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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나비가 꽃을 찾아왔다. 비바람에 날개가 상한 나비도 있지만, 그의 날갯짓도 아름답다.
▲ 부추꽃과 나비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나비가 꽃을 찾아왔다. 비바람에 날개가 상한 나비도 있지만, 그의 날개짓도 아름답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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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9일) 여름과 가을을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을 만큼의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비가 그치자 어젯밤부터 내린 비에 날지 못했던 곤충들의 움직임이 부산합니다.

부추꽃을 찾은 범부전나비의 날개가 상했습니다. 상한 모습조차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들 스스로 상처에 상처받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때문일 것입니다. 비 온 뒤 풀섶에 맺힌 비이슬들을 찾아 봅니다.

어디서든 피어나는 그들의 '삶'

끊임없이 피어나는 미국자리공의 꽃들도 열매만큼이나 아름다운 비이슬을 맺었다.
▲ 미국자리공 끊임없이 피어나는 미국자리공의 꽃들도 열매만큼이나 아름다운 비이슬을 맺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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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리공의 꽃에도 비이슬이 맺혔습니다. 이미 열매가 무수히 열려있고, 보랏빛으로 익은 열매들은 벌써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대도 여전히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엄청난 생명력과 큰 키로 인해 근처에서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해식물 중 하나로 낙인을 찍힌 식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의 고향에서 이곳까지 온 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인간 때문이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피어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삶입니다. 그러니 미워할 수가 없지요. 그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인간의 소비 패턴을 부끄러워해야 하겠지요.

배롱나무의 꽃술에 비이슬이 맺혔다.
▲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꽃술에 비이슬이 맺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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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꽃술에 아름다운 비이슬을 담고 지는 꽃을 추모하는 듯하다.
▲ 배롱나무 저마다 꽃술에 아름다운 비이슬을 담고 지는 꽃을 추모하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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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백일홍이라고도 하고, 배롱나무라고도 하는 나무는 줄기가 미끄러워 원숭이가 떨어질 정도라고 합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꽃이 한 번 피면 백일은 넉넉하게 꽃을 피워냅니다.

가을의 문턱에 오니 처음 꽃이 피었던 때가 100일이 넘었는지, 피어나는 꽃들보다는 지는 꽃들이 더 많습니다.

꽃술에 비이슬이 걸렸습니다. 가는 꽃들에게 '그동안 수고했어'하며 선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작은 수고에도 감사함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을 때 서로를 배려하는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남의 수고를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살기가 퍽퍽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조금, 천천히 가면 좋겠습니다

뜨거운 햇살에 잘 익어가는 열매, 가을이 깊어지면 붉은 빛으로 변할 것이다.
▲ 열매 뜨거운 햇살에 잘 익어가는 열매, 가을이 깊어지면 붉은 빛으로 변할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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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꽃 피고, 여름에 열매익고, 가을에 무르익는 과정들 하나하나 사람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릿느릿 진행됩니다. 어느 과정 하나도 숙성으로 되어진 것이 없습니다.

자연의 시간이 사색의 시간인 이유입니다. 인간이 사색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은 '빨리빨리'라는 조급증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빨리빨리'입니다. 조금만 늦어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기다릴 줄 모릅니다. 오로지 '빠름빠름'만이 상품이 되고, 그것이야말로 진리인 것처럼 혹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접속의 시대, 그러나 우리는 누구와도 접속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그저 기계와 접속하며 살아갈 뿐이고, 기계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잠시, 접속하느라 빼앗긴 눈과 손을 세상을 바라보고, 제가 먹을 양식을 심고 가꾸는 일에 사용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

조금 천천히 가면 좋겠습니다.

거미줄에 걸린 비이슬, 오늘 하루쯤은 먹이가 아니라 비이슬 달고 있어도 좋은 날인가 보다.
▲ 거미줄에 걸린 비이슬 거미줄에 걸린 비이슬, 오늘 하루쯤은 먹이가 아니라 비이슬 달고 있어도 좋은 날인가 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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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비이슬이 가득합니다. "오늘은 공쳤다"고 거미가 한탄을 할까 싶다가도 어차피 곤충이 날아가기 힘든 날이니 "오늘은 비이슬이나 달고 놀자"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가지지 않았기에 온전히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곤충들, 그 작은 것들이 어쩌면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잘려나간 고목밑둥에 녹슨 철못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 조차도 흙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듯 이끼가 감싸고 올라간다.
▲ 철못과 이끼 잘려나간 고목밑둥에 녹슨 철못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 조차도 흙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듯 이끼가 감싸고 올라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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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사이, 뜰을 거닐다 만난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래전에 베어진 고목의 밑둥이 눈에 들어옵니다. 푸릇푸릇 이끼들이 고목나무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저 이끼들은 땅의 옷의 역할을 하는 지의류로 자신들이 감싼 것들을 흙으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합니다.

고목밑둥에는 오래된 철못이 삐죽 나와있습니다. 이끼는 그 철못도 감싸며 올라가고 있습니다. 기어이 저 철못도 흙으로 만들려는 계획인가 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냥 그렇개 두면, 언젠가는 이기의 바람대로 될 것을 말입니다.

'철못도 마침내 흙으로 바꿔놓고 말겠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냥 이끼의 삶대로 살아갈 뿐인데, 그런 미래가 보이는 것인지도요.

이젠 이번 비가 그치고 나면 무덥던 여름에서 완연한 가을로 넘어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습니다. 일기예보가 아니라도 몸이 느낍니다. 이젠, 가을이구나.

덧붙이는 글 |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29일 오후, 서울서 담은 사진입니다.



태그:#폭우, #비이슬, #미국자리공, #이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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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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