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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된 진돗개, 백호와의 무전여행
 7살 된 진돗개, 백호와의 무전여행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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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8번 게이트 도로변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자동차도로의 한쪽 면을 구획하여 자전거 전용도로 만든 얼음실로의 인도모서리에 얇은 비닐 돗자리를 깔고 흰색 진돗개 한 마리를 쉬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야위었고 개는 군데군데 원형탈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집을 나서진지 8주째 되는 여행자였습니다. 동행은 '백호'라는 이름의 흰 진돗개 한 마리. 짐은 배낭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무전여행이며 이동수단은 걷거나 히치하이크, 숙식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와 56일간의 여행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얘기 속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그러나 감추어진 비정한 얘기가 포함되어있었습니다.

길 위에 선 33살의 사장

- 언제 집을 나섰나?
"6월 22일, 서울 용산구의 집을 떠났다."

- 지금까지의 노정은?
"청파동을 떠나 강화도, 파주, 철원, 연천, 철원을 거처 파주로 왔다.

- 어떻게 이동했나?
"첫날에는 30km쯤을 걸었다. 그런데 나도 지치고 백호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는 3~5km쯤으로 줄였고 한참 뒤에는 마을 하나를 이동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 숙식은 어떻게 해결하고?
"한 마을에 들어가면 우선 노인회관이나 마을회관을 찾아갔다. 이장님이나 노인회장님께 정자나무 아래에서 좀 쉬도 되겠냐는 양해를 구했다. 보통은 정자나무 가까이에 마을회관이 있다. 주로 그곳에 동네 노인들이 모여서 소일하시는데 함께 밥을 해드시곤 한다. 그러면 어머님 같은 할머니들께서 내게도 밥을 나누어주곤 했다. 이동 중에는 식사를 얻어먹었다. 하지만 그저 취식만 하지는 않았다. 밥을 얻어먹으면 설거지라도 꼭 해드리곤 했다."

- 나이는?
"33살이다."

- 어떤 일을 했었나?
"대학에서 방송영상분야를 전공했다. 졸업하고 전공분야에서 일하다가 2005년부터 개인사업자가 되었다."

- 그럼 회사대표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8년간 회사를 운영했다. 지금도 폐업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이름은 남아 있다." 

-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
"검찰청 같은 관공서나 기업체의 광고, 영상작업을 하는 회사였다."

- 회사식구는?
"상근직원 4명, 임시직 2명 등 6명의 직원이 있었다. 나까지 7명이었다."

- 회사대표가 왜 갑자기 무전 도보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가?
"사람들에게 실망을 했다. 자살을 생각하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을 택했다." 

- 사람들의 어떤 점에 실망했나?
"무책임과 책임전가 같은 것이었다."

그가 길을 가다 백호에게 가로수 아래에서 물과 음식을 구해 먹이고 있다.
 그가 길을 가다 백호에게 가로수 아래에서 물과 음식을 구해 먹이고 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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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청업체의 비애 

- 자살까지 생각한 좌절의 원인은?
"보통 영상작업은 한 회사에서 발주를 받으면 하청에 재하청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보통 영상물의 실제 제작비는 총발주금액의 30%정도이다. 메인회사에서 발주를 받으면 발주비용의 50%정도로 하청을 주고, 그 하청업체는 다시 30% 정도에 재하청을 준다. 만약 3~5천만 원짜리 일이라면 1천만 내외가 실제작비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실제작사로 재하청업체였다. 인건비 외에는 마진이 거의 없는 일을 하는데 그나마 돈을 주지 않는다. 한 회사에서 3600만원을 받아야 되는데 600만원밖에 못 받았다. 그런데 이런 건수가 여러 개였고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 그럼 일을 해주지않거나 법적인 도움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
"먼저 일을 하고 대금은 나중에 받게 된다. 선금을 주면서 일을 주는 곳은 없다. 회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대금을 결제해주겠다는 하청업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바로 법적인 조치를 할 수도 없다. 그것은 관계의 종식을 의미한다. 계속 약속을 어기는 회사를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일부 받는다 해도 변호사비용 등으로 모두 소진되기 마련이다."

- 소액청구의 경우는 대한법률구조공단 무료상담같은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 않나?
"공단의 안내를 받아도 상대는 시간끌기로 대처한다. 그러면 저희 같은 영세업체는 계속 버티기는 힘들다. 답이 없는 게임이다." 

- 왜 돈을 주지않는건가?
"어렵다는 얘기이다. 내 상황이 어려우니 너도 나처럼 똑같이 하라고 한다. 그 얘기는 내게 직원들의 월급을 주지 말라는 얘기인데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 그럼 이번에 직원들에게 회사 파산을 통지한 건가?
"솔직히 사정을 말했다. 그리고 양해를 구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회사의 모든 장비와 카메라, 자동차 등…."

- 그리고 바로 길을 떠난 건가?
"직원들이 떠났고 이어서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진 나는 자살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내게는 진돗개, 백호가 있었다. 죽으려고 보니 백호에게 바쁜 이유 때문에 운동도 제대로 못 시켜주고 집에서 가두어서만 키운 것이 미안하더라."

1년 만에 16억에 매각된 회사  

- 백호는 언제부터 한식구가 되었나?
"나는 동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회사를 시작한 2006년에 진도로 가서 분양받아왔다."

- 그럼 백호는 아주 어릴 적에 한식구가 된 건가?
"진돗개는 3개월 이전에는 반출이 불가능하다. 생후 3달이 지나고 내게 온 것이다. 그러니 올해 만 7살이다. 내 혼자 먼저 가버리면 이 친구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함께 죽는 것이 이 친구의 의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 결론이 함께 여행하는 것이었다.

- 2005년부터 개인사업을 했다고 하지 않았나?
"맞다. 나는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분이 내게 제안을 했다. 자신이 자금을 투자할 테니 내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라는."

- 그런데 1년 만에 그 회사를 접었나?
"그 회사에서 나는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일해고 내 아이디어를 내어 대박을 냈다. 일종의 시물레이션게임인데 게임속 집에 들어가서 TV를 켜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었다. 예컨대 돌아가신 할머니의 과거의 삶을 재생해볼 수도 있는…. 내 아이템이었지만 투자자는 이것을 대기업 전략팀의 간부였던 친척을 통해 그 회사에 16억을 받고 팔았다." 

- 그럼 그 아이템들은 지금도 그 기업에서 활용되고 있나?
"일부는 한 국내 기업에서 구현되었고 일부는 영국으로 다시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리고 2006년에 투자를 받지 않은 본인의 회사를 세운 것인가?
"그렇다. 그 직후에 백호를 분양받은 것이다. 그래서 함께 죽는 대신 백호와 여행하면서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시간이 된다면 글도 쓰면서…." 

- 더위와 장마 속에, 돈 없이 개와 여행한다는 것은 고통일 것 같다.
"나는 시골에서 누군가가 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 눌러앉아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일을 할 생각이었다. 연천의 한 마을에서 보름을 지내기도 했지만 경기도 일원에서 내가 발붙일 만한 곳을 찾지는 못했다." 

- 백호까지 있으니 히치하이크도 쉽지 않을 테고….
"차를 세워주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마을의 순박한 청년,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차는 카니발이나 1톤 포터트럭이 주로 가능했다. 사실 도로변에서 달리는 차를 히치하이크 하기는 어렵다. 주로 주요소나 편의점 등에서 정차한 차량에 말을 붙이는 게 수월했다."

사람이 개를 공격하다 

- 백호에게는 무엇을 먹이나?
"처음에는 사료를 사가지고 출발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여행에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었다.  

- 출발시부터 돈을 전혀 지참하지 않았나?
"비상금 50만 원을 가지고 출발했다. 현재는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 

- 주로 어디에 썼나?
"나를 위해서는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아다. 여행초기에는 백호의 사료를 사기위해서 썼고 최근에는 백호의 병원비로 모두 사용했다." 

- 백호가 탈이 났었나?
"(머뭇거리다가) 사실은 파주 파평면의 한 마을에서 발로 차였다."

- 백호가 사람을 공격했나?
"사람이 백호를 공격했다. 이 마을에서도 이장님과 노인회장님 그리고 부녀회장님께까지 모두 양해를 구하고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백호가 그곳 평상에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마을 어른 한 분이 느닷없이 백호의 배를 발로 찼다. 퍽 나가떨어지고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 차인 이유가 무엇이었나?
"사람이 앉는 곳에 개가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 그럼 어떻게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나?
"우선 동물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가까운 곳이 문산읍이었다. 하지만 사정을 했지만 마을의 누구도 차를 태워주지 않았고 어느 택시도 개를 태워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사용정지된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되는 전화는 112와 119의 응급번호였다. 119에 전화를 하니 개의 이송을 거부했고 경찰서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112로 전화를 하니 다시 119로 하라고 했다.

몇 번의 전화 시도뒤 경찰서의 전화안내에게 사정하여 담당경찰관과 직접 통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 경찰관이 차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관할구역을 넘지않겠다며 문산읍 경계에 내려주었다. 그곳에서 읍내까지 택시기사에게 사정해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수술까지는 안해도 된다고해서 조치를 받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 치료비로 얼마나 지불했나?
"20만 원이었다. 그것이 내 주머니에 남아 있던 모든 것이었다."

- 사정을 말씀드리고 치료비를 좀 깎을 수는 없었나? 앞으로도 비상금이 필요할 텐데….
"백호의 진료비를 아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50만 원 모두를 백호를 위해 사용했다."

백호에 대한 그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그와 백호에게는 고생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았다.
 백호에 대한 그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그와 백호에게는 고생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았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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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서 나를 배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 시골인심이나 응급체계에 대해 통절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겠다.
"경기도에서 더 이상 시골인심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위급상황에서도 내가 보호받고 있다거나 보호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이제 어쩔 셈인가? 서울로 되돌아가는 길인가?
"아니다. 서울경기권을 벗어나고 싶다. 다시 더 깊은 시골로 가볼 작정이다. 강원도나 충청도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히치하이크를 하기위해서는 도로의 진입로까지 이동해야 한다. 어디로 어떻게 갈지를 생각 중이다."

- 본인은 경력 8년 이상의 전문직 능력자이다. 회사를 부도낸 것도 아니니,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원한다면 다시 출발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을 것 같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에도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더 깊은 시골로 들어가 볼 참이다. 혹 수도권 인심과는 다른 곳이 있을지를 더듬어.
 그는 더 깊은 시골로 들어가 볼 참이다. 혹 수도권 인심과는 다른 곳이 있을지를 더듬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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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만의 노정으로도 한 편의 로드무비이다. 지금까지 56일간 길 위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있지 않나. 나도 지금까지 멈추지 못하고 달려왔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데 내가 남들과 다르기는 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보다 힘이 센 사람, 나를 짓밟으면서도 더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면서도 내가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말이다.

그들을 단호하게 배척하는 대신 내가 그들의 위치에 있지 못한 나를 자괴하면서 그들을 부러워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수가 없다. 나 자신에게 나를 배반한 사람들의 모습이 내재되어있으니 그들이 부러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직도 다 내려놓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은 분명하다. 그들과 똑 같지 않기 위해서 더 비우고 더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무전여행, #파산, #진돗개, #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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