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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댓글사건 당사자인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얼굴 가린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댓글사건 당사자인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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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전(두환) 장군께서 확 밀어버리셨어야 하는디 아따"
"사법부 홍어 씨*럼들 데모쟁이들 다 풀어주고 씨*럼들"
"아따 절라디언들 전부 *져버려야 한당께"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국정원 관련 ID로 지목된 '좌익효수'가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내용의 일부이다. 최근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올라오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재조명되고 국가기념일로 지정된지 1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전두환을 '전 장군'으로 미화하고 학살을 정당화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홍어' '절라디언' 등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단어가 국정원 관련 ID에서 나온 용어라니 차마 믿기조차 어렵다.

(국정원 관련 ID로 지목된 '좌익효수' 댓글이 논란이 되자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좌익효수' ID 사용자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거짓 내용을 유포한 사람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상하기도 국정조사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지난 7월 24일께 '좌익효수'가  디시인사이드에 남겼던 문제가 된 댓글 등 모든 게시물이 삭제됐다). 

관련기사 : '호남-여성 비하' 좌익효수, 게시물 전체 삭제-탈퇴

'홍어'·'절라디언', 댓글 장려?

그런데 더욱 혀를 차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사실을 규명하고 요구해야 할 국정조사에서 오히려 새누리당 국정조사 위원들이 국정원의 댓글 작업을 정당한 대북심리전 일환이라고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국정원 직원임을 눈치 못 채게, 공무원이 댓글을 단다는 생각을 못하게 교묘하게 댓글을 다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특위 간사 권선동 의원의 발언은 대놓고 불법 선거를 부추기는 어이없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국정감사에서 사실 규명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새누리당과 국정원, 경찰의 추악한 커넥션만 확인하는 꼴이 됐다.

23일이면 국정원 국정조사는 끝난다. 핵심인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증인 채택은 무산되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증인 선서조차 하지 않은 채 증인석에 앉아 국정 조사위원들의 질문에 대해 유리한 부분만 골라 답변했다. 세간의 의혹이나 국민의 궁금증에 대한 해소 없어, 보고서 채택조차 기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야당 국조위원들은 3.15 부정선거를 상기하라며 청와대를 방문했지만 이 마져도 가로막히고 말았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3.15 부정선거를 언급한 것은 국민들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대선불복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야당 위원들이 21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낭독하며 대통령의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국정원 개혁, 김무성 권영세 증인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보당 이상규 의원, 민주당 박범계 박남춘 정청래 전해철 김민기 의원.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야당 위원들이 21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낭독하며 대통령의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국정원 개혁, 김무성 권영세 증인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보당 이상규 의원, 민주당 박범계 박남춘 정청래 전해철 김민기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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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통령을 무자비하게 깎아내리고 이렇게 정통성을 부인하는 언동을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본다. 이제는 분명하게 대선에 대해 불복하면 불복한다고 이야기를 하라."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인 7월 15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의 발언을 문제 삼아 대선불복인지 아닌지 분명히 하라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이후 국정조사에서도 여당은 궁지에 물릴 때마다 "대선불복이냐"며 목소리를 높혔다.  야당 국조위원들의 청와대 방문에 대해서도 윤상현 원내수석대표는 "현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민주당은 대선불복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제기되자 야당에게 지속적으로 대선불복의 답변을 요구했던 청와대와 새누리당. 그들이 파행된 국정조사의 끝에 또다시 대선불복 논쟁을 들고 나온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대선불복'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덫에 걸려들 수밖에 악의적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대선불복이냐를 물음에 "예"라고 답변하면 '선거로 당선된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낙인찍기가 가능하고,  반대로 "아니요"라고 답변하는 순간 천막까지 친 투쟁의 정당성은 유린되고, 투쟁세력은 분열할 수밖에 없다.

악의적 프레임 '대선불복'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의 불법적인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은 채 대선불복에 대한 단답형 대답을 강요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복합질문의 오류를 숨긴 교묘한 술책이다. 야당인 민주당에게 '선거를 통한 정통성'이라는 십자가를 눕혀 놓고 밟고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를 요구하는 '십자가 밟기'가 국정조사 기간 내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대선불복의 전제에는 "선거 결과는 신성하고, 투표로 뽑힌 대통령은 정통성이 있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라는 명제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신성시되는 것은 어떠한 불편부당한 행위가 없다는 것이 전제될 때 성립된다. 투표로 뽑힌 대통령에게 정통성이 주어지는 것은 선거가 제대로 구현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국정원이 동원되고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한 정황이 곳곳에 드러난 지난 대선에 대해 정통성 인정을 요구하고 대선불복이면 실토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청와대나 새누리당에게는 없다.

김대업씨는 채널A에 출연해 "2002년 대선 때 병풍사건을 친노 인사와 모의했다"고 밝혀 파물이 일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부 탄생 자체도 무효"라며 목소리를 높혔다. 사실 관계는 법적 분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야 할 사안이지만 10년이 넘은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 만으로도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의 탄생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불과 9개월 전의 사건에 대해 '대선불복' 운운하는 것은 누가보더라도  뻔뻔스러운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과 관련 국정조사를 진행했지만 국민들의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붓고 전두환의 1980년 광주 학살을 미화하고 반지역 정서에 기름을 붓는 댓글이 국정원 관련 ID에서 나왔는데, 이것이 어떻게 정당한 대북심리전 일환일 수 있는지, 선거를 앞두고 한쪽의 후보를 치켜세우고, 또 한쪽의 후보는 근거 없이 폄훼하는 행위가 정당한 행위라면, 앞으로도 선거 때마다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겠다는 것인지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먼저 답해야 한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건 부정선거 자체도 문제였지만, 부정선거를 반성하지 않고 시위 군중들에게 총을 겨눈 정권의 독선과 아집 때문이었다. 대선불복이냐 아니냐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물을 자격이 없다. 또한 이 문제는 야당인 민주당이 대답할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대선불복에 대한 결정은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들이 판단할 몫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국민들의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드러난 사실보다 은폐된 진실이 더 많다는 것이 국정조사를 지켜본 대부분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과거 불법에 대한 진상 규명과 단죄 없는 국정조사의 마무리는 미래에 똑같은 불법을 용인하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묻는다. 앞으로도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반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국정원 관련 ID 댓글을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격려하고 장려할 것인지, 다가올 지자체 선거에서 또다시 국정원과 경찰을 이용할 것인지, 이 대답은 야당이나 국민들에게 대선불복을 묻기 전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먼저 답해야 할 문제다. 대선불복의 판단은 그 대답을 들은 후 국민들이 판단해도 늦지 않다.


태그:#국정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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