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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반 년만에 서울시청 '국정원 촛불집회'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 국민의 젖줄, 유방씨 정확히 반 년만에 서울시청 '국정원 촛불집회'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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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싸~해졌습니다. 여직도 허냐고, 고생 많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그래도 지난 주말, 고 노무현 대통령 생신 맞아 봉하 다녀온 덕분에 아직은 힘이 남아 있습니다."

개성 있는 행보로 지난 3월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유방씨(관련기사 : '국민의 젖줄, 유방씨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서울의 한낮 더위가 극에 달했던 8월 17일, 서울시청 광장 '국정원 규탄' 집회현장에서 그와 반년 만에 재회했다.

우선 검게 그을린 얼굴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이 사람 또 뭔가 열심히 꾸미고 있구나'란 생각이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한 손에 촛불을 들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절로 '국민의 젖줄, 유방씨'란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 후로 3주가 흘렀다.

그 사이 정국은 요동쳤다. 국정원 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이른바 '내란예비음모' 사건이 터져버렸다. 뜨겁게 타오르던 국정원 규탄 촛불 역시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상황이 급변한 탓에 유방(27)씨와의 인터뷰는 어렵다 판단했다. 설명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고향땅 충남 서천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다. 벌써 예순아홉 번째 밤이었다.

"촛불을 든 이유"

그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바로 서천행 버스에 올랐다. 다시 찾은 충남 서천, 유방씨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 지어보이며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의 애마 '다마스' 역시 여전히 서천을 누비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신상엔 '촛불'에 따른 많은 책임이 따랐다.

서천에서 촛불을 든 첫 날, 유방씨는 유일한 소득원이었던 비정규직 책 배달일을 그만둬야했다. 여기서 그는 본인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이 엿보였다. 유방씨 역시 이에 대해 "더 중요한 일이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만 했다.

과연 '밥벌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지난 1일 밤, 충남 서천 촛불집회 현장에서 유방씨는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벌써 69일째, 유방씨는 촛불을 들고 있다.
▲ 촛불을 든 유방씨 벌써 69일째, 유방씨는 촛불을 들고 있다.
ⓒ 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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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방씨가 살고 있는 충남 서천은 굉장히 작은 도시다. 전라북도 군산과 마주하고 있는 서천은 전체 인구가 채 6만에 미치지 못한다. 이 중 65세 이상 장년층이 전체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방씨는 서천공동체 발전을 위해 대학 졸업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간의 노력 덕분에, 교육 중심으로 몇 가지 마을 사업이 큰 족적도 보였다. 하지만 '촛불'로 인해 모든 걸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촛불이 타고 있다는 걸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어요. 크기의 차이일 뿐, 전 국민이 공유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향에 내려와 1년 동안 애썼던 일들을 과감히 정리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고요. 그만큼 '국정원 문제'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고요."

때문일까? 여름을 지난 유방씨의 피부는 더욱 탄탄해져 있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촛불을 켠 덕분이었다. 어떤 의지를 갖고 금번 여름을 보냈는지 그의 외향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유방씨가 아무리 의지 있게 출발했어도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홀로' 촛불을 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주변의 반응이 생각보다 우호적이지 않았다. 매일 가던 식당, 미용실, 슈퍼에서 동네 주민들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을 벌이고 있냐"며 거리를 뒀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밥 보다 중요하다
▲ 69일째 밤 민주주의는 밥 보다 중요하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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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곁엔 아버지 유승광(51)씨가 있었다. 유방씨의 아버지 역시 현직 교사임에도, 학생을 가르치기 이전에 역사학자로서 지금의 사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섰다. 그렇게 현직 교사의 '국정원 규탄' 1인 시위가 시작됐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일까? 유방씨는 이 부분에서 말을 보탰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함께 걷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나선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아버지가 먼저 보여주시더라고요. 역사학자인 아버지가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못할 게 뭐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의미 있게 피켓을 들었고, 저는 저대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촛불을 든 거죠"

"단언컨대, 밥보다 중요합니다"

유방씨가 지난 69일 동안 촛불을 끄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밥보다 중요한 게 민주주의'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방씨가 서점 배달 일을 그만두고 양계장 아르바이트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와 기준이 달라요. 보는 이에 따라 밥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할 수도 있어요. 다만 이거 하나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나쁜놈들이 집안 뿌리를 흔들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밥만 먹고 있을 수 있나요? 못하게 막아야죠. 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촛불이라도 들어야죠. 어째든 못하게 막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유방씨의 목소리에 결연함이 엿보였다. 그렇다고 유방씨가 촛불만 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물어봐요. 왜 하냐고. 그때마다 제 스스로 확신이 없으면 제대로 답을 할 수 없더라고요. 그게 다시 책을 보는 이유"라 밝혔다. 실제로 그의 손엔 대한민국사를 정리한 한홍구 교수의 책이 들려있었다. 특히 광복 이후의 현대사, 4·19, 80년 광주, 87년 6월 항쟁 부분엔 까만 손때가 가득했다.

하루 하루 이어가다보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 서천 촛불 문화제 하루 하루 이어가다보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 이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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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짙어진 9월의 첫날, 유방씨는 오늘도 서천 봄의 마을 광장 앞에서 묵묵히 촛불을 들고 섰다. 그를 스치는 학생, 청년,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는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매일 촛불을 들고 있는 마을 청년이 궁금해 말을 붙였다. 유방씨 역시 제법 촛불의 규모가 커졌다고 자평했다. 마침 동네 꼬맹이들이 역시 몰려와 한편에서 촛불을 함께 들었다.

"'민주주의'가 저기 먼 나라 이야기인가요? 아닙니다. 매일 촛불 들며 느낀 사실은, '민주주의'는 공기와 같아요. 평소엔 중요한 거 모르다가도, 없으면 정말로 큰 일 나는 공기. 생각해 보세요. 산소가 사라진 대한민국.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사라지는 거죠. 마지막까지 촛불을 들고 있을 겁니다. 이게 바로 진짜 사는 문제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금번 '국정원 규탄 촛불'은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 사태와는 별개의 문제에요. 우선 숨부터 제대로 쉬어야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blog.naver.com/moviekjh1)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국정원, #유방, #촛불집회,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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