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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손보경씨는 지난 2월, 평소처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화장품 가게를 찾았다가 이곳과 주변에 설치돼있던 장애인 경사로 4개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중구청은 손씨의 민원 제기에 '도로법상 불법점유물'이라고 했다. 이후 패스트푸드점 앞에는 다시 경사로가 세워졌지만(왼쪽 사진), 다른 3개는 여전히 재설치되지 않았다.
 지체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손보경씨는 지난 2월, 평소처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화장품 가게를 찾았다가 이곳과 주변에 설치돼있던 장애인 경사로 4개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중구청은 손씨의 민원 제기에 '도로법상 불법점유물'이라고 했다. 이후 패스트푸드점 앞에는 다시 경사로가 세워졌지만(왼쪽 사진), 다른 3개는 여전히 재설치되지 않았다.
ⓒ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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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로가 없었다. 지난 2월 손보경(32·대구광역시 달서구)씨는 평소처럼 대구시 중구 동성로 2가의 한 화장품 가게를 찾았다.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한 그는 지체장애 1급으로 전동휠체어를 탄다. 그는 2012년 4월 가게가 문을 열 때부터 그 앞에 설치된 경사로를 이용, 화장품을 사거나 다른 상점에 들리곤 했다. 하지만 이날 경사로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주변 건물들 앞에 있던 경사로 3개도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손씨는 이유를 알아냈다. 중구청이 '경사로가 도로를 불법 점유하고 있으니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휠체어로 이동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손씨는 경사로가 설치된 곳만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처음 화장품 가게가 생길 때부터 경사로가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나도 다닐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외출하면) 대부분 장소에 경사로가 없어요. 경사로가 있다고 해도 너무 가파르거나 턱이 있거나, 폭이 좁기도 하고 벽 쪽으로 나 있어서 이용을 할 수 없고요. 그런 걸 보면 '장난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없으면 마음을 비우는데… 결국 장애인이 배제 당하는 것이잖아요. 자존심이 상하고, 허탈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했죠."

중구청 "경사로는 불법시설, 도로점용료 내지 않으면 철거해야"

손씨는 2월 20일 중구청 홈페이지 민원상담게시판에 '경사로 철거가 부당하다'는 글을 남겼다. 중구청 주민복지과 담당자는 그에게 전화로 "도로점용료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법에 따르면, 경사로가 도로를 점용할 경우 그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였다.

함께 민원을 제기했던 지인에게는 중구청 건설안전과로부터 "도로점용료를 내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동성로) 경사로를 철거했다"며 "민원에 답변을 하면 기존에 있던 경사로를 전부 철거해야 하니, 취하하는 게 어떠냐"는 연락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일단 '개인 사정'을 이유로 민원을 취하했다. 이후 주민복지과 담당자는 손씨에게 "경사로를 철거한 곳이 어디냐, 다시 설치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 앞 경사로 1개가 다시 설치된 것말고는 그대로였다. 3월 12일, 손씨는 다시 중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이번엔 건설안전과에서 전화가 왔다. 구청 공무원은 그에게 "경사로는 불법시설이라 도로점용료를 내거나 아니면 철거를 해야 한다, 이 답변이 나가면 다른 경사로들도 다 치워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중구청 담당자는 또 "철거된 것은 경사로가 아니라 발판"이라 "경사로는 콘크리트길 아니면 리프트 형태로 건물과 연결된 형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장애인 등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유효폭·기울기와 바닥의 재질 및 마감 등을 고려해야 한다'정도로만 명시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규정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 단체, 인권위에 진정... 박원석 의원 도로법 개정 추진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11일 오전 대구인권위 사무실 아페서 기자회견을 갖고 장애인 차별에 대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11일 오전 대구인권위 사무실 아페서 기자회견을 갖고 장애인 차별에 대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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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씨는 장애인단체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대구사람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대구사람센터는 4월 1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중구청의 경사로 철거는 장애인의 접근권과 이동권을 무시한 행동이다, 경사로가 한 개인을 위한 설치물도 아닌데 도로점용료를 내라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정해야 한다"고 진정서를 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경사로 실종사건(?)'은 한 달 전쯤 박원석 정의당 의원에게도 알려졌다. 그는 23일 "장애인 등 편의 증진법에선 제2종 근린생활시설, 판매시설 등의 주요 출입구에 경사로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며 "사업주가 장애인 등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경사로를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철거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경사로 철거는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될 수도 있다"며 "도로법에 경사로 등을 불법점유물로 보지 않고, 점용료를 면제하는 시설로 명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조만간 도로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대구 중구청 "도로에 나와 있는 경사로는 불법"
대구 중구청 건설안전과 관계자는 동성로 경사로 철거는 장애인 차별이라는 주장에 "도로에 나와 있는 경사로는 불법이고 점용료 부과 형평성 문제 등이 있어서 철거하기로 한 것"이라고 23일 반박했다.

또 철거대상이 경사로가 아닌 '발판'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동성로 일대는 도로와 건물 높낮이 차이가 심한 곳이 있어서 사람들 출입이 쉽도록, 경사로가 아니라 발판을 설치했다"며 "이번에 59개소를 철거했는데, 네다섯 개만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경사로'식이고, 나머지는 다 계단식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경사로는 건물 대지 안에 설치해야지 도로 위에는 내놓을 수 없다"며 "장애인단체들이 경사로식 발판이 불법 구조물인 것을 아는데도 억지주장을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장애인 등 편의증진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은 있다"며 "대부분 건물이 (발판을) 재설치했고 일부만 안 했는데, 저희 내부적으로는 장애인 편의를 위해 묵인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경사로가 불법 시설물·도로점용료 부과 대상에 해당하지 않도록 구 조례를 개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럼 필요 없는 곳에도 경사로를 많이 설치하게 돼 관리가 어렵고, 역차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관계자는 "발판이든 콘크리트 길이든 경사로의 형태는 건물마다 맞게 설치하는 것"이라며 "폭이나 매끄럽지 않은 재질, 기울기 등만 법에 맞추면 된다"고 했다. 그도 "경사로가 도로에 나와 있으면 안 되고, 오히려 (보행자에겐) 장애물이 되거나 다칠 수 있다"며 "만약 건물과 도로를 연결하려면 턱을 낮추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태그:#장애인, #장애인 차별금지, #대구 중구, #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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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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