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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강화도에서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오기만" 47기 수강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연호기 기자만들기 47기 인천시 강화도에서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오기만" 47기 수강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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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참이 지났지만, 야권의 승리를 간절하게 염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2012년 두 선거의 기억은 아물지 않은 상처다. 지난 대선, 야권은 2040이라는 거대한 세대담론에 편승했다. 인구의 핵심축인 40대에서 크게 승리하고 50대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다면 필승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였을 것이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는 다른 내용을 보여준다. 30대 투표자의 33.1%가 박근혜를 찍었을 때, 0.6% 더 많은 33.7%의 20대가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노인들이 물러나면 앞으론 이길 수 있어'라는 세대담론의 희망을 처참히 짓밟는 이 대불행의 씨앗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를 열망하는 야권 지지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20대는 상대적으로 보수화되었을까? 인천시 강화군에서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7기>에서 만난 한 20대 대학생은 자신을 조심스레 보수적인 색채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유를 묻자 그는 "정치구도를 지배하는 진영논리와 선악구조에 의문점이 든다"고 밝혔다.

이 20대 대학생은 "집단최면"과 "무형의 적"이라는 표현도 즐겨 썼다. 진보적인 언론매체의 사람들과 그 지지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만 접촉하다 보니 생각의 굳어진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그의 핵심 논리였다. 이번 대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이 박근혜 당시 후보를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라고 몰아붙였듯이 그는 진영논리에서 파생되는 선악구도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진보진영이 교조적이라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국정원 사건이 선거개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고 조·중·동의 언론권력이 자본권력과의 결탁에서 비롯된다고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굳건한 양비론과 두 진영에 대한 불신은 그의 언어를 지배하는 키워드다.

그의 이론적인 보수 색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가장 잘 들어난다.

"이상주의라고도 볼 수 있지만 경제논리 안에서 언론의 목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언론은 많은 독자를 위해 즐거운 정보를 생산하는 게 일차적 목적 아닌가요?"

하지만 그는 "정의의 기준에 대한 혼란"과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온다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확실히 정의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그의 언어에서 느껴지는 경쟁의 절대 선에 대한 믿음과 소위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한 얕은 냉소가 엷게 베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87년 6월 항쟁을 겪은 40대와, 대학생 시절 노무현의 당선과 촛불집회를 보며 정치적 담론을 체화했던 30대와는 다르게 20대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필자를 포함하는 그 밑의 세대와 20대는 우석훈 박사가 말한 '신자유주의 베틀로얄'의 세대이다. 경쟁이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연대를 외치고 집회에 나가 구호를 외치는 일은 너무나도 낯간지럽고 어색한 일이다. 조지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자신이 노동자 계급을 적극적으로 혐오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고 고백했듯이, 우리 세대도 경쟁을 극단으로 강조하는 교육체계 아래에서 적극적인 연대를 혐오하는 방법을 흡수했다.

23일 밤 기사쓰기 실습을 퇴고하고 대학생들끼리 둘러앉은 자리에서 스스로를 '노빠'라고 고백했던 친구의 말에서조차 연대에 대한 어딘가 모를 불편함은 조금씩 스며 나왔다. 그 새내기 대학생은 "노동운동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집회는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가 "운동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두가 동의했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우리 모두 답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작곡 공부를 한다고 밝힌 다른 한 명은 본인을 '좌파'라고 밝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한 그도 거친 언어로 한국대학생연합회 등의 대학생 운동단체의 활동 방식을 지적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유치하고 어색해서 못 봐 주겠다"라는 것이 핵심이다. 목이 터져라 확성기에 소리치는 사람들, 여기저기 휘날리는 깃발, 그리고 장렬한 투쟁의 언어들을 우리 세대는 "촌스럽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운동'의 당위에 공감하던 우리들도 '대안이 무엇일까'라는 질문 앞에서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연호의 기자만들기>에 참가한 20대 대학생들의 개인적인 고백은 이런 사회적 맥락 아래에서 일반화된다. 선악구도를 나누는 것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은 연대를 통한 "정의"에 대한 냉소로 이어진다. 그와 우리 세대가 '정의 추구'라는 일반적 선의 가치를 저버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러한 담론의 실천은 고사하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우석훈 박사의 학생들이 외쳤듯이 "우리 세대는 신자유주의 자체"이기 때문에 외롭고, 외로워도 벗어나기가 너무 어렵다.

게다가 문재인을 찍은 나머지 66.3%의 20대는 패배감에 빠져있다. 정치적 냉소에 빠져있다. 노무현의 당선을 지켜보고, 민주화의 기쁨을 만끽한 3040과는 다르게 우리는 승리의 경험이 없다. 아무도 대다수의 20대에게 연대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사회에서, 대다수의 우리들은 다시 "자기만의 짱돌"을 들기보단 토플 책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다시 스스로의 탓을 하게 된다.

"내일은 반드시 온다. 다만 내일은 오늘의 우리들이 만들어 나갈 뿐이다"라는 오연호 대표기자의 말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절대적으로 참인 명제이다.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 하지만 3개월의 시간도 길게 느껴지는 청춘들 중 언제 올지 모르는 동 터 오르는 아침을 보기 위해 새벽이슬을 맞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연대와 승리의 짜릿한 경험을 맛본 선배들의 "교조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20대 대학생들은 원하고 있었다.


태그:#오연호, #20대, #보수화,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2012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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