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보, 밭에 갔다 올게요."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바로 코앞에 메모가 적혀 있다. 가끔 남편 혼자 이른 아침에 밭에 나가곤 하는데 오늘도 그렇다. 일주일 내내 직장 다니느라 바쁘고 주말엔 주말대로 이일 저 일로 바빠 밭에 나가 볼 틈이 없을 때가 많아 가끔 새벽에 가곤 한다.

요 며칠 상추를 식탁에 올리지 못해 뭔가 허전해서 어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추가 먹고 싶네요. 요즘은 상추가 없으면 영 허전해요.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상추를 좋아했지? 이상하게 우리 상추는 고소하고 맛있어요. 사 먹는 상추에서는 맛보지 못한 맛이거든요" 하고 말했더니 아침 일찍 밭에 가보겠다더니 결국 혼자 밭에 간 모양이었다.

작은 수확이 감사하다...
▲ ... 작은 수확이 감사하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몇 분 지나지 않아 남편은 돌아왔다. 봉지 가득 밭에서 수확한 걸 들고서. 짧지만 며칠 동안 상추도 좀 자라고 호박도 고추도 많이 열렸다고 자랑하면서 내 손에 안겨주었다. 제법 알이 굵어진 호박 한 덩이와 풋고추랑 상추랑 깻잎이랑은 몇 끼는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제법 알이 굵어진 호박 한 덩이와 풋고추랑 상추랑 깻잎이랑은 몇 끼는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출근도 해야 하고 수확도 해야 하는 아침 시간, 마음이 바빴는지 상추를 한 잎 한 잎 정성스레 딴 것이 아니라 손 가는 대로 후드득 손으로 훑다시피 했나보다. 그래선지 제 모양을 잃은 것이 많았지만 그럼 대수랴. 깨끗이 씻어 막장과 함께 식탁에 올리니 간만에 맛보는 우리가 가꾼 상추 맛 고추 맛이 고소하기 그지없었다.

상추와 고추가 이렇게 고소하다는 것을 요즘 직접 재배해 먹으면서 실감한다. 그동안 사먹었던 상추들이 이토록 맛있지는 않았다. 그동안 여러 번 채소를 수확했고 많이 나눠도 먹었지만 지금도 밭은 상추도 고추도 깻잎도 호박도 소박하지만 내어주니 고맙기 이를 데가 없었다.

호박도 달렸어요...
▲ ... 호박도 달렸어요...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방울토마토...빨갛게 익었어요...
▲ ... 방울토마토...빨갛게 익었어요...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며칠 뒤에는 나도 함께 텃밭에 나갔다. 거의 두 달 동안 고장 난 자전거를(너무 더워서 나가지 못하고) 방치해 두다가 오전에 자전거포에 나가 타이어 빵구를 떼우고 왔기에 간만에 두 자전거가 나란히 밭으로 향했다. 이제 상추는 끝물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 채소들은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물 조리개에 물을 담아 뿌리니 간만에 만난 물에 춤을 추며 좋아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끝물(?) 상추 잎은 작디작았지만 그게 어딘가. 되는 대로 상추 잎을 따고 고추를 따고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 빨갛게 익은 달디 단 방울토마토를 땄다.

이것저것 조금씩 심다보니 남편은 조금 더 크게 만들고 싶나보다. "밭을 더 확장 해야겠어요" 하고 말했다. 내일 아침에 와서 좀 더 넓혀 놓겠단다. 조금씩 땅을 넓혀가면서 텃밭을 확장해가는 즐거움도 있고 작지만 심은 대로 아니 심은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돌려주는 땅이 고맙고 감사하다. 엊그제 마트에서 사다 먹은 단호박 씨를 말려서 밭에 뿌린 것도 어느새 잎을 틔우고 있는 것을 보는 기쁨도 컸다. 땅은 죽은 것 같은 씨앗을 살려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었다. 땅은 신비요 땅은 기적이었다.

단호박씨를 심었더니...이렇게...
▲ ... 단호박씨를 심었더니...이렇게...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땅이, 텃밭이야말로 화수분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사는 요즘이다. 땅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할 뿐 아니라 심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더 풍성하게 넘치도록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텃밭을 가꾸며 삶의 지혜 믿음의 지혜 통찰을 얻는다. 어설픈 농사꾼(제대로 농사도 못하는)의 텃밭 가꾸기.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를 배우게 하시고 일깨워주신다. 작은 텃밭에서 감사할 일이 풍성하다. 텃밭이 화수분이다.


태그:#텃밭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