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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가 열렸다.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가 열렸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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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조사관이 조사가 완료됐다고 한 건 2010년 1분기였습니다. 하지만 조사관이 2번 교체되는 등 지연 끝에 2013년 2월에야 의결이 이뤄졌지요. 만약 공정위 의결이 2010년에 신속하게 이뤄졌더라면 상당수 대리점들이 파산 등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염유섭 국순당 대리점협의회 대표)

생수, 커튼, 주류, 과자. 직종은 제각각이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인상은 같았다. '을'의 처지에서 공정위에 불공정 사건을 신고한 네 남자는 하나 같이 일 처리 속도가 느리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국민본부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정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고 갑-을관계 관리 주역으로 떠오른 공정위의 역할을 재논의했다. 공정한 경제환경을 조성하고 경제검찰 역할을 해야 하는 공정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해결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갑-을 관계 3법'으로 불리는 가맹사업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불공정사건 조사권과 고발요청권, 분쟁조정권을 광역지자체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발제를 맡은 김남근 경제민주화국민본부 집행위원장은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공정위 권한을 분산시키고 경쟁적인 행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늑장 의결에 '을'들 재기 기회 놓쳐"

이날 사례발표자로 나선 '을'들은 자신들이 공정위에 불공정 사건을 신고한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시기별로 소상히 설명했다. 염유섭 대표는 공정위가 지난 2010년 초 국순당의 내부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행위를 확인했으면서 만 3년이 지난 올해 초에야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 원 부과를 의결했다고 주장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과징금 규모인 1억 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염 대표의 주장이다. 염 대표는 "신고 대리점의 매출 추이를 바탕으로 피해 매출액 산정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공정위는 이 사건을 '관련 매출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법상 위법행위이지만 관련 매출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위반행위의 중대성에 따라 공정위가 1억 원에서 3억원 사이의 과징금을 부과하게 된다. 그는 "공정위는 이 사건 위반행위를 '중대한 위반행위'로 판단했으면서도 가장 낮은 수준인 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고 강조했다.

염 대표는 "속전속결로 처리된 남양유업 대리점 사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관련 매출액을 산정해 12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그것과 비교해 생각해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늦게나마 의결이 나고 제재가 된 국순당 사례는 나은 편이었다. 중소 생수 제조업체인 '마메든샘물'의 김용태 사장은 대형 생수회사인 석수&퓨리스(현 하이트진료음료)가 자사 대리점에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생수를 납품하며 영업을 방해하자 관련 증거를 갖춰 지난 2010년 12월 부당염매 행위로 공정위에 신고를 넣었다.

그러나 김 사장을 담당하는 공정위 담당부서 팀장의 태도는 삐딱했다. 김 사장은 "팀장이 '이런 문제는 객관적 판단보다는 (공정위의) 주관적 판단 사항'이라며 '이런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하는 일'이라면서 결국 무혐의로 심의절차를 종료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2년 공정위에 재차 신고를 넣었다.

이 건에 대한 의결은 올해 7월에야 났다. 김 사장은 "공정위는 석수&퓨리스에 대해 부당염매가 아닌 '사업활동방해'로 시정명령을 내리는 데 그쳤다"면서 "심의 의결서를 보면 석수&퓨리스가 원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 조건으로 상당 기간 우리 대리점에 생수를 공급했다는 자료를 인용하면서도 부당염매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부당염매란 1주일 이상 제조원가나 매입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경우 인정된다. 김 사장은 "3년이 넘게 이어진 부당염매로 이미 회사는 파산 상태"라면서 "뒤늦은 시정명령 의결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소진 시켜 버린 셈"이라고 꼬집었다.

"공정위 조사권·고발요청권·조정권, 광역지자체에 분산시켜야"

사례발표회 후에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공정위의 권한을 분산 시켜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공정위 직원이 500명 가량인데 조사 임무를 맡는 직원은 그중에서도 일부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한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에 사업체가 300만~400만 개 있는데 세종시에 있는 공정위 공무원 500여 명과 전국 5군데에 흩어져 있는 지역사무소 공무원이 이를 사전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임무"라면서 "공정위 조사권, 고발요청권, 조정권을 17개 광역지자체에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이같은 내용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배제의 확대 강화, 사인의 금지청구제 등을 담은 법안을 이미 발의한 상태다.

김남근 집행위원장은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을 비중있게 거론했다. 사인의 금지청구제란 피해를 입은 소비자나 기업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바로 불공정거래행위를 중단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출할 수 있게끔 하는 법제도를 말한다.

강지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역시 사인의 금지청구제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위 의결이 오래 걸리는 상황에서 법원에 금지청구를 할 수 있다면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고 실질적으로 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지적들에 대해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장은 "사인의 금지청구제와 집단소송제는 정부에서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머지 의견들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 국장은 "공정거래법상 위법행위는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해서 바로 위법이 되는 게 아니라 해석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해석을 지자체에서 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 권한을 광역지자체에 분산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공정위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지나친 제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며 받아쳤다. 갑과 을 양쪽에서 과징금 액수에 대한 불만이 나와야 균형 있는 수준이라는 논리다. 그는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추세상 과징금은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날 신 국장은 토론회 후 청중 질문에서 다른 불공정 사건과는 달리 남양유업 건이 의결도 빠르고 과징금도 123억이나 부과됐던 이유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남양유업 사건의 경우 5월에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지만 공정위에서는 2월부터 현장조사를 들어가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집행이 빨리 되었던 것"이라면서 "공정위 조사에 정치적인 논리가 작용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태그:#공정거래위원회, #갑을관계, #민병두, #공정위, #사인 금지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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