴지만 천천히 따라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이 어색했지만 조금씩 기계 다루는 솜씨가 나아졌다. 남편은 예초기를 사용 못하고 옆에서 기계에서 잘라져 나오는 풀을 갈구리로 긁어모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을 도왔고 나는 밭에 있는 깻잎을 땄다.

선산에 모신 조상들의 묘는 여러 개라 시간이 걸렸고 몸도 불편하시다는 큰 아버님이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오시더니 우리를 불렀다. '이것이 너희 할아버지의 묘다. 그 옆엔 큰 할머니고...딸 하나 낳고 일찍 돌아가셨지. 그 옆에는 작은 할머니 그리고 그 위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차례로 설명해주셨다.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또 그 위에...많기도 하다. 정작 시부모님 묘는 여기 없는데 굳이 예까지 와서 벌초를 하는 것은 벌초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고향과 조상들을 잊지 말라고 하는 내포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이제 거의 다 마무리...
▲ 벌초... 이제 거의 다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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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엔 큰 형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방금 삶아온 감자를 가지고 왔다. 풀로 뒤덮였던 봉분들이 동글동글 모양 좋게 드러나는 그 사이 풀밭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며 따뜻한 감자를 먹었다. 배가 올 때만 움직인다는 마을버스가 마을길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몇 호 안 되는 마을들이 이웃해 있었다. 아늑한 풍경이었다. 일이 아직도 많다보니 이젠 보다 못해 큰 형도 일을 도왔고 또 고여 있는 듯한 시골생활에 손님이 오니 기분이 좋았던지 이웃 사람까지 벌초하는 데까지 올라와 함께 동참했다.

중천에 있던 해는 서쪽으로 차츰 기울더니 어느새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고 벌초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벌초 하느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하는 즐거움과 흐뭇함을 느꼈다. 어느새 해는 꼴깍 넘어가고 우리는 옷에 묻은 먼지와 티끌을 떨어내며 마을로 내려갔다. 조용한 마을에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벌초는 끝나가고...해는 꼴깍 넘어가고...
▲ 벌초... 벌초는 끝나가고...해는 꼴깍 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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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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