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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사방백리에 큰 산이 없다 했다. 뿌리를 드러낸 채 홀로 우뚝 솟아 있다. 산 전체가 화강암 덩어리인양 옹골지고 암팡지다. 신령스런 기운마저 감도는데, 이런 산에 이름난 절이 없을 리 없다. 영암에 도갑사, 강진에 무위사가 월출산 이쪽저쪽에 자리 잡았다.

 화강암덩어리인양 옹골지고 앙팡지다
▲ 영암에서 본 월출산 정경 화강암덩어리인양 옹골지고 앙팡지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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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영암 쪽은 날카롭고 가파른 골산(骨山, 돌산)이며 강진 쪽은 비교적 산세가 완만한 육산(肉山)이다. 맛으로 말하면 하나는 국물이 시원한 뼈다귀 산이고 다른 쪽은 육즙 많은 고기 산이다. 육산을 육산(陸山)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바위산(巖山)의 상대어로 어울린다. 골산의 상대어로는 육산(肉山)으로 불러야 제 맛이 난다 하겠다.

비교적 산세가 완만한 육산(肉山)으로 산줄기에 차밭이 있다
▲ 강진에서 본 월출산 정경 비교적 산세가 완만한 육산(肉山)으로 산줄기에 차밭이 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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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가본 무위사인데 이번엔 월출산 능선이 훤히 보이는 월남마을 쪽으로 가기로 했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가려면 큰 재를 넘어야 한다. 풀티재와 누릿재다. 풀티재(초령)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신작로였고 누릿재(황치)는 예부터 걸어서 넘나드는 지름길이었다. 다산이 유배길에 넘어간 길도 누릿재다. 이 큰 재 바로 너머에 월남마을이 있다.

마을 앞에 이르자 누리령 봉우리가 훤히 드러났다. 나에게는 아름다운 봉우리였지만 귀양살이 떠나는 다산에게는 애를 태우는 봉우리였다. 다산의 눈에는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가 도봉산 봉우리로 보였나 보다. 고향생각에 젖은 다산은 차마 봉우리에 눈길을 주지 못하고 남몰래 '나그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리령의 산봉우리 바위가 우뚝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월남으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마소  
봉우리마다 어쩌면 도봉산 같은지

 멀리 있는 월출산 봉우리는 도봉산봉우리 같다
▲ 월남마을에서 본 월출산 봉우리 멀리 있는 월출산 봉우리는 도봉산봉우리 같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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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옮긴 만큼 봉우리는 점점 가깝게 보이고 키 작은 대나무에 가려 듬성듬성 얼굴을 내밀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석축은 빈터를 에워싸고 있는데 이 터가 월남사터다. 사료에는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데...'로 시작하고 있다. 월출산의 남쪽에 있다하여 월남사라 불렀나? 알 수 없는 유래마냥 사력(寺歷)도 아리송하다.

지금 발굴조사가 한창인데 절터가 제법 크다. 이번 발굴 때 백제기와가 출토돼 백제 때 창건된 절일 가능성이 커졌다. 고려 때 진각국사가 창건했다는 사료는 창건이 아닌 중창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뭐라 해도 월남사터의 보석은 삼층석탑이다. 월출산 하얀 바위능선을 배경으로 늠름하게 서있다. 원래 고려 탑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발굴로 백제, 후백제 혹은 고려중기 때 만들어졌는지 재검토해야 할 판인데 백제 정림사터 오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백제는 온데간데없어졌어도 이 땅이 예전에 백제 땅이었음을 조용히 알리고 있다.

석탑은 하얀 봉우리를 배경으로 늠름하게 서있다
▲ 월남사터삼층석탑과 월출산봉우리 석탑은 하얀 봉우리를 배경으로 늠름하게 서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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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은 산길로 이어져 강진다원에 닿는다. 강진 쪽 월출산은 육산이라 했던가, 월출산 줄기 따라 차밭이 일구어졌다. 월남사터에서 발굴된 차맷돌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차밭을 지나 산굽이를 돌아가면 무위사에 이른다.

무위사는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절이라 했다. 예전, 적어도 최근 불사가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가질 만큼만 가진 그런 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소박’, ‘질박’, ‘순박’, ‘검소’라는 말과 어울리는 절이었다(2006.08.02에 촬영)
▲ 예전 무위사 정경 ‘소박’, ‘질박’, ‘순박’, ‘검소’라는 말과 어울리는 절이었다(2006.08.02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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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무위사는 어떠했나, 답사기의 고전이 돼버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춰보았다. 무위사가 변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무위사가 계속해서 사랑받는 절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해서 그럴 것이다. 

"무위사를 몇 년 전 능력 있는 스님이 들어와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담장이 둘러지고 천왕문을 새로 지었으며 입구에는 매표소도 만들어 놓았다. 극락보전을 감싸고 있던 대밭을 몽땅 베어버렸고 경내 한쪽의 목백일홍도 온데간데없다. 감싸주던 아늑함은 사라지고 뻥 뚫린 허망함만 극대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경내 저쪽에 자리 잡은 천불전, 미륵전, 삼신각들이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의도인즉 호방하게 보이기 위함이겠지만 내 눈에는 마냥 허전하게만 느껴진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1, 창비, 30-32쪽)

1992년 4월에 쓴 글이니까 벌써 20여 년 흘렀다. 이 글 따라 지금의 무위사를 표현해 보면 그 때의 허망함은 허망함도 아니다. 허망은 절망을 낳았다.

유능력한 스님이 몇 년 전부터 무위사를 손을 대기 시작했다. 우리의 심성이 담겨 있고 별다른 잔재주를 부리지 않은 완만한 계단길, 자연 그대로 만들어 소박하기만 그 길을 파헤쳐 그 길 위에 보제루를 새로 지었다. 길 옆 목백일홍과 동백은 온데간데없고 '무위사중수공적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제루와 범종각 앞에는 길게 담을 쌓았다. 의도인즉 아늑함을 주기위한 것이겠지만 내 눈에는 마냥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극락보전 앞에 보제루 생겨 답답하다
▲ 현재 무위사 정경 극락보전 앞에 보제루 생겨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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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보제루가 없는 예전 무위사가 더 좋다(2006.08.02에 촬영)
▲ 예전 무위사 정경 개인적으로 보제루가 없는 예전 무위사가 더 좋다(2006.08.02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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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검소하고 수수한 절집의 대명사가 된 무위사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큰 건물을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문화적 제약'을 받지나 않을지 모르겠다"고 한 과거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그것은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성형으로 치자면 20여 년 전 무위사의 변화는 코만 살짝 세운 정도다. 지금은 코만 세운 게 아니라 얼굴을 깎고 눈도 트고 코는 재수술을 한 모양이다. 인상이 완전히 바뀐 사람 같은 것이다. 천왕문 한 켠의 '중수공적비'는 성형수술을 집도한 외과의사 명패처럼 보인다.

길옆 배롱나무, 동백나무 대신 공적비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 무위사중수공적비 길옆 배롱나무, 동백나무 대신 공적비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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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여름, 무위사에 왔을 때 불사가 한창이었다. 어수선하고 길은 질퍽거리고 보제루의 뼈대를 세우던 때였다. 허망한 마음에 다시는 이제 무위사를 찾지 않겠노라하면서 발길을 돌렸었다.

올해 다시 찾은 것은 중창불사가 궁금해서 온 것은 아니다. 윤기 잃어 부석거리는 극락보전 안마당에 엄마 잃은 어린아이처럼 홀로 서럽게 서있을 극락보전이 애처롭게 생각돼서다. 

내 마음만 그랬던 건가? 극락보전은 세태가 어떠하든 맞배지붕의 단아하고 옹골진 품위를 유지한 채 흐트러짐 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실비단 강진 하늘을 배경으로 오롯이 서있었다.

오늘따라 내 마음처럼 침울하고 비딱하게 보인다
▲ 한여름의 극락보전 오늘따라 내 마음처럼 침울하고 비딱하게 보인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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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두덩과 입술이 두툼하고 온갖 시련을 견디어 낸 남도의 굳센 어머니 같은 미륵전 석불은 중창불사를 하거나 말거나 예나지금이나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미륵전 앞, 삼층석탑과 선각대사 부도비도 상처 없이 온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전 사진을 들추어 보았다. 한 겨울 무위사, 한여름 무위사, 모두 반듯하고 사진 하나하나 예쁘고 아름답다. 이번에 찍은 사진은 색도 밝지 않고 반듯한 게 별로 없이 비딱하다. 마음이 비딱해서 그렇게 찍힌 게다. 모든 게 보는 이의 마음에 달렸나 보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극락보전은 제자리 그대로 서있다. 바뀌는 건 내 마음이다(2007.12.30에 촬영)
▲ 눈 맞은 극락보전 눈이오나 비가 오나 극락보전은 제자리 그대로 서있다. 바뀌는 건 내 마음이다(2007.12.30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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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집착이 현재의 존재를 망각하게 한다. 내 마음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처음 무위사를 오는 분은 보제루가 답답하지 않고 아늑하게 느껴지길 바라며 소박, 질박, 순박, 검소의 아름다움 대신 다른 아름다움을 찾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8/4-8/6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이 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월출산, #월남사터, #무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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