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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5일 오후 5시 47분]

'MB표 교육정책'의 핵심이 줄줄이 좌초하고 있다. 중학교 과정에서의 국제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에서의 자율형사립고는 2008년 집권한 MB정권이 도입한 대표적 교육정책이었다. 그런데 도입된 지 5년도 안 돼 먼저 '국제중 지정 취소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까지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지난 13일 교육부는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 일반고의 교육과정 자율성·직업교육·지원 예산 확대 ▲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 박탈 ▲ 특목고 등 자율학교의 상시 지정 취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교육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국민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일반고 관련 내용보다는 자사고 관련 내용인 듯하다. 언론도 일반고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보다는 자사고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자율형사립고 교장과 사학법인협의회 관계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 선발권 박탈은 결국 자사고 죽으라는 것이다'는 내용을 담아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자사고에 앞서 철퇴를 맞은 MB표 학교는 바로 국제중이다. 의무교육 단계에서 국제중과 같은 예외적인 학교를 만드는 것이 맞느냐는 법적인 논쟁에서부터 학비가 수천만 원인 귀족학교가 돼 중학교 입시까지 부활하게 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교육적 논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반대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공정택 서울교육감에 의해 2009년 국제중은 화려하게 제도권 교육계에 등장했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국제중도 이건희 회장 손자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합격으로부터 논쟁에 휘말리기 시작하더니 지난 7월 영훈중 이사장 구속과 수백건 성적 조작 수사 결과 발표로 위기의 정점을 찍었다. 급기야 폐지 논쟁에 휩싸여 성적순 입학 선발을 금지하고, 상시 지정 취소 제도를 도입하기로 해 산소 호흡기에 기대 연명하는 정도다.

이제는 국제중에 이어 자사고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교육분야 핵심 공약으로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라는 것을 내놨다. 당선 후 학교선택권 강화를 명분으로 4·15 학원자율화 조치를 발표했고, 이를 구체화해 기존의 특목고 외에 자사고·마이스터고·기숙형공립고 등 새로운 유형의 학교 300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포항제철고·민족사관고 등 기존의 자사고를 포함해 용인외고 같은 특목고도 자사고로 전환했다. 과거 명성의 부활을 노리던 기존 명문고서부터 새롭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신흥고들에 이어 하나그룹·한전·삼성 등 대기업 심지어 국방부까지 자사고 설립에 뛰어들어 자사고는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자사고의 무분별한 지정으로 제도 도입 첫해부터 무더기 미달사태가 속출했다. 또한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한 2013년 입시에서 기대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사고는 귀족학교·입시명문고라는 태생적 한계 외에도 '등록금 3배 투입에 비해 수요자들이 바라는 결실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리고 애초 입안자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일반고의 공동화'라는 부작용까지 전면화됐다. 언론은 일반고의 공동화 현상에 대해 연일 보도에 나섰고, 그 원인을 특목고와 자사고에서 찾았다.

자사고·특목고와 같은 특별한 학교 몇 개를 살리자고 전체 학생의 71%가 다니는 일반고가 다죽게 생겼다는 비판을 정권 차원에서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라는 명분으로 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자사고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아니라 이전 MB정부 정책공약이므로 정치적 부담이 덜했다는 점도 작용했고, 현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장관 이전부터 자사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는 정치 외적 요인도 작용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자사고도 양극화... 능력 있는 학교만 알아서 살아라?

이번 교육부의 발표는 제도적으로 자사고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자사고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사고도 양극화시켜서 살아남을 능력이 있는 학교만 육성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현재 전국에는 49개의 자사고가 있다. 서울의 용문고와 동양고, 광주의 보문고는 자사고로 지정됐다가 스스로 포기한 경우다.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이렇게 스스로 퇴출되는 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이번 교육부 발표에서 눈에 띄는 점이 바로 자사고 자체에서의 차별화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아무래도 자사고의 성적 제한 폐지로 보인다. 서울을 비롯해 대부분의 시도에서는 자사고 지원 최소 기준으로 성적 제한 50%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교육부는 성적제한과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몇 개 학교에는 여전히 예외를 인정해 학생선발권을 주는 학교들이 있다. 먼저 비평준화 지역 학교인 경기도의 용인외고, 경북의 김천고, 충남 천안 북일고 등이다. 그리고 기존 자립형사립고로 운영되던 민족사관고, 전북 상산고, 포항제철고 등과 새롭게 기업들이 설립한 서울 하나고, 인천 하늘고, 충남 아산 은성고 등이다. 한수원 등 대기업들이 새롭게 설립을 추진 중인 학교들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학생선발권이 유지되는 학교들 11개 중 7개가 대기업이 세운 학교라는 점이다(설립 기준으로만 하면 민족사관고까지 8개임). 하나고는 하나그룹, 포항제철고와 광양제철고는 포스코, 하늘고는 한국전력, 천안북일고는 한화, 현대청운고는 현대, 은성고는 삼성 등이 설립자이자 운영자이다. 기업과 관련이 없는 학교는 김천고, 상산고, 용인외고뿐이다.

학생선발권이 유지되는 학교는 부자학교 또는 부자동네 학교들이다. 혹시 성적 제한으로 학생 선발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서울의 강남, 부산 해운대구 등 부자동네에 있는 자사고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다. 자사고도 이렇게 양극화해 진입 장벽을 돈으로 쌓아올려 신규 진입을 차단하고, 능력 없는 학교들은 그 벽 밖으로 쳐내겠다는 것으로 읽히는 이유다.

그러니까 능력 있는(돈 있는) 학교들은 살아남아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 계속 받아 번창하고, 능력 없는 학교들은 알아서 도태하라는 게 이번 교육부 발표안의 숨은 의도라는 것이다. 철저한 자본의 논리이다.

이런 자본의 논리에 하나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은 게 바로 종교 학교다. 어떤 언론도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이번 발표에는 종교 관련 내용이 딱 하나 있다. 종립학교의 종교교육 허용 확대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금지하던 특정 종교 신앙 과목의 개설을 허용하는 것이다. 종립학교의 건학이념에 따른 교육 실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 자율형사립고는 사립학교가 자신들의 특정한 건학이념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 자립을 조건으로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게 도입의 취지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살아남는 자사고의 대부분이 삼성·현대·한화·하나 등 대기업들이 설립한 학교들인데 '삼성·현대·한화의 건학이념'이라는 말 자체가 국민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서 자사고 도입 취지에 가장 잘 맞는 것처럼 보이는 종립학교의 건학이념 실현을 더 많이 보장함으로써 부자학교 외에 종립학교들도 자사고로 남기기 위한 구색맞추기로 '종립학교 종교 교육 허용'이라는 방안을 끼워넣은 것으로 보인다.

자율고·특목고의 상시 지정 취소... 과연 의지 있나

이번 교육부 발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자사고와 특목고 같은 자율학교에 대한 지정 취소를 상시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이번에 국제중이 입시비리로 문제가 되면서 과연 5년 지정 시한이 되지 않았는데 지정 취소를 할 수 있느냐 하는 논란에서 도입된 것이다. 특목고나 자사고·국제중 등 자율학교가 지정 조건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지정 취소를 할 수 있도록 명문화를 한 것이다.

사실 국제중이 논란이 됐을 때도 교육부의 입장은 시한이 남아 있더라도 심각한 불법이나 부정이 있으면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교육청이 버티면서 강제하지 못했다. 지금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인데 교육 당국이 의지가 없어서 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14일 교육부에 따르면 외고·국제고 교육과정 실태 조사 결과 전체 38개(외고 31개교·국제고 7개교)의 23.7%에 달하는 9개 학교가 지정 조건과는 상관없는 이과반이나 의대 준비반을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외국어 영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외국어고와 국제고에서 의대반을 운영하고, 기하와 벡터·미적분과 통계기본 등 이과생이 배우는 수업을 개설하거나 아예 이과반을 만들어서 운영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던 것이고, 아예 입학생을 모집할 때 이과반 운영을 홍보하는 지경이라는 것을 교육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이들 학교는 기관경고 및 시정명령·안내 공문 등만 받고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국제중 지정 취소 문제도, 특목고와 자사고 지정 취소 문제도 결국 교육 당국의 의지 문제라는 것이다. 애초 MB정부나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이런 특수학교들을 규제할 의지가 없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이유다. 앞으로는 얼마나 달라질지 여전히 의문이다.

파탄 나는 MB표 교육정책... 청문회라도 해야 하나

또 하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번 교육부 발표가 확정안이 아니라 시안이라는 점이다. 이번 교육부 발표는 근본적인 처방은 아닐 지라도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진전된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육부는 전문가 협의회·현장방문 간담회·시도교육청 관계자 의견수렴 및 회의 등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마련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사고와 보수언론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면 물러날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인다.

당장 자사고들이 집단으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앞으로 대국민 정책홍보를 펼치며, 전문가·이해관계자 의견수렴과 권역별 공청회 개최 등을 개최하고 이런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서 관련 법령을 개정한 후 2015학년도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자사고뿐 아니라 특목고 관계자들·관련 사학법인과 단체들·새누리당 등 보수 정치권과 보수적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도 크다. 최근 세제 개편안이 발표 며칠 만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볼 수 있듯 현재 박근혜 정부는 정책 추진에 있어서 대단히 미숙해 보인다. 이번 방안도 모자란 것인데 더 후퇴할 가능성이 보이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발표가 사실상 MB표 교육정책인 국제중과 자율형사립고의 실패를 선언하는 것인데 그에 대한 후속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제중과 자율형사립고가 도입될 당시부터 국민적 반대가 있었고, 우려되는 바가 무척 많았다. 그리고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것도 최근 일이다. 이주호 전 장관을 비롯한 MB정부 교육 실세들이 이런 국민적 우려를 무시하고 밀어붙임으로써 오늘날의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그에 대한 책임 추궁 또는 재발 방지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MB교육청문회'도 좋고, 최소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주호 전 장관과 관련자들을 반드시 불러서 책임을 따져야 한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서 5년도 못 갈 정책, 그것도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놓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우리 교육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는 점을 박근혜 정부도 명심해야 한다.


태그:#자율형사립고, #국제중,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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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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