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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짜증이 난다.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원이야기다. 젊음의 상징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말이다. 지난해 6월 시작된 공사 일정은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다. 덕분에 공원의 문은 1년 넘게 굳게 닫혀 있다.

공원개방을 일주일 앞둔 마로니에 공원의 모습
 공원개방을 일주일 앞둔 마로니에 공원의 모습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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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마로니에 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불편하다. 나 역시 '이제는 됐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다섯 번쯤 마로니에 공원을 찾았다. 하지만 나를 맞는 것은 굳게 닫힌 채 공연포스터가 붙여진 철제문이다.

홍대에 클럽이 있다면 대학로는 각종 공연장과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 캠퍼스로 옮긴 뒤 그 자리는 공원이 됐다. 캠퍼스에 마로니에 나무가 세 그루 있던 것을 유래로 '마로니에 공원'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밀집해 있는 대극장과 소극장등의 문화시설과 더불어 공원 내에는 아마추어 가수들의 신선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야외무대가 있다. 또 골목 여기저기서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 화가 등 예술 문화계 인사들이 많을 뿐 아니라 매년 가을이면 화사하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 사이를 걷는 것도 제법 운치 있었다.

뿐만 아니다. 공원 뒷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벽화마을이 있다. 골목길 낮은 집들의 담장에 그려진 벽화를 보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그곳을 오르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근린공원이 많은 강남에 비교해 강북에는 공원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빠듯한 일상 속 나무그늘 아래 휴식할 수 있는 공원에 목마르다. 마로니에 공원은 가족들과의 외식 후 산책코스이기도, 또 약속을 잡거나 연극공연을 관람한 후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활기가 느껴져서 더 좋았다.

이런 대학로의 상징인 마로니에 공원이 36년 만에 새 단장을 시작한 것이다. 49억 원의 예산이 편성된 이 사업은 기존 마로니에공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대학로 문화지구 특성에 맞는 도시공원으로 재조성코자 공원 내 반 지하 공연장 건립과 시설 재정비 등을 하는 공사다. 이번 공사는 애초 지난해 완공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늦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었다. 옛 한양 도성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공원 지하에서 조선시대 유물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이 정밀 발굴에 들어갔으며 실제로 내가 본 공원 공사의 목적은 '유물발굴작업'이기도 했다.

종로구청과 문화재청은 지난 6월 말부터 12개 지점에서 시굴조사를 벌여 가로 20㎝, 세로 30㎝ 크기의 석재(石材·건축을 위해 사람이 인위적으로 다듬은 돌)와 조선시대 백자, 기와, 분청사기 등을 발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작년 말까지 개방하려던 공사 일정이 늦어진 것은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원개방 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유력인사의 민원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한 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지역 주민인 전 총리가 공원 바닥을 대리석으로 덮는 것은 친환경적이지 않다며 문제를 삼았다고 한다. 때문에 공원 개방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을 하던 공사는 한 달이 넘게 중단됐다는 것이다.

공사가 중단된 듯한 모습의 마로니에공원
 공사가 중단된 듯한 모습의 마로니에공원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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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과의 약속은 쉽게 무시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유력인사의 민원전화 한통으로 몇 개월이나 개방이 연기될 만큼 서울시 공사 관계자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의문이다. 축제의 달인 5월에 맞춰 개방을 알린 서울시는 3개월이 지나도록 공원의 문을 굳게 닫고 있다. 개방을 기대한 시민 중 한 사람으로 사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담장을 허물어 공간을 대폭 확대하고 관람객을 위한 공중화장실은 호텔 급으로 확충하며, 지상의 장애 시설물인 통신·한전 박스를 지하에 배치하며, 또 150석 규모의 기존 야외공연장을 계단이 없는 250석 규모의 노천 형태 공연장으로 변경, 장애인과 노약자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고, 안내소(98.14㎡) 설치와 디지털 공연정보 안내 기능, 지하 2층의 300석 규모의 다목적 홀과 토론하면서 쉴 수 있는 북카페 등, 서울시는 화려한 공사 계획을 내걸었다. 하지만 과연 언제쯤 공사가 끝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8월 말 완공을 밝혔지만 가봐야 알 일이다. 시민들은 기다린다.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공연이나 콘서트 연극을 보기 위해 혹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가족들과 나들이를 위해 대학로를 찾은 시민들이 그늘진 벤치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속히 마련될 수 있기를. 마로니에 공원만이 풍길 수 있는 건강한 낭만을 지닌 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위 블로그 '별별이야기'에도 게재 됐습니다 <오마이 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로니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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