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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책표지.
 <정글만리> 책표지.
ⓒ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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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새 소설 <정글만리> 3권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밀어 내리고 베스트셀러 꼭대기에 등극한 지 보름여가 흘렀다. 한 작가의 3권짜리 소설이 베스트셀러 수위에 오른 기억도 없지만, 이렇게 장기간 독주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드물기에 신기하다. 이 정도 상황이면 조정래 작가가 '장안의 지가를 올린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인기는 입소문에 의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십여 명이 넘는 이들에게 이 소설의 위력을 설명했다. 내 말의 추천 취지는 이랬다. "칠십이 다 된 노 작가가 이렇게 공정한 시각에서 중국을 읽는 것도 어렵지만,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고도 거부감이 없다는 것은 향후 우리나라가 중국을 보는 시선이 변할 것을 말해준다"라며 꼭 일독을 권하곤 했다.

내가 산 소설 역시 안사람이 보고, 안사람의 공부 친구들이 돌려보고 있으니 머지않아 이 소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관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한·중·일간 비즈니스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극적 재미는 별로

사실 이 소설의 극적 재미는 별로다. <태백산맥>에서 <한강>에 이르는 근대 3부작은 대하소설임에도 수많은 인물이 하나하나 살아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독자들을 마지막까지 끄는 힘이 있다. 반면에 이 소설은 중국에서 벌어지는 한·중·일간의 비즈니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극적 구성은 그다지 긴박하지도 않고 인물들도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는다.

반면에 책 내부 상당수는 중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런저런 지식을 주기 위한 장치들로 차 있다. 소설답지 않고, 지나치게 설명적인 구석이 너무나 많아 어떨 때는 지루하기까지 할 정도다. 그럼 천하의 대하소설 작가가 왜 이렇게 지나치게 설명식으로 소설을 구성했을까.

사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극적인 재미를 주기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데 더 주안점을 두었다. 십 년 전부터 우리 수출의 25%가량을 차지하는 나라이며, 외래 관광객에서 일본을 추월해 독보적인 수치를 기록하는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떨까. 과거 일본을 백안시하듯이 중국을 보는 눈 또한 별다르지 않았다.

'메이드인 차이나'라는 말에서 연상하는 것은 싸구려나 낮은 품질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조정래 작가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었고, 독자들이 이 뜻을 받으면서 이 소설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한 것은 <아리랑>이나 <한강>의 자료를 찾기 위해 중국을 다니면서라고 한다. 예민한 작가에게 중국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리 만무했을 것이다.

이제 중국을 예측할 수 있는 이는 없다. 호남고속철도 100여 Km 까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드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에는 모두 새 철로로 구축되는 고속철도가 2020년이면 5만 km에 달한다.

80년대 중반 중국을 여행한 폴 서로우가 <중국기행>에서 "그들은 항상 침을 뱉었다... 그들은 양 볼로 바람을 빨아들인 후 캭! 하고 뱉는다. 그리고 히죽 웃고 입을 다물고는 몸을 뒤로 기댄다... 그들은 절대로 멀리 뱉지 않는다. 기껏해야 선 자리에서 몇 센티 정도인 바로 발아래 뱉는다"라고 표현했다. 현 중국은 80년대 기차 속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작은 쓰레기만 있어도 승무원이 와서 득달같이 청소하고, 습관처럼 먹던 해바라기씨도 먹는 이가 별로 없다.

중국을 보는 시선, 낮은 수준의 국가라는 선입견

그럼에도 우리가 중국을 보는 시선은 앞서 말한 것처럼 낮은 수준의 국가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다. 이런 데는 기이한 사건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언론들이 한몫했다. 그 때문에 중국 관한 기사에 올라오는 댓글은 대부분이 중국을 비하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것이 안타까웠을 것이고, 그것을 소설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필자가 이 소설을 읽으며 감탄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작가의 치밀한 취재력이다. 10년간 중국 생활을 한 필자가 몰랐던 다양한 유학생 이야기나 주재원 이야기 등이 나온다. 올해로 칠십이 된 작가가 이런 취재를 하고, 그것을 한 소설에 녹여내는 작업을 했다는 것에는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작가의 이런 열정에는 우리 국민이 중국을 보는 잘못된 시각이 안타까웠다는데서 시작됐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근대 중국에서 위대한 흔적을 남긴 김염, 한락연, 정율성, 양세봉, 김산, 주덕해 등을 만났지만, 대다수 국민이 그들의 이름조차 생소하다는 것에 안타까웠다.

젊은이들이 그저 안타까움만을 표현할 때, 고희의 나이인 조정래 작가는 직접 그 속에 뛰어들어 소설을 남겼다. 그 열정으로 녹여낸 한자 한자의 뜻을 사람들이 이해하면서 큰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를 이끄는 정치 엘리트의 대부분은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 수급됐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 최대 국가가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위기이자 기회다. 경제 교역으로, 관광객으로, 유학생으로 수많은 징후들이 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것을 감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감지 못하는 개구리 같은 우리 모습이 노 작가는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글만리>는 우리 국민들이 중국을 보는 시각을 충분히 바로잡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것이 계속해서 젊은 조정래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


태그:#조정래, #정글만리,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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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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