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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두 아이의 돌잔치를 했던 집을 떠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시작해 하숙집 작은 이사부터 대학시절 자취집 이사까지 참 많은 이사를 해온 터라 이사가 별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닌 다섯 식구 이사는 처음이라 꽤 고생하며 이사했다. 그래도 말로만 듣던 포장이사를 해 절반의 고생이었지만 유난히도 길었던 올 여름 장마, 그중에서도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던 날의 이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이사는 흔히 말하는 학생이사 수준이었다. 이사 2~3일 전에 박스를 구해놓고 이사 전날 밤새 혼자 짐을 싸서 아침에 1톤 트럭 기사분과 함께 짐을 싣고 새로 이사간 집에서도 길어야 2~3일이면 제자리에 정리가 되는 살림이었다. 친구 한두 명이 와 거들어주면 한결 가뿐한 그런 이사. 그러다 결혼 후 만 4년 반을 채우고 이제 겨우 6개월이 된 막내까지 데리고 해야 하는 이사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위에서 "포장이사 하면 걱정 없다"고 마음놓으라 했지만, 결혼 4년 동안 불어난 식구 수만큼 살림도 늘어나 막막하기만 했다.

폭우 속에서 진행된 이사, 참 힘드네

주차된 차를 빼지 못해 곡예하듯 짐을 내렸다
▲ 사다리차 주차된 차를 빼지 못해 곡예하듯 짐을 내렸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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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사갈 집을 보러 다니고 사다리차로 짐 내리는 걸 자주 본 첫째 까꿍이는 이사라는 걸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 이사할 때 바쁜 엄마와 아빠 대신 자기와 동생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매일 걱정 중이었다. 다행히 친정엄마께서 이사 며칠 전에 올라오셔서 까꿍이의 걱정을 해결해주셨다. 육아에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땅'은 친정이라더니, 친정 엄마 덕분에 아이들도 나도 걱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주위에 포장이사 경험을 들어보니 이사 업체에서 순식간에 포장해서 옮겨주지만, 그래도 이사 전에 어느 정도 정리를 해놓지 않으면 쓰레기까지 다 포장해 가니 대강은 집정리를 하라고 했다. 반면 정리를 한다고 해도 이사가면 또 정리를 해야 하니 그냥 마음 편히 쓰레기까지 싸가서 한꺼번에 정리하라는 조언도 많았다. 때마침 새로 옮긴 회사에서 1박 2일로 워크숍을, 그것도 이사 이틀 전에 가게 된 남편은 자신의 부재가 미안해서 그런지 "이사 전에는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며 "쓰레기도 이사 가서 버리자"고 했다.

돈이 좋다, 순식간에 포장되는 많은 짐들
▲ 포장이사 돈이 좋다, 순식간에 포장되는 많은 짐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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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디 그런가. 4년 넘게 살아온 살림, 아이 셋 줄줄이 낳아가며 정신없이 해온 살림을 아무리 이사 업체라고 해도 장롱 깊숙한 곳까지 다 뒤집어 보여주는 것이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정리된 모습으로 맡기고 싶었다. 이사 이틀 전에 친정엄마가 오시고 거실 서랍장 정리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만 6개월을 채운 막내는 나만 떨어지면 울어댔다. 거실 서랍장 정리하는 데 반나절이 더 걸렸다. 결국 이틀 동안 서랍장·개수대 정리만 겨우 하고 쓰레기까지 포장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이사업체가 도착을 하고 우려하던 비는 쉬지 않고 쏟아져 심난한 이사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사하는 동안 외할머니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자전거도 탈 거라며 잔뜩 기대했던 아이들도 쏟아지는 비에 시무룩해졌다. 아파트 계단에 자리를 펴고 앉아 아침으로 김밥을 먹으며 노는 것도 잠시, 좁은 계단은 위험하고 덥고 습했다. 그냥 우산 쓰고 놀러 나가자는 까꿍이의 제안으로 외할머니와 아이들은 밖으로 나갔고 다행히 비를 피할 수 있는 아파트 입구에서 오전을 보냈다.

그 사이 남편과 나는 짐싸는 걸 지켜보며 부동산과 은행을 오가며 일처리를 하고, 수시로 아이들에게 들러 간식을 먹이고 막내 젖을 물렸다. 그러는 동안 비는 점점 굵어져 이사 업체 직원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비에 젖은 채 짐을 옮기고 계셨다. 아무리 대가를 치르고 하루 고용한 이사업체지만 너무나 미안했다. 비가 온다고 뒤로 미룰 수 없는 이사, 우리가 나가야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고, 우리가 새 집으로 가서 전세금을 줘야 이사갈 집의 세입자가 다른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미노' 같은 이사는 폭우 속에서도 진행돼야만 했다.

"막상 떠나려니 서운... 정 들었나봐"

폭우에 아파트 계단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
▲ 짐 싸는 동안 폭우에 아파트 계단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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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에 시작한 이사. 예상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어진 오후 1시가 가까워서야 새 집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점심값을 드리고 이삿짐 차가 출발하는 걸 본 뒤 빗속에서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낸 친정 엄마와 아이들을 싣고 우리도 출발했다. 남편이 새로 옮긴 회사가 하필이면 서울의 동쪽 끝에 있어 서울의 서쪽 끝인 지금의 집에서는 출퇴근이 힘들어 하게 된 이사였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분으로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우리만의 대이동을 시작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카시트에서 모두 잠이 들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비로소 쾌적한 환경에 한숨 돌리게 됐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세지는 빗줄기를 뚫고 동쪽으로 이동을 하며 남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드디어 가네. 당신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오류동 탈출이네."
"전셋집이라 우리집이라는 생각 없이 그냥 조금만 살다 이사 가야지 했는데 어쩌다보니 4년 반 넘게 살았네. 막상 떠나려니 서운하네….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나봐."
"그럼…. 이 집에서 우리 결혼하고 애낳고, 그것도 둘이나 이 집 안방에서 낳았는데…."
"그러게…. 우리집 1막이 막을 내리고 2막이 시작되나 보다."

짐을 내리는 동안 아파트 평상에서 김밥을 먹으며.
▲ 새로 이사 온 동네 짐을 내리는 동안 아파트 평상에서 김밥을 먹으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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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원도, 도서관도, 체육관도 없이, 낡은 유흥가 골목이 아직도 남아있는 오류동을 무척 싫어했다. 까꿍이 출산 전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는데,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걸어서 갈 수 있는 편의시설·문화시설이 절실했다. 아이가 셋이 되고 보니 셋 데리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고(아이 셋 자리에 앉히기도 전에 출발하는 버스, 애 하나 업고 양손에 하나씩 손잡고 서 있어도 좀처럼 앉을 자리 없는 지하철…), 남편 없이 혼자서 매번 카시트에 애들 셋을 태우고 운전하면서 다니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일 집과 놀이터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다행히 새로 이사가는 동네는 걸어서 이 모든 게 가능한 곳이다.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막상 떠나려니 서운했다. 비록 전세살이였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은 '우리집'이었는데, 우리 가족들의 역사가 새겨진 집이었는데…. 조산원에서 낳은 첫째와 집에서 낳은 둘째와 셋째. 집에서 치른 첫째와 둘째 돌잔치. 셋째 돌잔치는 새 집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신혼 시절 남편의 손을 잡고 아파트 입구까지 출근 배웅하던 봄날의 아침, 첫째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운동한다며 남편과 함께 올랐던 늦가을 동네 뒷산, 50일도 채 되지 않은 첫째를 안고 베란다에서 초초한 마음으로 내려다 보던 폭설이 쏟아지던 날 남편의 새벽 출근길, 조촐하지만 정성을 다해 집에서 차려 드렸던 시어머님 회갑상, 까꿍이가 처음으로 탔던 아파트 놀이터의 미끄럼틀, 아파트 이웃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소소한 수다들, 서쪽으로 난 뒷 발코니에서 바라보던 그림 같던 해질녘 풍경, 육아에 지쳐 아이들이 깨는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워 새벽까지 혼자 울었던 공부방 그리고 두 아이를 낳았던 안방 등등….    

네모 반듯한 새 동네... 그리운 게 한둘 아니네

키큰 나무 그늘, 오래된 이웃들의 그늘
▲ 그리운 키큰 나무 그늘, 오래된 이웃들의 그늘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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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그동안 참 많은 추억이 쌓인 집, 두 식구에서 출발해 다섯으로 떠나게 된 집이다. 태어나 유년을 보낸 곳이 고향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동네 친구가 있었던 다섯 살 까꿍이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오류동 집. 내가 태어나 자란 경남 산청의 친정집이 아직도 그 자리 예전 모습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오류동 집을 떠나는 길에서 무척 고마워졌다. 아빠가 떠나신 후에도 꿋꿋하게 마당 넓은 큰 집을 지켜주시는 친정 엄마께 말로 다 못할 감사함이 우러나왔다. 내가 놀던 유년의 풍경 속에서 어릴 적 나처럼 노는 내 아이들들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이고 축복인지. 아이들이 오류동 집을 얼마나 기억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기억 한 조각을 두고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해졌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30년 넘은 낡은 집이 지겹지 않냐는 주인공의 물음에 엄마는 "집이 30년은 돼야 그게 집이지"라는 삶의 지혜를 던진다. 새로 이사 가는 집도 계약기간 2년인 전세살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전세기간을 따라 떠도는 생활이 계속될 것이다. '오래오래 정 붙이며 같이 자라고 늙어갈 우리집이 없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여러 동네의 풍경을 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농담처럼 남편은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가니, 다음에는 북쪽 끝으로 가보자 한다. 그러나 이사의 수고로움과 이사비용을 생각하면 최소한 4년씩은 살면 좋겠다. 아, 전세금만 껑충 뛰지 않는다면.

폭우를 뚫고 새 집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 개인 오후가 됐다. 사다리차를 쓸 수 없는 각도의 층수라 엘리베이터로 짐을 하나씩 옮겨야 했다. 오전에는 비 때문에, 오후에는 사다리차 때문에 이사 시간은 더 늘어났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이사업체 직원들은 해지기 전에 이사를 마무리해주셨다. 많은 부분 다시 정리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살 수 있게 정리가 돼 있었다. 남편과 나는 역시 돈이 좋은 거라며 적지 않은 이사 비용을 치르고 중국집에서 저녁을 시켜 먹으며 고단한 이삿날을 마무리했다.

새 동네 짜장면 맛 좀 볼까?
▲ 이사의 끝 새 동네 짜장면 맛 좀 볼까?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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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동쪽 끝으로 이사온 지 어느새 한 달이 다 돼 간다. 아직도 이사 때 순서가 바뀌어 꽂힌 책방 정리를 시작도 못했지만 구로구민에서 강동구민이 돼 잘 지내고 있다. 환경이 바뀌면 아이들에 따라 스트레스를 꽤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아직 기관에 다니지 않는 우리집 아이에게 별다른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 동네보다 늘어난 놀이터와 조금 넓어진 집에 신이나 즐겁게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한 달 동안 살아보니 새 동네의 '2% 부족함'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전 동네는 일제 강점기 시대 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동네다. 크진 않지만 재래시장도 있고 작은 골목골목 마을의 역사가 내려오는 곳이었다. 반면 새 동네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들어선, 6000여 세대가 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보니 재래시장·오래된 가게·마을이 없다.

당연히 길거리에 나와 앉아 한 소쿠리씩 파는 할머니들의 야채도 없고, 뻥튀기 아저씨도 없다.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철물점도, 나도 모르는 내 남편의 허리 치수까지 알고 있는 솜씨 좋은 아줌마의 옷수선집도, 세 사이의 임신 출산을 모두 지켜보며 안부를 건네주던 인심 좋은 작은 마트도 없다. 언제 오토바이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좁은 골목의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으로 세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힘겹게 다닐 때면 반듯하게 정리된 엘리베이터 있는 큰 상가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골목이라곤 없는 네모 반듯한 동네에 살아보니 차와 사람이 뒤엉켜 다니던 좁은 골목시장이 슬며시 그립다.

걱정과 달리 이사 첫날 아이들은 적응 완료
▲ 적응완료 걱정과 달리 이사 첫날 아이들은 적응 완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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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도, 상가도 길어야 4년 밖에 되지 않은 동네. 골목길이, 오래된 나무가 없는 동네. 마치 졸업생을 아직 한 번도 배출하지 않은, 선배가 없는 학교를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 더 살다보면 다시 이웃이 생기고, 아이들 친구도 생기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단골 가게들도 생기겠지. 지금은 키 작은 나무들이지만 아이들처럼 쑥쑥 자라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들도 되겠지.

그러나 새 동네 특성상 이미 만들어진 마을공동체에 엉덩이 밀고 들어가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자리를 만들어 친구를, 이웃을, 마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사회생활 7년 만에 비로소 전공을 살려 이직을 한 남편이 이런 일들을 하게 돼 남편을 따라 온 식구가 새 동네를 우리 동네로 만드는 일에 신나게 뛰어다니게 됐다.

비록 남편의 연봉이 예전보다 절반 넘게 줄어들긴 했지만, 그 대신 전에 없던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아침'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 돈 대신 시간을, 오래된 마을 대신 만들어가는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된 우리 다섯 식구의 2막.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옛 조상들의 지혜가 우리에게도 무지개처럼 내리길 바라며, 자가용 대신 자전거로 도시락 싸서 출퇴근하는 남편을 응원하며 2막의 막을 힘차게 열어본다.

새 동네에서 함께 만들어갈 새 이야기
▲ 우리집 2막 새 동네에서 함께 만들어갈 새 이야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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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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