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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장식이 인상적인 람세스역
 천장 장식이 인상적인 람세스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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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대명사 피라미드를 보고 난 후에도 이집트에 대한 호기심만은 식을 줄을 몰랐다. 카이로의 남쪽으로 900km, 밤을 꼬박 새워 달리는 기차로 12시간이 걸리는 사막 한 가운데의 도시 아스완은 여행자로서 갈 수 있는 이집트의 최남단에 위치해 더욱더 기대감이 커졌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내가 아는 글씨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람세스 기차역. 이집트는 숫자마저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고유의 숫자를 써서 더 힘들었다. 역 안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글자는 'Sleeping train(침대칸)' 뿐. 60달러라는 돈이 아까워서 침대칸이 아닌 일반석을 사러 갔던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창구직원과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침대칸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지하철 요금이 200원인 나라에서 기차 값이 60달러라는 것이 좀 아이러니 했는데 알고 보니 침대칸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판매된단다.

이집트 야간열차의 침대칸
 이집트 야간열차의 침대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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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도 불볕 아래의 아스완 거리시장
 45도 불볕 아래의 아스완 거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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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시간에 앞서 기자역(Giza Station) 에 도착했는데 기차역의 모습은 더 가관이었다. 기차역이라기보다는 어느 슬럼가의 뒷골목을 닮아 있는 승차장은 온갖 살림살이를 싸 들고 봇짐을 베개 삼아 벽을 따라 누워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피난민 같기도 했다. 세 대의 기차가 눈앞을 지나치고 드디어 침대칸이 딸린 열차가 들어서자 방문을 여는 손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혹시나 바퀴벌레가 득실한 곳은 아닐까.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의외로 깔끔한 세면대와 2층 침대로 이루어진 침대칸은 좁긴 했지만, 딱히 불쾌함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사막의 어둠을 뚫고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집트의 주식이라는 쿠사리, 그 맛은…

각종 야채와 면, 토마토를 섞어 만든 이집트의 대표음식 쿠사리
 각종 야채와 면, 토마토를 섞어 만든 이집트의 대표음식 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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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가 조금 지나 도착한 아스완의 날씨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40도에 육박하는 기온과 이상하게 습하지 않은 날씨는 기차에서 빠져 나온 지 5분도 채 안된 나를 지치게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스완의 중심가는 걸어서 10분이면 다 돌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고 나는 이름만 호텔이지만, 어쨌든 에어컨 하나는 제대로 동작하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내일 새벽에 일찍 출발하는 아부심벨 행 투어를 예약한 뒤 마을을 둘러볼 겸 숙소를 나서니 바로 앞에 아스완의 거리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여행객이 관심을 가질만한 특산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곳들이 길게 나열돼 있는데 혹시나 아스완의 시장을 방문하게 된다면 한가지 만 기억하자. 뭐든지 20EGP 이하로 사야 한다(1EGP 는 약 200원).

더운 날씨에 조금이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거리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집트에서는 단 한순간도 여행자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쉬지 않고 달려드는 각종 호객꾼들에 금방 지쳐버린 나는 발길을 돌려 강가로 향했다.

카이로에서 900km 떨어진 아스완까지도 이어진 나일강
 카이로에서 900km 떨어진 아스완까지도 이어진 나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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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한 가운데서 유일하게 숨통을 트여주는 나일강이지만, 강가로 오니 펠루카라는 돛단배를 권유하는 호객꾼들이 다가온다. 호기심에라도 펠루카를 탈 생각이 아니라면 애초에 가격을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지갑을 꺼낼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빌리자면 처음에 협의한 가격에 배를 타더라도 사공이 원하는 만큼 돈을 지불하기 전에는 내리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뜨거운 날씨와 끈질긴 거리 상인들의 구애에 지친 나는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서라면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겠지 하고. 역시나 오로지 이집트 글자와 숫자로 쓰인 메뉴판에 당황한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을 외쳤다.

"쿠사리, 플리즈"

한국의 산채비빔밥 같은 느낌이 나는 쿠사리는 콩과 콘, 각종 고기와 파스타면에 토마토를 버무린 음식으로 이집트인들의 주식 중에 하나다. 썩 좋아 보이는 생김새는 아니었지만, 콩의 고소함과 토마토의 상큼한 맛이 어우러진 쿠사리는 제법 맛이 있었다. 사막에서 발견한 한 줄기 희망이었다고나 할까.

위대한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 - 아부심벨

새벽 2시 출발을 기다리는 아부심벨 행 투어차량들
 새벽 2시 출발을 기다리는 아부심벨 행 투어차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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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 대신전
 아부심벨 대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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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사막 마을인 아스완의 새벽은 언제나 여행객을 가득 태운 차량의 엔진소리로 부산스럽다. 새벽 두시, 비몽사몽 중에 오른 봉고차는 어디론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고 이집트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인 아스완에서도 3시간을 넘게 사막을 달리고서야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카이로에서부터 순수 이동시간만 16시간이 걸려서야 모습을 드러낸 아부심벨을 그 간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신비롭고 위대했다. 이집트 여행은 아스완을 보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다.

입장권을 끊고 유적지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우뚝 솟아있는 정체불명의 사암 언덕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나일강을 따라 난 길을 돌아서면 드디어 눈앞에 펼쳐지는 엄청난 높의 거대 좌상들. 처음 아부심벨을 바라 본 관광객들의 입에서는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와 묘한 메아리를 만든다.

람세스 2세와 왕비의 모습
 람세스 2세와 왕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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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은 이집트 19왕종의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가 만든 신전으로 정면에 보이는 4개의 좌상은 모두 람세스 2세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각각 상, 하 이집트를 의미하는 의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왼쪽 두 번째의 좌상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지만 그 떨어져 내린 몸체가 바로 아래에 보존되어 있는 것도 아부심벨의 묘미다.

람세스 2세, 그는 얼마나 위대한 왕이었기에 스스로 이토록 위대한 석상을 남기고자 했을까. 가까이서 바라본 람세스의 좌성 좌우로는 여자의 모습이 조각 되어 있는데 바로 왕비의 모습이고 그 가운데에 대신전으로 가는 입구가 있다. 그 엄청난 규모와 섬세함은 겉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지경이지만 아부심벨이 특별한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해마다 범람해서 피해를 주는 나일강 때문에 아스완 인근에 댐을 만들었는데 댐에서 물이 방류되자 아부심벨 신전이 수몰될 위기에 처한 것. 다행히도 유네스코가 직접 개입해 이 엄청난 아부심벨 신전 전체를 강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상류로 통째로 이전 시켰다는 것. 유네스코에 진 빚 때문에 입장료가 비싸졌다고는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아부심벨을 보고 감탄할 수 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아부심벨 대신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아부심벨 대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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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대신전 내부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지만 아부심벨의 진짜 놀라움은 대신전 내부에 있다. 대신전 좌우의 벽에는 람세스 2세가 적을 쳐부수고 상 하 이집트를 통일하기까지의 승리과정을 세세하게 조각해 놓은 벽화들로 가득한데 그 끝에는 고대 이집트의 종교의식에 등장하는 4개의 신상, 라호라크티, 아몬레, 람세스, 프타하가 있다.

이 신상은 빛이 들지 않는 신전 내부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어 항상 어둠 속에 있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그 빛이 이 신상의 전신을 비추어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희한하게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암흑의 신 프타하만은 이때도 빛이 닿지 않아 여전히 어둠속에 있다. 이것이 새벽 2시에 출발해서 일출시간에 아부심벨에 도착하는 이유다. 비록 관광객들이 많아 제대로 확인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믿기 힘든 이 이야기는 직접 눈으로 보고도 좀처럼 실감이 오지 않을 만큼 신비로웠다.

수천 년 전의 이집트인 들은 이 거대한 건물을 조각하면서도 태양의 방향과 각도, 시간 등을 계산해서 암흑의 신에게는 태양광이 닿지 않도록 치밀하게 작업을 했다는 얘기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놀라운 발상과 기술에 놀라는 한편 이렇게 엄청난 기술을 가졌던 이집트인들의 후손들의 태반은 저속한 사기꾼의 오명을 쓰고 살아가고 있으니 '죽은자가 산자를 먹여 살리는 나라' 라는 말에는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뼈가 있다.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상·하 이집트를 통일했던 위대한 람세스 2세는 자기 아내에 대한 사랑도 깊었던 모양이다. 대신전의 옆에 위치한 아부심벨 소신 전에는 규모는 1/4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람세스 2세 본인과 그의 왕비를 번갈아 조각해 놓은 6개의 석상이 만들어져있다. 대신전에 받은 충격과 놀라움 때문인지 대충 보게 되는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소신전 내부의 각 기둥에는 왕과 왕비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그토록 오래전 세상을 다 가졌던 위대한 왕이 부부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남겼다는 것도 참 재미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아부심벨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이 떠올랐다. 그 역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만리장성, 아방궁 등을 남겼지만 희대의 폭군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람세스 2세는? 람세스 2세는 이집트인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 위대한 왕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즐기기 위해 아방궁을 지은 진시황과 달리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조각하고 이를 신전으로 남겨 백성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했던 람세스 2세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부심벨 소신전
 아부심벨 소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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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여행 정보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는 평균 12시간 정도가 걸려 대부분의 여행자는 야간열차를 탄다. 2층 침대가 있는 침대칸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판매되는 좌석으로 쾌적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일반 좌석인 1등석 구매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아스완은 오로지 아부심벨을 가기위해서 들리는 마을이다. 새벽 2시에 출발하는 아부심벨 투어는 모든 숙소에서 예약가능하면 크게 긴(long) 투어와 짧은(short) 투어로 나뉜다.

Long tour : 아부심벨, 필레신전, 아스완댐, 미완성 오벨리스크,
Short tour : 아부심벨

투어라고는 하지만 차량만 제공되며 숙소에서 간단한 점심 도시락을 싸준다. 각격은 롱 투어 85EGP, 숏 투어 65EGP 이며 각 유적지의 입장료는 제외다.

아래는 각 유적지의 입장료(2012년 9월기준)

아부심벨: 90EGP
필레신전 : 70EGP
아스완댐 : 20EGP
미완성 오벨리스크 : 60EGP

롱 투어의 경우 들리는 곳은 많지만 아부심벨 외에는 큰 흥미를 느끼기 힘들다.


태그:#아부심벨, #아스완, #람세스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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