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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나도, 엄마."
"그래. 더운데 열심히 하렴."

현관문을 나서는 두 아이를 배웅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만만치 않은 학원비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학원비 때문에 남편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고 그로 인해 올 여름도 휴가 없이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괜히 씁쓸해진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다가는 비단 여름휴가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의 노후까지 염려되어 답답해지기까지 한다.

올해 25세인 큰아이, 23세인 작은 아이 모두 대학 3학년으로 여름방학을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 큰아이는 스페인어를, 작은아이는 토익공부를 하고 있다. 여름방학 2개월 동안 들어간 학원비가 200만 원 정도인데, 거기에 교통비에 용돈까지 더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예전에는 대학교에만 들어가면 더 이상 학원비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금액 단위가 커져 더 힘들다. 물론 굳이 학원을 다니지 않고 공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빨리빨리, 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고, 어려서부터 사교육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습관 또한 한 몫 한다. 자기 스스로 하는 주도적 학습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그러면서도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인지 잘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염려스럽다.

어릴 때부터 직접 공부시킨 큰아이, 그러나...

올해 25세인 큰아이, 23세인 작은 아이 모두 대학 3학년으로 여름방학을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
 올해 25세인 큰아이, 23세인 작은 아이 모두 대학 3학년으로 여름방학을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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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내가 끼고 가르쳤기 때문에 사교육을 남들보다 늦게, 그리고 기간도 짧게 접했다는 것이다.

거실 문 유리창에 직접 쓰고 그린 낱말카드로 한글, 숫자, 알파벳을 떼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시간을 정해 놓고 수학을 가르치고, 여름방학이면 방학 숙제 겸해서 책 10권을 읽게한 뒤 독후감을 쓰라고 해서 책 읽는 습관과 글 쓰는 능력도 길러줬다. 굳이 따로 학원을 보낸 것은 미술학원과 피아노 학원 정도였다.

아이들도 잘 따라주어 큰아이는 모범생에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든든하게 자랐고 교내외 백일장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아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그래서 큰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원에 다녀본 적이 거의 없다. 대신 혼자 공부하는 힘을 길렀다. 매일 계획을 세워 지키고, 남는 시간엔 책도 읽고 나름대로 글도 쓰곤 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모든 스케줄을 정해줬기 때문에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야 돌아왔다. 만약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인터넷 강의로 보충했다. 그러다보니 큰아이의 공부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수능에서 발목이 잡혀 재수, 삼수, 사수까지 네 번의 수능을 치러야 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의지가 컸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이지만, 지금도 큰아이를 생각하면 가슴 한 쪽이 아린다.

아이가 재수를 할 때는 덜컥 겁도 나고 당황스러워 재수 종합반에 다니게 했는데, 그때의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도 상위 반에 들어 당연히 대학에 합격하리라 여겼었는데 다시 삼수, 사수까지... 그 때는 학원에 가지 않고 인터넷 강의로 집에서 혼자 공부했는데 그 금액도 학원비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네 번의 수능을 치르는 동안 들어간 학원비와 인터넷 수강료, 거기에 대학교 입학 원서비까지 더하면 대학교 학비와 맞먹는 금액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큰아이는 대학교를 두 번 다니는 것과 같다.

공부,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작은 아이는 큰아이와 좀 달랐다. 공부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본인의 노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 늘 언니 그늘에 가려졌다. 아무래도 나도 작은아이보단 큰아이의 공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보다는 다른, 아이가 잘 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려고 했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언니와 똑같이 해준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똑같이 공부를 가르쳤다. 하지만 공부할 때마다 퉁퉁거리고 짜증을 내서 하루가 멀다 하고 혼이 났고, 회초리로 맞기도 했으며 쫓겨나기까지 했다.

학교 성적도 반에서 중위권을 맴돌았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방법이 아이와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학원 종합반에 보냈지만, 그 이후로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학원에선 시험 때면 아이를 밤 늦게까지 잡아놓는데다, 아이는 학원 숙제 때문에 학교 숙제를 못하고 학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학원을 끊으라고 하진 못했는데, 하루는 아이 스스로 혼자 공부하겠다는 선언했다. 수학은 예전처럼 나에게 배우고, 영어는 과외를 하고. 그래도 공부보다는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2학년 초에 아이가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태도도 진지해지고 방문을 열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더니 성적이 쑥쑥 올라 상위권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공부는 다른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후로 고등학교 때는 수학, 영어 두 과목 과외를 계속했는데 그 비용도 과목당 30만 원 정도였다. 그러나 수능결과가 좋지 않아 재수를 선택했고 그 때는 수학, 영어를 단과로 듣고 나머지 공부는 혼자 했다. 그렇게 해서 두 아이 모두 대학생이 되고, 이제는 비싼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나마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성적장학금을 받아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특히 공부와는 좀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은아이가 성적장학금을 계속 받고 있어 기특하고 대견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기 때문인 듯하다.

대학생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 사교육

덕분에 한 숨 돌리고 있었는데, 큰아이가 외무고시를 목표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그로 인해 다시 학원비와 인터넷 강의 수강료가 들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 방학 때는 스페인어 점수를 얻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내년에는 대학교 한 학년 등록금과 비슷한 돈이 든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학교 졸업 때 필요한 토익 점수를 얻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나는 그래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취업하기 전까지 사교육은 계속 될 것 같다.

"어디 돈 없는 아이들은 공부하겠냐?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겠어?"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 말씀 하실 줄 알았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그래서 지방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도 서울로 올라오는 거예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요즘에는 안 통한대요."

대답을 하는 아이의 표정이 밝지 못한 이유도 가정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사실이 본인도 개운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엄마, 학원에 가보면 초등학교 아이들도 서너 명 있어요. 물어 보니까 그냥 배우는 거래요. 요즘 아이들은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를 배우는 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나는 이거 하나 배우는데도 힘이 드는데 그 아이들은 사교육비가 얼마나 들까? 이러다가는 나중에 결혼해도 애도 못 낳겠어요. 사교육비가 엄청나서..."
"얘는 별말을 다 하는 구나. 그때는 그때 대로 다 방법이 있겠지."

아이의 말을 자르기는 했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랄 때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노력하면 잘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에 믿음을 가졌고.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만 해도 학원은 기본이고 과외까지, 수많은 사교육이 판쳤다. 그 뿐인가? 과목당 100만 원씩 하는 족집게 과외도 있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그렇게 공부한 아이들의 성적이 좋다는 것이다. 물론 그 성적은 자신의 공부로 얻은 게 아니라 기술로 얻은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제2외국어를 공부한다니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사교육에도 양극화가 심해져 공교육 담당인 학교는 그저 이름만 걸고 있을 것 같은 불안함을 갖게 한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믿는 것

그동안 할 수 없이 사교육에 조금은 의존해 아이들을 키워왔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꼭 지키는 것이 있다. 바로 학교 교육이 우선이라는 것. 흔히들 '교육은 100년지대계', '청소년은 내일의 주역'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계획을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기 보단, 주역은 미리 정해놓고 교육 계획은 수시로 바꾼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공부하는 방법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고 예습, 복습, 특히 복습은 꼭 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아도 학교 수업을 등한시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학교 공부에 집중하고 노력한다면, 아무리 사교육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언젠가 성적은 잘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성적이 오르면 아이도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더 열심히 공부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부모가 할 일은 자신만의 가치관(사교육보다는 공교육에 중심을 두는)을 갖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성적이 나쁘다고 아이를 학원과 과외에 맡긴다면, 아이는 은연중에 공부는 학원이나 과외의 힘을 빌려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적이 나쁜 이유도 학원선생이, 혹은 과외선생이 잘 못 가르친 탓이라고 책임을 돌리는 습관을 갖게될지도 모른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모든 선생님이 사명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학생은 선생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 부모는 학교와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 노력한다면 우리들이 바라는 '개천에서 용 나는' 상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 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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