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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열린 한 음악회에 참여한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지역에서 열린 한 음악회에 참여한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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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학교가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중학교가 또 있을까 싶다. 초등학교에는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인 학교가 여럿 있다. 하지만 중학교에는 이 학교가 거의 유일하다. 음악을 전공으로 하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애초 음악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평범한 아이들이다. 이 학교에 오기 전에는 악기를 만져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아이들이 어떻게 오케스트라단 단원이 되고, 또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실력을 쌓게 됐을까? 아이들이 처음부터 다들 음악에 소질이 있었느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 아이들 대부분 아예 악보조차 읽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이 모두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게 되다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악기는 연주해도 오케스트라 연주는 무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돼서는, 전국 규모의 음악 경연대회에 나가 금상까지 수상하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진 상식으로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악보조차 읽을 줄 몰랐던 아이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정암리에 있는 강현중학교. 이 학교는 동해 바닷가 물치해수욕장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학교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녹색 인조 잔디를 깐 운동장 너머로 두 동의 건물이 보인다. 한 동은 교무실과 교실 등이 있는 건물이고, 한 동은 체육관이다. 겉보기에도 큰 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학생 수는 학교 규모에 비해 더 작은 편에 속한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겨우 49명에 불과하다. 오케스트라단을 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학생 수가 수백 명이 넘는 학교에서도 오케스트라단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채 50명도 안 되는 아이들을 가지고 오케스트라단을 만들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지도교사, 강은희씨, 강은희 교사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강현중학교로 부임한 후, ‘2011년 교육부 방과후 대상 교사상’을 수상했다. ‘속초시 음악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지도교사, 강은희씨, 강은희 교사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강현중학교로 부임한 후, ‘2011년 교육부 방과후 대상 교사상’을 수상했다. ‘속초시 음악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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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에 오케스트라단이 만들어진 것은 2009년이다. 그 전에는 일부 학생들이 참여하는 관악부가 있었다. 그 관악부가 오케스트라단으로 거듭나는 데는 음악 활동 지도교사인 강은희 교사의 역할이 컸다. 강 교사는 2009년 이 학교에 부임한 직후, 학교에 학생 전체가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단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강 교사가 그런 제안을 하게 된 데는 작은 학교 특성상, 무언가 한 가지라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다.

오케스트라단을 만드는 일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 중에는 음악을 싫어하는 아이도 있고, 학부모들 중에서는 또 아이가 오케스트라단 활동을 하는 게 탐탁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 중에서는 우리 학교에서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단을 구성하는 데는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견해가 더 많았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대부분 오케스트라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오케스트라단을 꾸리는 데는 사실상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나타났다.

음악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악보를 읽는 일부터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 악기를 다룰 줄 알게 만드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그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악기 연주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더 더욱 힘든 일이었다. 백지 상태에 있던 아이들 또한, 난생 처음 보는 악기를 만지고 다루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예산이 부족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케스트라단을 구성할 때만 해도 예산이 부족해, 외상으로 악기를 구입해야 할 때도 있었다. 단복을 맞춰 입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이들과 지도교사 모두 음악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강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열정을 다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따라와 줬다.

춘천에서 열린 전국관악대회에 출전한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춘천에서 열린 전국관악대회에 출전한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 강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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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3년 만에 전국 관악대회에서 '은상' 수상

노력을 기울인 만큼 성과는 뚜렷했다. 그 성과는 오케스트라 창단 초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은 창단한 지 3년이 되던 해인 2011년에 처음으로 '제36회 대한민국 전국관악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올해 8월 춘천에서 열린 '제11회 전국관악경연대회'에서는 금상을 수상해 지역 사회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은 이 대회를 통해 그들이 가진 실력이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은 이 대회에 참여한 학교 중 가장 작은 규모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 역량은 다른 학교들을 능가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 실력을 갖게 된 것일까? 아이들의 연주 실력은 무엇보다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끝에 얻어졌다. 여기에 학교와 학부모들이 오케스트라단 활동에 보내는 전폭적인 지지도 한몫했다. 그러니까 학생들과 학부모와 학교가 모두 한 마음이 돼서 움직인 결과, 오늘과 같은 빛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단은 아이들에게 음악 실력만 가져다 준 게 아니다. 아이들의 인격이 성장하는데도 상당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화합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협동심을 배웠다. 자연히 인성이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큰 대회에 나가 예전에는 꿈조차 못 꿨던 큰 상을 받는 등 성취감도 얻었다.

강은희 교사는 오케스트라단을 이끌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아이들이 연주하기에는 좀 어렵다고 여겨지는 곡들을, 오랜 연습 끝에 무난히 연주할 수 있게 됐을 때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 학교 오케스트라단은 이제 지역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오케스트라단 창단 이후로, 음악 경연대회에 출전하는 것 외에도, 지역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참여해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각종 음악회는 물론이고 지역 축제 등 다양한 행사에 출연하고 있다.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강현중학교.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강현중학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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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울 마지막 희망

강현중학교 같은 작은 학교에서 오케스트라단 같은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장애가 없을 수 없다. 이 학교 오케스트라단은 현재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올해 춘천에서 열린 음악경연대회에 나갈 때는 그 흔한 단복 하나 갖춰 입지 못했다. 강현중학교 아이들은 다른 학교와 달리 교복을 입은 채 무대에 올랐다.

가장 큰 문제는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학생 수가 줄면, 나중에는 오케스트라단에 필요한 최소 단원 수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지역에 인구가 줄면서, 이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수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최악의 경우에는 오케스트라단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아예 학교 문을 닫아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교육부 차원에서 작은 학교를 통폐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작은 학교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강현중학교를 보면, 작은 학교를 통폐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역에서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역에서는 작은 학교가 수행하는 역할이 큰 학교 이상으로 중요하다. 학교가 문을 닫는 순간, 그 학교 졸업생들을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지역 축제에서 연주 실력을 뽐낸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지역 축제에서 연주 실력을 뽐낸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
ⓒ 강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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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중학교를 보면, 지역에 작은 학교들이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뚜렷해진다. 이 학교에서 우리는 작은 학교가 그 지역에서 수행하는 특수한 교육적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기능은 큰 학교가 수행하기 힘든 것들이다. 큰 학교였더라면, 양양군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단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 얼마나 가능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학교, 이종선 교장은 '작은 학교'를 지키는 데 꽤 적극적이다. 이 교장은 작은 학교에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이 교장은 현재 그 희망을 오케스트라단에서 찾고 있다. 이 교장은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단으로 활동하면서 큰 자신감을 갖게 되고 학업에 열중하는 계기도 됐다"며, 작은 학교에도 분명히 희망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오케스트라단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최소 30명 이상의 학생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인근 도시 학교에 나가서 도시 학생들이 작은 학교에 스스로 찾아올 수 있게끔 오케스트라단을 홍보할 예정"이다. 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단은 단순한 오케스트라단이 아니다. 어느새 그 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울 마지막 희망이 되고 있다.


태그:#강현중학교, #오케스트라, #강은희, #이종선,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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